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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교회: 아프리카 교회의 선한 목자들과 생기발랄한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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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5-02 ㅣ No.144

[세계 교회 동향] 아프리카 교회 - 아프리카 교회의 선한 목자들과 생기발랄한 전례

 

 

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마리안힐 선교수도회(Missionary Mariannhill) 소속 신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낯설고 물선 이곳에 온 지 어언 13년이 흘렀습니다. 고국을 떠나서 사는 분들의 상정일 텐데 여기서는 한국교회를 자랑하고 싶고, 한국에 가면 아프리카 교회를 그렇게 말하게 됩니다.

 

2008년 말 짐바브웨와 말라위 출신의 수도회 신부님 세 분을 모시고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그 어떤 아시아 국가에도 발을 디뎌보지 못한 분들인지라 퍽 들떠서 출발했는데 저는 다른 이유로 설레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과 한국 교회를 보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 표정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예상대로 아프리카에서 온 여행자들은 한국의 일상을 만나면서 ‘원더풀!’ 하고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성당이 아름답다, 성가가 곱다 했고, 교우들의 어울림과 아이들의 눈망울이 빛난다, 먹는 음식마다 맛있다 했습니다. 또 찾아가는 수도원마다 젊은 수도자들의 뜨거운 기백이 시원하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 그들이 전례에 대해서만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너무 딱딱하고 경직된 것은 아닌가.’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매사 생기발랄하게 지내는 아프리카 형제들의 눈에는 경건과 엄숙의 틀이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노래하고 춤추며 드리는 미사

 

아시는 대로 아프리카 전례의 상당 부분은 춤과 노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축일이나 무슨 행사가 있으면 미사는 서너 시간을 훌쩍 넘깁니다. 그래도 지겹다거나 따분해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급할 것 하나 없는 생활이라서 그렇고, 특히 회중이 바라보기만 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저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여지가 많아서 그럴 것입니다.

 

입당예절은 춤을 추는 어린이 댄서들과 통일된 복장을 갖춰 입은 레지오 단원들 그리고 성가대의 긴 행렬로 이루어집니다. 아마 영국 여왕도 이처럼 화려한 입성을 자주 즐기진 못할 것입니다. 행렬에 끼지 못한 다른 참석자들이라도 서운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서있는 자리에서 노래하고 흔들어대면 그만이니까요.

 

참회예절 때는 모든 신자가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면서 자신의 허물을 뉘우칩니다. 그러다가 대영광송(글로리아)이 시작되면 분위기는 급반전, 다시노래와 춤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표현합니다. 아! 여러분도 우리 아프리카 형제들이 부르는 대영광송을 꼭 한 번은 들으셔야 할 텐데요. 아마 만 볼트의 전류에 감전되는 듯 전율하실 것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말씀전례가 시작되면 성경을 든 아이가 가마를 타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말씀의 탄생이 연상되기도 하고 어린이처럼 되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사제가 강론을 시작하기 직전에 온 회중이 사제를 위해 노래를 불러줍니다. ‘사제의 입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잘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는 내용인데 설교자를 위한 일종의 응원가입니다.

 

보편지향기도도 재미있습니다. 미리 지정된 신자 넷이 나와서 기도를 바치는데 원고를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음에서 떠오르는 대로 절실하게 소리칠 따름입니다. 저는 번번이 놀랍니다. 어쩌면 떨거나 당황하지도 않고 그렇게 줄줄 기도가 나오는지 신통하기만 합니다. 배운 것도 짧은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아마 맨발로 대지를 밟고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맑은 영혼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가끔 돈 대신 농산물을 봉헌예물로 바치기도 합니다. 특히 주교님이 오시면 살아있는 양을 끌고 와서 바친 다음 제대 옆에 매어둡니다. 순간순간 들뜨고 시끄러웠던 분위기도 성찬례 순서가 되면 숙연하고 차분해집니다. 이때만큼은 세상의 모든 교회가 한 가지 풍경일 것입니다. 사제는 또박또박 경문을 읽고 신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제대를 향합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기도를 노래할 때 성당은 다시 아프리카 본연(?)의 활기를 되찾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 5분도 모자랍니다. 전체가 일어나서 일제히 춤을 추며 서로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포옹하고 볼에 입을 맞춥니다. 우리나라의 꽹과리 비슷한 타악기를 두드리기도 합니다. 좀 심하지 않느냐고요? 글쎄요, 주님의 부활 소식을 나누는 시간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요!

