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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성지를 찾아서: 해외 성지 (11) 예루살렘 예수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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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667

[성지를 찾아서] 해외 성지 (11) 예수님 무덤

 

 

그건 ‘굴욕’이었다. ‘왕’이 아니라 낮고 겸손한 모습으로 온 성자 예수에게 군중들이 퍼붓는 조롱과 군인들의 매질은 참기 힘든 ‘굴욕’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채찍질을 당하며, 골고타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상처뿐인 예수’는 겉보기에 더이상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아니었다. 실패로 짧은 삶을 마감한 초라한 십자가의 사나이였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예수의 주검을 성모 마리아와 제자들이 무덤에 묻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일찍이 성자 예수가 너희들이 무너뜨린 성전을 사흘 만에 내가 새로 세우리라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성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묻힌 예수가 딱 사흘째인 일요일에 부활한 것이다. 알몸으로 죽임을 당하고 묻혔다가 다시 살아난 곳, 그곳이 바로 성묘(The Holy Sepulcher)라고 불리는 주님무덤경당이다. 기독교계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이곳을 둘러싼 갈등이 십자군 전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종교 간 싸움은 십수 세기 동안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나 지금은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등 6개 종파가 공동 관리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 이뤄진 무덤

 

십자가의 길 14처이기도 한 예수님 무덤은 기념성전인 주님무덤성당 안에 실제로 석관을 놓았던 무덤(성묘)으로 구성된 이중 구조이다. 주님의 시신이 놓였고, 또 주님이 부활한 실제 현장인 예수님 무덤을 기념성전이 싸안고 있는 형태이다. 기념성전 천장에는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별이 둥근 천장에 새겨져 있다. 그 내부에 암석을 파서 작은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한 실제 무덤이 있는 구조이다.

 

기자가 찾던 날도 아침부터 세계 각처에서 몰려든 순례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의 현장을 보러온 순례객들은 숨죽여 기다렸다. 한참 기다리니 그리스 정교회 신부가 5명씩 한꺼번에 참배하라고 일러준다. 성묘 역시 일실(방 하나) 구조가 아니라 두 개의 방으로 되어있다.

 

 

죽음의 현장에서 생명이 꽃피다

 

성묘에 처음 들어가는 방은 천사들의 방이다. 밝고 환하며 조금 넓은 천사들의 방은 우리나라 병원 장례식장 조문실과 같은 곳인데, 이곳에서 천사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렸다. 비탄에 젖었던 사람들이 희망을 찾은 것이다. 천사들의 방 입구에 탁자처럼 놓인 돌은 무덤 앞을 막았던 돌 조각의 일부이다.

 

천사들의 방 안쪽이 예수님 주검을 앉힌 무덤이자, 죽음을 넘어서서 부활이 이뤄진 성묘이다. 성묘는 우리나라처럼 땅을 아래로 파내고 관을 매장한 방식이 아니라 동굴을 깎아서 만든 것이다. 성묘에는 몸을 굽혀서 들어갔다. 입구가 불과 1m 조금 넘을 정도로 낮았기 때문이다. 성묘에 들어서면 그 오른쪽이 주검을 눕혔던 곳이다. 성 금요일 오후 3시, 수난 끝에 아버지께 영혼을 맡기고 죽은 예수의 시신을 부활절 아침까지 안치했던 곳에서 놀랍게 생명이 피어났다.

 

 

절망과 희망의 교차점, 주님 무덤

 

주님무덤경당은 십자가의 굴욕이 완전한 승리, 곧 부활로 탄생되는 절망과 희망의 쌍곡선을 그리는 곳이다. 순례객들은 예수님의 석관이 있는 곳, 부활의 기적이 동시에 이뤄진 현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다. 어머니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내는 것보다 더 빠르게, 더 선량하게 뉘우치는 죄인을 용서하는 하느님을 향해 저절로 기도를 바쳤다. 예수님처럼 작고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 고혈을 흘리며 참혹한 십자가형을 당했던 성자 예수가 속삭이는 것 같다.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살아계신 주님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 가운데 계실 것이다.

 

 

파괴와 침탈이 현장을 알려주는 역설

 

주님무덤은 수많은 파괴와 복구를 거쳤기에 구체적인 현장을 알 수 있었던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 곳이다. 이곳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로마 황제가 골고다 언덕을 깎고 메워 로마 신전과 주피터상, 비너스상을 세우면서 1차 파괴됐다. 그러나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다녀온 어머니 헬레나(=성녀 헬레나)로부터 비너스 신전이 있는 곳이 바로 골고다와 주님 무덤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신전을 헐고, 예수님 무덤을 발굴하여 기념성전을 세웠다.

 

 

십자군 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곳

 

그러나 그 후 페르시아 군에 의해 기념성전은 파손(614년)되었고, 1009년 사라센에 의해 다시 산산조각났다. 이것이 십자군 운동의 직접 원인이 되었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에 들어와 주님무덤 성전을 보수 및 개조(1149~1180년)하여 오늘날 기념성전의 모체를 지었다. 그 후 지진과 화재 등의 피해가 거듭됐고, 1808년 화재로 인한 보수를 러시아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고, 오스만 터키의 외교정책을 업은 그리스 정교회가 해내면서 주님무덤을 자기네 소유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이중구조의 외곽인 주님무덤 기념성전은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콥트 교회, 시리아 정교회, 에티오피아 교회가 소유권을 나누어 갖고 있다. 로마가톨릭은 이와 별도로 옆에 밤처럼 어두운 실내에 작고 푸른 별이 수놓인 주님무덤성당을 마련, 주로 이곳에서 미사를 올리고 있다.

 

[매일신문, 2007년 4월 5일, 글 사진·골고타에서 최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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