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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교회사따라 성지따라: 예루살렘 (4)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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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3 ㅣ No.1654

[교회사따라 성지따라] 예루살렘 (4) 십자가의 길


주님 십자가의 길은 '구원의 길'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 하루의 얘기를 담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예수님의 수난 길이 얼마나 처참했는가를 장엄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던 그 길은 성경에 상세히 기록돼 있지 않아 전혀 알 수 없다. 심지어 예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셨던 빌라도 총독 관저 장소조차도 오늘날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 7세기 페르시아군과 이슬람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 1000년 가까이 그리스도인들의 예루살렘 순례가 단절되다시피 해 그나마 있던 교회의 흔적조차도 사라져 버렸다.

 

다만 333년 예루살렘을 순례한 프랑스 보르도 지방 신자들의 순례 기록에서 십자가의 길 경로를 어렴풋하게나마 추정할 수 있다. 이들은 십자가의 길 묵상 기도를 겟세마니에서 출발해 키드론 계곡과 예루살렘 대성전 서쪽에 있는 하스모니아 궁전을 지나 골고타를 순례했다고 한다.

 

영화에서처럼 예수의 체포부터 십자가상에서의 처형까지는 단 하루 만에 신속하게 이뤄졌다. 유다인들은 해질 무렵 저녁부터 시작해 아침과 낮을 지나 다음날 해질 때까지를 '하루'(창세 1,5 참조)라 했다. 예수께서는 유다력으로 니산달(태양력 3~4월) 14일을 시작하는 저녁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눈 다음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한 후 체포돼 아침에 법정에 끌려가 사형선고를 받고, 오후 해질 무렵 십자가형을 받고 죽으셨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수석 사제들과 원로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에게 붙잡혔다. 성전 경비병들은 주로 레위인들로 성전 지성소를 지키고 예루살렘 치안을 유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를 제일 먼저 '한나스'에게 데려갔다(요한 18,12). 한나스는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의 장인으로 오랫동안 대사제직을 지낸 인물이다. 한나스는 예수를 심문했고, 성전 경비병은 예수의 뺨을 때리며 폭행을 가했다. 당시 로마법이나 유다 종교법에 따르면, 예수를 사법권이 있는 유다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으로 데려가지 않고, 전직 대사제의 집에 구금해 심문하고 폭행을 가한 것은 명백히 불법이었다. 불법은 재판 과정에서도 계속된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예수는 산헤드린으로 끌려갔다(마르 14,55-64; 마태 26,59-66; 루카 22,66-71 참조). 하지만 요한복음서는 산헤드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예수께서 '카야파'의 집으로 끌려갔다(요한 18,28)고 진술한다.

 

대다수 성경학자들도 요한의 진술에 신빙성을 더 두고 있다. 그 이유로 종교 문제 소송은 대사제의 집이 아니라 성전 안 '돌을 깔아놓은 자리'에서 열려야 하고, 법에 따라 적어도 24시간 동안 형 집행을 연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점, 또 예수께서 산헤드린이 지정한 사형수 무덤 2곳 중 어디에도 묻히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카야파는 예수를 신성모독자로 낙인찍고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에게 넘겼다. 마침 로마 총독 빌라도와 로마가 세운 유다왕 헤로데 안티파스가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빌라도는 자신의 곤란함과 짐을 덜기 위해 예수를 헤로데에게 보냈고, 헤로데는 예수를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냄으로써 응수했다. 예수는 이처럼 온갖 잔인함의 노리갯감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넘겨졌다가 끝내 사형선고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십자가형을 받기 위해 사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채찍질을 당해 반죽음 상태에 빠졌다. 그런 예수에게 로마군 병사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붉은 망토를 입혔다. 또 손에 왕홀 대신 갈대를 쥐어주고,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의 왕, 만세!"라고 소리 지르며 모욕했다.

 

파스카 축제 준비로 분주한 예루살렘 성내, 순례자들과 주민들로 붐비는 골목길로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형장으로 끌려갔다. 로마군인들이 갈릴래아 사람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할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온 예루살렘에 퍼져 있었다. 예수의 십자가 수난 길에는 벌써 구경꾼들로 가득 찼다. 예수를 죽이라고 고함을 치고 모독하는 선동꾼들이 있는가 하며, 눈물조차 메마를 만큼 충격에 휩싸여 마른 침을 삼키며 가슴을 치는 무리들도 있었다.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기도를 하는 신심은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 중요 사건을 통해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다.

 

십자가의 길은 4세기경엔 겟세마니에서 키드론 계곡을 지나 대사제 카야파의 집을 거쳐 골고타로 이르는 길로 구성됐다. 비잔틴 시대에는 로마 총독 관저 자리로 추정되는 예루살렘 하스모니아 궁전 인근에 있던 소피아 성당에서 출발해 골고타까지 이어졌다. 이후 십자군 시대에 오늘날 순례자들이 행하고 있는 십자가의 길이 대충 설정됐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십자가의 길은 1540년께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수도회)가 확정한 것이다. 예루살렘 대성전 북서쪽 성전 벽 모퉁이에 있는 안토니아 성(제1,2처)에서 출발해 골고타(제10~14처)까지 그 사이 골목길에 7개 장소(3~9처)를 정해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게 배려했다.

 

이 길은 예수께서 걸으셨던 바로 그 십자가의 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묵상하기에는 충분하고도 소중한 기도처이다.

 

 

알고 가면 기쁨 두 배

 

1. 십자가의 길은 현재 작은 형제회 성서대학인 '예수께서 채찍질 당하신 성당'(Flagellation)에서 시작한다.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길 원하면 이곳에서 십자가를 빌릴 수 있다. 대여 가격은 미화 30 달러 정도.

 

2.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제1처 성당에서 작은 형제회가 주관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가 있다. 개인 순례자일 경우 이날 수도자들과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을 추천한다.

 

3. 가톨릭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제3처 경당에선 매일 성체조배와 성체강복이 거행된다.

 

4. 예수의 작은 자매회가 관리하는 제6처 경당에는 수녀들이 제작한 베로니카의 수건에 찍혀진 예수의 얼굴 이콘을 판매하고 있다.

 

5. 제12처 골고타 바위 사진을 찍으면 예수의 얼굴 또는 성심이 나온다고 한다. 기도한 후 작은 틈으로 보이는 바위를 사진 촬영해 보시길.

 

[평화신문, 2007년 8월 5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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