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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교회사따라 성지따라: 예루살렘 (3) 시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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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3 ㅣ No.1653

[교회사따라 성지따라] 예루살렘 (3) 시온산


최후 만찬, 성령강림 이뤄진 교회 발상지

 

 

시온 산은 유다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귀중한 성지다. 시온 산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곳이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 차례 오시어(요한 20,19-23; 20,24-29) '사죄권'을 부여하시고, 토마스의 의심을 풀어주신 장소이기도 하다.

 

아울러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교회를 탄생시킨 곳이 바로 이 곳 시온 산이며, 예수님 승천 후 성모 마리아께서 사도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셨다고 전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일부 성경고고학자들은 첫 공의회인 '예루살렘 공의회'(사도 15,1-35)가 개최된 곳도 시온 산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이유로 시온 산에는 1세기 말부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던 '사도들의 교회'가 있었다. 신앙의 자유 이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382년 사도들의 교회 터에 팔각형 기념 성당을 건립했다. 이때부터 이 지역이 오늘날의 시온 산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오늘날 시온 산에는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을 중심으로 동정 마리아 영면 성당,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등이 있다.

 

시온 산 관문인 '시온 성문'을 지나 골목길로 곧바로 올라가면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이 나온다. 예수 시대 이곳은 제관들과 고관들이 거주하던 윗도시 지역으로 대사제 가야파의 집과도 멀지 않았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파스카 양을 잡는 무교절 날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지시로 먼저 가 파스카 음식을 차려놓은 큰 이층 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했다(루카 22,7-13; 마태 26,17-19; 마르 14,12-16).

 

1333년 나폴리 왕 로베르토와 왕비 산치아가 이집트 술탄 말렉 알 나시르 마호멧에게서 폐허로 방치돼 있던 최후의 만찬 성당 터를 매입해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봉헌했다. 작은 형제회는 이 터에 수도원과 고딕 양식 성당을 지어 지상 층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기념 경당''다윗 무덤 경당'(사도 2,29), '사도 토마스 경당'(요한 20,24-31)을, 2층에는 '성령강림 기념 경당'(사도 2,1-13)과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Coenaculum)을 마련했다. 라틴어 체나쿨룸(Coenaculum)은 '식당', '다락방'이란 뜻이다.

 

이 성당은 1517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투르크족에 의해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 다윗 무덤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슬림은 다윗을 예언자로 공경하고 있다. 이후 최후의 만찬 경당은 400여 년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됐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후 독립전쟁 때 빼앗은 이곳을 정부재산으로 귀속시키고 건물 1층을 다윗 무덤과 유다인 회당(시나고가), 탈무드 학교로 개조했다. 또 2층 성령강림 경당을 폐쇄시키고,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만을 개방하고 성 목요일과 성령강림 대축일 때에만 말씀의 전례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다.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입구를 지나 2층 최후의 만찬 경당에 들어서면 경건함보다 공허함이 먼저 밀려든다.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성화가 화려하게 장식됐을 천정과 벽들이 모두 회칠이 돼 있다. 벽에는 뜻 모를 아랍 문자와 이슬람 문양들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고, 무슬림이 기도할 때 메카 방향을 가리켜 주는 '미랍'이 벽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계단을 따라 성령강림 기념 경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폐쇄돼 굳게 닫혀 있다. 유다인들은 성령강림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심히 살펴보면 위안을 주는 성당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경당 입구 기둥이 '포도나무'로 장식돼 있다. 포도나무 덩굴은 하느님의 백성, 바로 교회를 상징한다(요한 15,1-10). 또 성당 천장을 바치고 있는 돌기둥은 '펠리컨' 조각으로 장식돼 있다. 중앙에 어미 펠리컨이 있고, 양 옆으로 굶주린 새끼들이 어미의 가슴에서 피를 받아먹고 있는 형상이다. 이렇게 기둥 네 면에 모두 12마리 펠리컨이 있다. 펠리컨은 '성체성사'를 상징한다. 펠리컨은 모성애가 매우 강해 먹이가 떨어져 새끼가 굶게 되면 어미 새가 자기 가슴을 부리로 쪼아 피를 내 먹인다는 전설이 있다.

 

작은 형제회는 200여 년간 수도회 본부이기도 했던 이 곳을 회복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으나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작은 형제회는 하는 수 없이 1936년 최후의 만찬 경당 바로 옆 부지를 매입, 수도원을 짓고 최후의 만찬 기념 성당을 꾸며 놓았다.

 

작은 형제회 수도원 바로 옆 골목길 어귀에 '동정 마리아 영면 성당'(Dormitio Beatae Mariae Virginis)이 자리하고 있다. 초세기 사도들의 교회 터 위에 세워진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 부활 후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셨던 장소라고 한다(사도 1,13-14).

 

대부분의 책자가 이곳을 성모 마리아가 죽은 장소라 소개한다. 이는 가톨릭 교리상 매우 잘못된 표현이다. 가톨릭교회는 동방교회와 달리 성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이시기에 원죄의 결과인 죽음을 극복하고 영혼과 육신이 함께 승천해 천상 영광을 받으셨다고 신앙 고백을 한다.

 

성당 이름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라틴 말 '도르미시오 베아테'(Dormitio Beatae)는 우리말로 '복된 잠'이란 뜻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382년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을 건립했으나 614년 페르시아군과 1009년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이후 1100년에 십자군이 폐허 위에 다시 큰 성당을 지어 '시온 산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 불렀다. 이 성당은 다시 1219년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된 후 600여 년간 폐허로 방치됐다.

 

그러다 1898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술탄 압둘 하미드가 빌헬름 2세에게 선물로 이 성당 터를 기증했다. 빌헬름 2세는 쾰른대교구장에게 이 성당 터를 이양했고, 가톨릭성지개발독일재단이 1910년에 오늘날의 성당을 완공해 봉헌했다.

 

현재 독일 베네딕도회가 관할하고 있는 이 성당은 원형 지붕(돔)과 종탑이 어우러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화려한 성당으로 시온 산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성당 내부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12사도 모자이크가 장식돼 있다. 또 지하 성당 한 가운데에는 복된 잠에 빠져 있는 동정 마리아 상이 있다.

 

[평화신문, 2007년 6월 10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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