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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 우정과 겸손 그리고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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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2 ㅣ No.135

[수도 영성]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 우정과 겸손 그리고 환대

 

 

아우구스티노*는 진리의 길을 찾기 위한 열정을 불태웠으며, 하느님을 자신 안에서 찾았던 열정적이며 의지적인 인물이다. 그는 세상 현실에서 진리를 찾을 수 없었으나, 결국 자신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진리를 찾을 수 있었다.

 

불안한 현실을 벗어나려 노력하는 신앙인들에게 그는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지 않고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찾고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여정을 수도 공동체, 신앙 공동체(TOTUS CHRISTUS)라는 신앙 의식 안에서 실현했던 선각자였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는 두 차례 과정을 통해 설립되었다. 첫째는 수도회의 정신적 설립이라 할 수 있는 공동체 삶의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그는 진리를 찾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열정과 의지는 친구를 사귀고 그들과 나눔을 통한 신앙공동체라는 결실을 이룬다.

 

그는 사도행전 4장 32절 이하의 초기 신앙 정신을 바탕으로 한 수도 공동체를 고향에서 시작했다. 또한 자신의 주교관 안에서 수도자로서, 성직자로서 한 인간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공동체를 통해 해소하고 보완했다.

 

아우구스티노의 교회와 신앙 그리고 교회 공동체성에 대한 항구한 열의는 330여권의 저술을 통해 유감없이 드러났다. 이 저술들은 이단에 대항해 신앙의 기틀을 이루었으며, 남녀 수도 공동체 형성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서방교회에서 최초의 규칙서를 저술했다. 이는 서방 수도회의 아버지인 베네딕토의 규칙서보다 120년, 프란치스코보다 800년 앞서 저술되어 여러 남녀 수도회의 정신적 기틀을 이루게 했다. 이렇게 공동체적 삶과 사도직에 기여한 열정과 정신은 그의 친구들과 제자들을 통해 유지하였으나 교회의 제도적 형태의 삶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 기반을 근거로 많은 수도 공동체가 12세기까지 존속하면서, 교회는 이들을 하나의 제도적 구조 안에 모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것이 아우구스티노 수도 공동체의 두 번째 재정립 시기라 할 수 있다. 1244년과 1256년, 소통합과 대통합의 과정에서 안티발디 추기경과 알렉산데르 4세 교황의 노력으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는 구조적 기틀을 이루게 된다.

 

아우구스티노 영성의 주요 토대는 공동체적 정신이다. 그의 규칙서에 나와 있듯이 “우리가 하나로 모여 사는 첫째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이다”(1.1). 수도자 개인의 역량을 발휘이거나 인품이 뛰어난 수도자적 자질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향하고 공동체 형제들과 함께하는 과정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너희가 하나로 모여있는 첫째 목적은 한 집 안에서 화목하게 사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공동체적 영성을 몇 가지 특성을 통해 완성하려 했다. 이 영성은 수도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이 가져야 할 가치로, 현실의 불안을 벗어나려는 모든 이가 찾아야 할 특성이다. 그는 수도자들의 공동체적 삶이 단지 거룩한 영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일찍 깨우쳤던 것이다.

 

인간적 어려움을 가진 존재이며, 서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우정을 통해 확인하고 찾았다.

 

우정은 수도자의 정체성을 지지하는 토대이며,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정신적 자양분이다. 그는 히포의 주교로서 여러 신앙과 삶의 문제에 직면해야 했다. 법적, 교의적, 윤리적 문제 등. 날마다 거듭되는 다양한 문제의 어려움 앞에서 그는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주교관에 돌아와 형제들과 함께 하루 삶을 나누는 공동체는 진리의 실체를 만나는 곳이었으며, 여기서 그는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그 고귀한 하느님의 선물인 우정의 신비한 가치를 이렇게 제시한다. “나는 다른 벗들의 위로에 다시금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오가는 말같이 늘 웃기, 사이좋게 도와주기, 여럿이 함께 재미난 책 읽기, 서로 놀되 존경하며, 가다가 어긋남이 있어도 나 스스로에게처럼 미움이 없기, 그리고 어쩌다 있는 엇갈림에 뜻을 고루어 다져놓기, 무엇을 배우기와 서로 깨우쳐주기, 없으면 못 견디게 보고 싶어하고 만나면 얼싸안고 반가워하기, 서로의 마음에서 입을 거쳐, 혀를 거쳐, 눈이며 백 천 가지 좋기만 한 동작으로 나타나 불씨와도 같이 마음들을 녹여, 여럿을 하나로 만들어놓았나이다” (“고백록”, 4권 8장).

 

이렇게 하나로 모여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인간은 지위고하와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교만에 미혹될 수 있는 존재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겸손을 통해 거듭 자신을 찾고 하느님을 찾으려 했다.

 

겸손의 영성적 특성은 그리스도적 덕성을 기르고 화목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은 겸손으로 유지되고 확인된다고 하였다. “다른 모든 악습은 악한 짓들을 행하도록 하지만, 교만은 착한 행위까지 손상시켜 없애버린다”(규칙서 1,6-7). 그는 권위와 위계질서에 따른 겸손의 필요성을 주지한다. “아래 있는 너희는 위에 있는 이들에게 순종해야 한다.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이르기까지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 있는 이들은 아래 있는 이들을 지배하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 앞에 종으로서 겸손하게 그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개별적 인격에 대한 세심한 존중을 통해 겸손의 은총을 유지하도록 제시한다. 세속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살다가 수도원에 들어온 이들과 가난한 가정에 살다가 온 이들, 그리고 건강한 이들과 건강하지 못한 이들,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상호간에 개별적 차이가 있음을 주지한다. 이는 인간이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로 서로 보완하고 상호적인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중은 자신의 내면에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환대의 정신을 통해 이루게 된다.

 

환대의 영성적 특성에 대한 그리스도적 덕성은 너와 나의 갈등 경계를 무너뜨리고, 소속감, 친밀감, 신뢰감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수도원에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다가가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몰두해 찾아오는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거나 무관심을 느끼지 않도록, 찾아오는 이들을 친절히 환대해야 한다.

 

환대는 오늘 우리 교회 목자와 신앙인들에게 주지하는 바가 크다.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 중엔 계층적 소외감이나 위화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찾아와 예수님의 사랑과 관심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교회 공동체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노의 우정과 겸손 그리고 환대는 오늘의 사회, 교회, 가정, 수도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영성적 토대이며 소중한 덕목이다.

 

*수도회 명칭은 고유명사 표기에 따라 아우구스띠노로 하나 성인 이름은 한국 천주교 용어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아우구스티노로 표기합니다.

 

[경향잡지, 2007년 12월호, 서인석 야고보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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