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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교회: 아이티의 생명줄인 가톨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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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6 ㅣ No.141

[세계 교회 동향] 아이티 교회 - 아이티의 생명줄인 가톨릭교회

 

 

미국에서 600마일(960km) 떨어진 섬나라 아이티. 마치 우리의 이웃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때로 잊고 사는 것처럼 미국에 살고 있는 나 자신도 아이티가 그렇게 가까이 있는 이웃 나라인 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2010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아이티에서는 진도 7.0의 강진이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에서 발생하였고, 이 때문에 아이티는 지금 전 세계인의 이목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는 약 90%의 건물들이 붕괴되거나 망가졌고, 지금까지 최소 15만 명이 사망하고 백만 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희생자들을 포함한다면 천만에 가까운 아이티의 인구 가운데 약 20%인 200만 명이 자연 재해의 피해자가 된 셈이다.  정부는 이곳 주민들에게 수도를 떠날 것을 종용하였고 벌써 약 24만 명의 주민들이 이곳을 떠났다.

 

유엔의 세계 식량 보조 프로그램 담당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50만 명을 먹일 수 있는, 1,300만 끼에 해당하는 400만 개의 구호 식량을 아이티로 긴급 보조해 주었다. 200만 명의 이재민들이 지금부터 올해 말까지 식량 보조를 필요로 하기에 세계 각국의 끊임없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플라스틱과 마분지, 또는 천 조각으로 만든 텐트 안에서 살고 있고, 몇 개월 뒤 시작될 우기철에 대비하여 많은 자선단체들이 긴장하며 대책을 마련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과 4개월 전에 아이티 단기 선교를 다녀온 우리들에게 이러한 소식은 더욱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선교 수도회인 ‘가난한 이들의 선교 수도회(Missionaries of the Poor, MOP)’의 안부를 묻는 전화들이 넘쳤다. 그리고 더욱 걱정이 컸던 것은 그곳에 우리들이 사랑하는 어린 아이티 대자녀 6명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티는 왜 가난할까?

 

아이티는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불린다. 인구의 4분의 3이 하루 2달러 이하의 낮은 생활비로 살고, 56%의 인구는 하루에 1달러 이하로 산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삶이다. 3분의 1 이상의 인구가 비위생적인 식수를 먹고 사는데, 이러한 물이라도 사려고 동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아이티를 방문했을 때 목격하였다. 그밖에도 80%에 가까운 실직률과 56%의 문맹률로 한 나라가 절대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조건을 모두 갖춘 나라가 바로 아이티이다. 또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의 75%를 단 5%의 거주민들이 소유하고 있고, 50%에 근접한 부를 단 1%의 인구가 조정하는 등 빈부격차도 심각하다.

 

아이티 사람들은 본래 식민시절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의 후예이다. 18세기에 아이티는 생도밍게즈(Saint Dominguez)라 불렸는데, 유럽에 열대 농작물의 3분의 2 이상을 공급하며 프랑스 속국으로서는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1791년에 투생 루방튀르(Toussaint Louventure)가 이끄는 노예들의 조직적인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종주국인 프랑스에 대항하여 치른 이 전쟁은 13년 동안 계속되었고, 이 때문에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라의 체계가 무너지고 농작물 재배는 중단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전쟁이 끝난 1804년에 아이티는 세계에서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독립된 공화국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아울러 노예제도가 금지된 첫 번째 나라로서 노예들의 천국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강대국들은 아이티가 재건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아울러 프랑스는 아이티의 완전한 독립을 조건으로, 또한 전쟁에 대한 손해배상 명목으로 1억 5천만 프랑을 요구하였는데, 이는 아이티 정부 1년 예산의 10배에 가까운 액수였다. 두려움과 또 다른 침략 방지책으로 이 요구에 응한 아이티는 프랑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손해배상을 시작하였고 19세기 말경부터 이후 125년 동안 80%의 아이티 국가 수입을 빚으로 청산하는 데 사용하여 오늘날 무력한 아이티의 경제와 고질적인 가난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

 

 

아이티에 메아리치는 절규에 찬 기도

 

아이티는 인구의 약 80%가 가톨릭 신자이다. 이전에는 95%에 가까운 인구가 신자였지만 라틴아메리카에 진출한 개신교 선교사들의 열성으로 해마다 가톨릭 신자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아이티에는 두 개의 대교구를 포함한 9개의 교구가 설정되어 있다. 한편 이번 지진으로 포르토프랭스 주교좌 성당을 포함한 60개의 성당이 붕괴되고 100명 이상의 사제와 수녀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 가운데 포르토프랭스 주교좌 성당의 많은 직원들과 조셉 서지 미오트 대주교도 포함되었다.

 

아이티가 지금까지 비참한 삶을 살면서도 연명할 수 있었던 원동력 뒤에는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자선 · 구호단체들의 도움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국민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삶의 여건을 마련해 주지 못한 부패한 정부를 대신하여 가톨릭교회는 학교, 병원, 고아원, 그리고 자선단체들을 운영하며 그들의 생명줄이 되어주었고, 해외의 자선단체들은 이들을 위한 기금, 식량, 의류, 의약품, 의료진 등을 지속적으로 충당해 주었다. 이번에 지진으로 희생당한 사제와 수녀들은 바로 이 생명줄을 잡고 있던 천사들이었다.

 

이재민이 된 그들은 허물어진 성당 건물 밖에서 나무 책상으로 만든 제대 앞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미사 뒤 마침기도로 바치는 ‘절망적인 상황의수호성인’이신 ‘유다 성인에게 드리는 기도’가 절규에 찬 목소리로 하늘 높이 메아리친다. “유다 성인이여, 저희는 절망적입니다!” “유다 성인이여, 아이티 사람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아이티 재건을 위한 초대가 되기 바라며

 

다행히 오래 전부터 아이티의 가난을 전해준 선교사들과 아이티의 실정을 알리고 도움을 청한 아이티 사제들의 노력으로 미국의 본당은 아이티의 일부 성당과 자매결연을 맺어 1년에 한 두 번의 의료 선교팀을 파견하고, 2차 헌금을 지원하며, 아이티 사제의 미국 방문을 주선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아이티 교회에 도움을 주고 있고, 아이티 신학생들을 보조하는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어 아이티 교회의 미래가 그리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티의 재건을 위해 지역사회 안에서 어머니의 자궁 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재건은 상대적으로 시급한 과제이고가톨릭 신자인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한다. 글로벌 시대의 우리들에게 아이티는 그리 먼 나라가 아니요, 그들은 우리 곁에 살고 있는 내 형제요 내 어머니이다. 아이티의 지진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또 다른 구원으로의 초대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눌 수 있는 기회,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생각해 봄으로써 내 신앙을 돌아보는 기회, 교회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기회, 줌으로써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받을 수 있는 기회, 그럼으로써 한 발짝 더 구원의 길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이 글이 아이티와 아이티 가톨릭교회의 재건을 위한 초대가 되기를 바란다.

 

* 김한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 미국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 신자이며, 2009년 창설한 미국 한인 평신도 선교회인 ‘Bridge of Mission International(세계 선교의 다리 선교회)’ 회원이다. 1996-1997년 폴란드, 헝가리 등으로 단기 선교를 다녀왔으며, 2003-2009년에는 해마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이티 등지에서 봉사하였다.

 

[경향잡지, 2010년 3월호, 김한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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