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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못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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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7 ㅣ No.484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30)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못 간다?

 

 

Q. 아들이 초등학생 때는 열심히 성당에 다니다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어느 날인가부터 성당에 나가지 않아 속상합니다. 왜냐고 물으니 자기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서 동문서답을 하더군요.

 

그런데 아들 방에 들어가 보니 벽에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기가 더 쉽다’는 글이 쓰여 있는데 아들이 그 밑에 빨간색 펜으로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어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가도 좋으니 부자 한번 돼봤으면 좋겠다’는 글도 써놓았습니다.

 

이런 글을 왜 써놓았느냐고 물으니 자기는 돈을 많이 벌어서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고 싶은데, 성당에 가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서 자기 생각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자신의 신념을 써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저희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할까요?

 

 

A. 자매님 아들이 써놓은 글귀는 부자 청년 이야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주님께서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읽고서 그런 거부감을 가진 것 같습니다.

 

아드님은 성경의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자신에게 적용해 거부감을 가진 것입니다. 가난한 삶이 싫어서 부자가 되고 싶은데 주님께서는 그런 자기욕구를 죄악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아드님으로 하여금 신앙생활에서 발을 떼게 한 동기가 된 것입니다.

 

아드님은 성경의 주님 말씀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 중에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착하고 선한 부자 청년에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심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요구를 하신 것일까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일반 대중을 향한 말씀이라기보다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단의 입회 조건을 말씀하신 것이라 이해하셔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수도회에 입회하려는 사람들은 세 가지 서원을 해야 합니다.

 

청빈 · 정결 · 순명. 가난하게 독신으로 장상에게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주님께서는 초기 수도공동체를 만드시면서 부자 청년에게 가입할 조건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면서도 가진 것은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제자단에 가입할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 수도자들이 집에서 쓰던 외제차와 고용했던 사람들을 다 데리고 수도생활을 하겠다고 한다면 신자분들이 이해하고 공감해줄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당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드님에게 주님 말씀이 이런 내용이란 것을 알려주시면 오해가 풀릴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이 말씀 뒷부분에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씀은 좀 더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칫하면 아드님처럼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기가 더 쉽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가도 좋으니 부자 한번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이 부분을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관점으로 설명을 해왔습니다.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가난한 삶을 찬미하고,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강조하고,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난한 수도자적 삶이 강조되고 부자가 되고 싶은 욕구가 억압되다 보니 교회 안에서 무엇인가 불균형한 정서적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외적으로 가난한 삶의 티를 내서 내적 문제를 숨기려는 피상적인 신앙행동이 나타났고, 심리적으로 건강한 부분을 죄악시해서 병적 죄책감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어떤 자매님이 고민을 털어놓기를 자기는 왜 그리도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한탄을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욕심 부리셨는가 물으니 자기 분수를 생각지 못하고 자꾸만 좋은 물건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그런 것들에 대해 초연해야 하는데 자기는 잘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자매님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나치게 가난한 삶을 강조하고 욕심을 비난하고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강조한 나머지 사람이 가진 고유한 본성마저 죄악시하게 된 하나의 사례입니다.

 

주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당신에게 모든 것을 다 투자하고 당신의 가르침을 따라 인생 설계를 하라, 그렇게 하면 진정한 부자, 참 부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작은 욕심을 버리고 큰 욕심을 가지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자식 키우는 부모치고 자식이 가난뱅이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하느님께서도 그러하시다는 것을 자매님 아드님에게 꼭 알려주셔서 신앙생활을 통해 참 부자가 되는 길을 찾으라고 일러주시길 바랍니다.

 

[평화신문, 2009년 11월 29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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