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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용서하고 싶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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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7 ㅣ No.501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56) 용서하고 싶지 않은데

 

 

Q. 제게 마음의 상처를 줘서 도저히 용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에게 제가 입은 것만큼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 때문인지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분은 그 사람을 찾아가 용서하라고 하는데, 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나요?

 

 

A. 마음이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자매님 물음에 대한 답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와 용서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평화와 용서에는 아주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평화를 누리려면 용서해야 하고, 용서해야 평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용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다른 면으로 보자면 복수심이라고도 하는데, 복수심은 왜 생길까요?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흠집이 났다는 게 화가 나서 용서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또 어렵게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이 또 당했다는 생각에 상대에게 되갚아 주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복수심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대 로마 격언에 ‘복수는 고통의 고백’이라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어쨌거나 용서는 해야 합니다. 왜냐면 완벽한 복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상대에게만 치명적 손해를 주는 복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복수는 양날이 선 칼을 잡고 휘두르는 것과 같아서 상대뿐 아니라 자신도 다치게 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이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어떤 좋지 않은 현상이 생길까요? 우선 이성을 잃게 됩니다. 복수심은 사람 시야를 좁게 만드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자기 인생을 더 생산적으로, 더 많은 결실을 보는 쪽으로 만들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건강도 나빠집니다. 그중 하나가 감정적 배고픔에 시달리는 현상입니다. 

 

사람은 때가 되면 시장기, 배고픔을 느낍니다. 무엇인가 먹어야 그것을 소화한 힘으로 살 수 있는 존재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는 배고픔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정상적 배고픔과 감정적 배고픔입니다.

 

정상적 배고픔의 경우 밥을 먹지 않은 채 일을 계속하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에 배고픔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참을 수 있고, 기다릴 수 있으며, 식사를 할 때도 음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으며, 배가 부르면 수저를 내려놓습니다.

 

하지만 감정적 배고픔은 공복감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옵니다. 참거나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무엇인가 먹어야 하는 것, 그리고 충동에 밀려서 먹어대는데 골고루 먹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음식에 집착하는 등의 양태를 보입니다. 또 그렇게 먹는 것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감추기 위한 것이므로, 고통이 무감각해질 때까지 먹습니다.

 

이 경우 배가 불러도 상관없이 먹기 때문에 먹는다기보다 ‘쑤셔 넣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먹기에 자기가 먹으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먹고 난 후에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기분이 안 좋아지고, 심지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식을 하거나 무리하게 운동을 하거나 설사제를 복용하는 등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식생활을 합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이 바로 감정적 배고픔의 증상입니다.

 

감정적 배고픔은 복수심이나 분노 때문에 느끼게 됩니다. 정신의학자 버튜 박사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용서하는 의식’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상대방을 직접 찾아가서 용서한다고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상상으로 상대를 용서하는 의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식을 갖기만 해도 마음이 상당히 편안해지고 건강이 회복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것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한 가르침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하려고 해도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만의 용서의식을 갖는 것인데도 그것이 잘 안 되는 것은 본인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용서를 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때는 자기 자신을 자책할 게 아니라 과거 상처에 대해 전문상담가에게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0년 6월 6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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