 

이처럼 아프리카의 전례에는 빈 무덤을 향해서 달려가는 막달레나와 두 제자의 쿵쾅대는 맥박이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얼싸안는 감격이 살아 숨쉽니다. 사실 우리 한겨레의 밑바탕에 흐르는 흥을 생각하면 한국 교회의 전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새로워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부디 아프리카 교회의 전례도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설거지하는 추기경님

 

아프리카 교회는 평신도, 수도자, 신부와 주교 이른바 사부대중이 격의 없이 지냅니다. 교회의 어른이라 할 주교님이나 신부님들도 남을 위한 봉사와 배려가 몸에 배어있습니다. 한국 사회를 감동시킨 김수환 추기경님과 같은 어른들을 이곳에서도 자주 만납니다.

 

그 가운데 이곳 더반 교구의 윌프리드 네이피어 추기경님이 계십니다. 추기경님은 제가 다녔던 신학교에 자주 방문하셨는데 바비큐 파티(부라이)가 열릴 때마다 팔을 걷으셨습니다. “고기는 내가 구워야 제 맛이지!” 하시면서 손수 고기를 구워 신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곤 하셨습니다. 파티가 끝나면 반드시 설거지까지 도맡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그리고 의심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이셨습니다.

 

한번은 견진성사를 집전하시려고 본당을 방문하셨는데 풍모는 엄숙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하도 소박해서 만나뵙는 사람마다 마음이 푸근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잔치에서는 당신을 위해 마련한 자리를 제쳐두고 신자들 속에서 어울리며 잡수셨습니다. 물론 이런 인품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대접받고 군림하려는 장상들을 만나는 일 또한 아프리카에선 흔한 일이 아닙니다.

 

 

트럭 타고 오신 분

 

또 한 분. 오늘까지 짐바브웨는 독재자 무가베의 삼십 년 넘는 철권통치 아래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힘쓰는 어른이 계십니다. 파이어스 은츄베 주교님인데 반복되는 가택연금과 공공연한암살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예언자의 소명을 다하는 아주 용감한 목자이십니다.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킬러들이 무섭지도 않은지 하루는 견진성사를 집전하러 혼자 교구청을 나서셨습니다. 주교님은 기사도 자가용도 없이 ‘바키’라고 하는 작은 트럭의 짐칸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 본당에 오셨습니다. 잔뜩 뒤집어쓴 먼지를 털면서 트럭에서 내린 노인이 주교님이심을 알아채고는 모두 깜짝 놀랐지요. 주교님은 신학생이던 저에게 “아프리카의 삶이 고단하고 어렵겠지만 절대로 용기를 잃지 말게나. 꼭 사제가 되어 우리 함께 일하세!”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때 주교님의 미소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이 가난한 대륙에서 스승 예수의 길을 즐거이 걷고 있는 것은 이런 어른들의 은덕에 힘을 입어서입니다. 아프리카 교회 전례의 신명과 기쁨은 바로 이와 같은 목자들의 봉사와 배려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여러 가지 장점 뒤에는 순교자들의 헌신과 열정이 깔려있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교회는 저마다 보석처럼 빛나는 유산을 갖고 있습니다.

 

* 김인준 마태오 - 남아프리카 공화국 마리안힐 선교수도회 신부로 수도회 청원장을 맡고 있다. 2008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경향잡지, 2010년 4월호, 김인준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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