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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성지를 찾아서: 해외 성지 (14)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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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670

[성지를 찾아서] 해외 성지 (14) 로마 성 바울로 대성당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고… 냉담자 바울로 빛을 만나다

 

 

로마는 각광받는 성지 순례코스이다. 교황님이 계시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있고, 연인들로 넘쳐나는 트레비 분수, 그리스도인의 피로 물들여진 콜로세움도 있다. 다 의미를 지닌 곳이지만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삶, 달라진 인생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로마 성 밖 ‘성 바울로 대성당’과 ‘바울로 사도의 참수지’를 꼼꼼하게 돌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박해시절 속칭 ‘예수쟁이’들을 잡아들이던 가해자에서 예수님을 체험하고 난 뒤, 삶의 자세를 확 바꾸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사도 바울로. “온유하고, 오래 참고, 시기하지 않는 게 사랑”이라고 설파한 바울로는 세 차례 전도 여행을 통해 중동에 머물던 기독교를 지중해 연안 유럽까지 확산시켰으나 끝내 참수형을 당했다. 네로 황제의 명을 받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 참수당한 바울로 사도의 목은 세 번 튀어올랐다. 세 번 튀어오른 그 자리마다 경당이 들어서있고, 목이 잘린 바울로의 시신을 묻은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가 바로 성 밖 성 바울로 대성당이다. 말하기보다 글쓰기를 더 좋아했던 바울로 사도가 죽음을 향해 마지막으로 걷던 그 길 끝에 자리한 참수지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사도의 외침이 들려온다. “돌아서라! 돌아서서 새 사람이 되어라!”

 

 

다마스커스에서 돌아서다

 

바울로는 원래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유다인 사울이었다.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던 사울은 앞장서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다. 그날도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시리아 다마스커스로 향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가던 사울이 갑자기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음성을 듣고 동시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비추는 빛을 받았다. 땅으로 떨어지며 실명하게 된 사울은 “뉘시오니까?”라고 물었다. 빛은 대답하였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하느님의 음성과 빛을 쐰 이후 투사 ‘사울’은 작고 겸손한 ‘바울로’로 바뀌었다. ‘다마스커스의 체험’으로 예수야말로 하느님의 아들임을 깨달은 바울로는 예수 사냥꾼에서 사랑의 사도로 바뀌었다. 개심한 바울로는 지중해 전역으로 세 차례 전도 여행을 다녔다. 전도의 거점은 안티오키아(=안디옥)이었고, 안티오키아 사람들이 예수를 신봉하는 교도들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매를 맞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던 바울로는 로마에서 네로에 의해 순교의 칼을 맞았다. 당시 네로는 로마 시가에 불을 지르고, 여론이 사나워지자 다급한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박해하였는데 이때 잡힌 바울로는 로마 남문 밖 뜨레폰타나에서 참수당하였다.

 

 

참수당한 목이 세 번 튀어오르다

 

사위가 어둠에 잠기는 시각, 바울로 사도의 순교지 뜨레폰타나를 찾아갔다. 일몰에 맞춰 문을 닫는 이곳에 아슬아슬하게 들어섰다. 바울로 사도의 참수지에 들어서니 오른쪽 구석에 어른 키 절반 쯤 되는 돌이 서 있다. 바로 사도 바울로가 참수당한 돌이다. 이 돌에 눕혀졌던 바울로 사도의 목은 참수당한 뒤, 세 번이나 땅에 떨어졌다가 다시 솟구쳐 올랐다. 사도의 목이 튀어오른 곳마다 물이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사도의 넋이 떨어진 자리마다 우리의 영혼을 씻어주려는 듯이 샘이 솟아올랐다고 해서 ‘세 분수’를 뜻하는 뜨레폰타나라고 부른다. 바울로 사도의 머리가 튀어오른 곳은 제단으로 바뀌었다. 불이 켜져 있는 첫 제단에서 14걸음 옆에 두 번째 제단, 그 14걸음 옆에 세 번째 제단이 있다. 부활절을 앞둔 성 금요일이 되면 교황은 이곳에서 십자가의 길 14처를 시작한다. 이방인의 사도 바울로, 사랑의 사도 바울로가 죽음을 향해 걸어갔던 마지막 10m 길과 참수지를 돌아보고 어둠 속에 젖어드는데 어디선가 사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로 사랑하라!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소리도 울리는 징에 불과할 뿐이니!” 고린토인, 에페소인, 갈라디아인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수많은 마음의 편지를 보내는 바울로 사도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각박했을까?

 

 

바울로의 묘지 위에 성전이 들어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는다고 가르친 바울로 사도는 64년 혹은 67년에 참수당해 오스티엔세 길가에 묻혔다. 바울로 사도가 묻힌 곳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성녀 헬레나의 아들)가 성전을 세웠다. 바로 4세기에 세워진 성 밖 바울로 대성전이다. 교황님이 계시는 베드로 대성전이 건립되기 전까지 가장 크고 아름답던 성 바울로 대성당은 19세기 초반 화재로 거의 전부 소실되어 버렸다. 현재 성당은 1854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새로 축성되었고, 전면 모자이크화는 일품이다. 성 바울로 대성전 정원에는 바울로 사도의 하얀 석상이 서 있다. 참수당한 바울로 사도의 순교와 성경 말씀은 검과 같다고 한 것을 나타내듯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성경을 들고 있다. 성당 내부는 화려한 다른 성당과 비교하여 무척 단조롭다. 마치 회심한 이후 바울로 사도가 평생 검소하게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에 전심하였음을 나타내 주듯이. 신약 27권 가운데 서간으로 된 고린토, 데살로니카, 골로사이서, 로마서 등 13권을 쓴 바울로 사도의 무덤은 중앙 제대 아래에 보관되어 있다.

 

[매일신문, 2007년 4월 26일, 글 사진 로마에서 최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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