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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에콰도르 교회: 라틴 아메리카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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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7-16 ㅣ No.150

[세계 교회 동향] 에콰도르 교회 : 라틴 아메리카에서 만난 사람들

 

 

저는 1986년 남미 에콰도르에 와서 이곳 과야킬 대교구 사제로 서품되어 지금까지 약 24년간 토착 원주민들과 함께 주님의 종으로 살고 있습니다. 꿈속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낯선 이국땅에서 생소한 문화와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남이 저에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을 뿐 아니라 간직해 왔던 기존의 신앙에 불을 지르는 위대한 혁명을 가져다준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 사목지에서 맞이한 첫 성탄

 

저의 첫 임지는 배를 타고 방문해야 하는 큰 강을 둘러싼 밀림, 몬투비오스(숲속인)들이 사는 30여 개의 공소였습니다. 그해에 대부분의 공소들은 처음으로 성탄미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들뜬 기분으로 두세 달 전부터 각본에 맞추어 연극을 준비하고, 성당이 없는 숲속에서 어떻게 하면 제대와 구유를 잘 꾸밀 수 있을지, 축제날 먹을 음식은 누가 할지 분담하면서 나름대로 분주하게 성탄을 기다렸습니다. 12월 중순부터는 공소마다 정해진 날짜에 성탄을 지냅니다. 가정마다 예쁘게 만든 옷을 입힌 크고 작은 아기 예수님 상을 모셔와 축복을 받은 뒤 서로 얼싸안으며 용서와 화해의 극적인 순간을 맞이합니다.

 

예수 성탄 대축일에는 모든 공소에서 온갖 꽃들과 팔마 가지로 아름답게 장식한 배를 타고 아기 예수님 상을 앞세워 북을 치고 노래하며 본당에 모여듭니다. 이는 실로 천국의 잔치에 초청을 받아 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준비된 야외 미사 장소에 아이들 어른들 노인들로 엄청난 무리를 이루며 서로를 소개하고 축하하였습니다. 같은 강줄기에 살면서도 통성명도 못하고 지내다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 기쁨이 성탄 분위기를 더 뜨겁게 하였습니다.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성탄의 열기가 무르익어 가고 아기 예수님을 통해 서로의 우정과 형제애를 다져갔습니다. 이는 철저히 가족적이고도 공동체적인 성탄 축제의 모습입니다.

 

 

따로 또 하나의 언어로 부르는 성가

 

성탄을 지내고 나면 그 동안의 노고를 칭찬해 주시고자 주교님께서는 교구의 신부님을 모두 초청하여 각자의 새로운 체험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 주십니다.

 

우리 교구엔 유럽 신부님과 아프리카 신부님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부님, 그리고 한국 신부님들도 계십니다. 또한 같은 중남미 대륙의 신부님들이 계시고, 에콰도르 신부님들 중에서도 케추아 부족, 추아라 부족, 코환 부족, 아프로 아메리카 신부님과 메스티소와 물라토 신부님 등 다양한 언어와 인종의 선교사들이 사목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인종의 집합체라 하여도 과장된 표현이 아닐 듯합니다.

 

이 모임의 마지막은 ‘고요한 밤’ 노래로 장식하는데 처음엔 스페인어로 시작하고 그 다음엔 각자의 고유 언어로 동시에 부릅니다. 저도 한국어로 한몫을 해냅니다. 모두가 동지가 되어 손을 잡고 한 몸과 한 마음이 되어 맞추는 이 아름다운 화음은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천상의 합창이 되어 교구청 강당의 창살을 타고 세상을 향해 은은히 흘러 퍼집니다.

 

모두가 이 신비로운 분위기 앞에 제압되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미소로 또는 촉촉이 젖어오는 감격의 눈망울로 아쉬움 없이 서로를 나눕니다. “아버지, 우리가 하나이듯 이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는 말씀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 누가 이토록 다른 민족들을 한 형제요 같은 동반자로 느낄 수 있도록 모아 주셨나이까?

 

저는 그 순간 달랠 수 없는 벅찬 감정으로 “아! 이것이 바로 천국이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로다!” 하고 감탄합니다. 그야말로 제가 배운 모든 신학을 총정리하여 깨달음의 정점에 도달한 느낌이었습니다.

 

 

중남미 교회의 어제와 오늘

 

중남미 교회는 500년 전 침략자들에 의해 흘린 피와 상처로 얼룩진 교회입니다. 침략자들과 운명을 같이한 당시의 선교사들의 눈에는 원주민들의 문화나 종교의식이 모두 마귀의 장난으로만 보였습니다. 이 그릇된 판단으로 그들의 성전을 마구 파괴하고 그 위에 거대한 성당들을 지었으며, 제사장들을 참혹하게 학살하고 세례 받지 않는 사람들을 처형했습니다. 결국 진정한 의미의 신앙이 아니라 죽음이 두려워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통계적으로 전 세계 천주교 신자의 과반수가 중남미에 살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유아 세례를 받았으며 무서운 벌과 신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부적과 같은 의미로 세례를 이해하는 현실입니다.

 

비록 이런 엄청난 모순을 지닌 교회라고는 하나 과거 원망이나 상처 치유에만 머물거나, 과거를 답습해서도 안 된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명하고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사시는 주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다양한 라틴 아메리카 문화와 민족들을 한 우리 안에서 성장시켜 오셨고 또 이끌어 가시는지를 숙고하고 있습니다.

 

수차례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 연합회 회의를 거치면서 식민지의 잔재와 정치 경제적 모순 때문에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희생양으로 살아가는 대다수 민중의 현실을 깊이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중남미 모든 교회가 문을 열고 서로 협조하면서 자주 모여 사목적 문제를 토론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리우데자네이루, 메데인, 푸에블라, 산토 도밍고, 아파레시다에서 열린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 연합회 시노드 문헌의 공통 주제는 ‘가난하고 억눌려 신음하는 민중의 교회’였습니다.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잘 아는 로메로 주교님이 총살되셨고, 에콰도르 아마존 밀림의 인디언들의 주교인 알레한드로 라 바카 주교님이 창에 맞아 순교하셨으며, 근자에는 콜롬비아의 이사야 대주교님이 정치가들과 마약범 집단에게 총탄 세례를 받으며 비참하게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방패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실종되거나 납치되고 살해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인종들을 하나로 모아 하느님 백성으로 만드시려는 예수님의 뜻을 용감히 전한 교회의 참된 증인들입니다.

 

또한 교회는 사라져가는 다양한 인종의 문화를 존중하여 연구하고 있으며 그 가치를 재발견해 주고 있습니다. 전례의 토착화도 이루어 스페인어가 아닌 그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결코 분노하는 신이거나 벌을 주는 저주의 신이 아니라 민족과 운명을 함께해 오신 살아계시며 자비로우신 분으로 찬양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라틴 아메리카 교회는 과거와 현재의 장벽을 부수고 미래를 향한 희망찬 교회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예수님을 따르는 중남미 국가의 여러 민족들이 한 믿음 한 형제 되어 서로 나누며 사는 진정한 교회의 모형을 전 세계에 드러내 보일 날이 올 것이라 저는 굳게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에콰도르라는 작은 공간에서도 여러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수많은 원주민들과 살았습니다. 이들은 제게 주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통해서 저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성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저의 신앙을 성숙시킬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를 키워주신 한국 교회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한국 교회가 아시아권 문화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준비된 선교사들을 많이 파견하여 세계 교회 안에서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건설해 나가는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한용완 요한 - 에콰도르 과야킬 대교구 신부.

 

[경향잡지, 2010년 7월호, 한용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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