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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생명력의 에디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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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05 ㅣ No.151

놀라운 생명력의 에디오피아

 

 

사하라 사막 남쪽에 있는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나라들 중에서도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독특한 나라입니다. 기원 전 1000년부터 왕국이 건설된 역사 깊은 나라이며 유다교와 관련 깊은 나라입니다. 에티오피아에는 90여 개 종족이 이루는 6,350명(2000년 현재)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면적이 1,114,000㎢인 에티오피아는 한국(남한)보다 12배 정도 되는 큰 나라입니다. 서쪽으로는 수단이 있고, 남쪽에는 케냐, 동쪽에는 소말리아, 북쪽에는 이집트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중심부는 고원지대이고 동쪽과 남쪽은 고원지대에서 갈라져 내려 온 계곡이 있습니다. 이 계곡은 사해부터 홍해와 모잠비크까지 흘러가면서 많은 호수들을 만들어냅니다. 지형이 다양하여 사해 같은 해저 116미터나 되는 다나길 호수(Danakil Depression)가 있는가 하면 해발 4,620미터나 되는 라스다산 산(Ras Dashen)도 있습니다. 저지대는 열대 기후로서 고온 다습하여 섭씨 50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매우 덥지만 고원지대는 고산 기후로서 연중 기온 변화가 적고 평균 16도 정도로 온화합니다. 계절은 우기와 건기의 장단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 다르며 대체로 사계절이 있습니다. 여러 종족과 부족이 모여서 사는 에티오피아는 언어별로 크게 두 그룹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고원지대에 사는 암하라족은 셈족(Semitic) 계열이고 섬알리족, 오로모족, 아파르족은 햄족(Hamitic) 계열입니다. 암하릭어(Amharic)는 공식 언어로서 고유 문자도 있습니다. 그 외에 영어, 아랍어, 티그리뇨어(Tigrinya)도 사용합니다.

 

우리는 에티오피아에 대해 말할 때 금방 1984-1985년대의 기아를 기억합니다. 죽음과 고통이 많은 나라로서 역사 안에서 볼 때 이 기아 사건이 유일한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에티오피아 국민은 9세기부터 기록된 기아만 40회 이상 겪었고 이 모든 기아를 견디어 냈습니다. 1888-1892년에는 대 기아 때문에 인구의 2/3 이상이 죽었습니다. 전쟁 또한 많았습니다. 7백년 전부터 기록된 역사를 보아도 10년 이상 지속된 평화가 있었던 시기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현 정부가 민주 공화국으로 출범하기 전까지 거의 20년 동안 군사 정부와 사회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이 국민은 대단한 지구력과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인구 80%는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농산물로는 커피와 곡물 등이 있고 소와 낙타도 많이 키웁니다. 사람들은 주식으로 ??인제라??라는 음식을 먹습니다. 이것은 부드럽고 얇은 빵 위에 소스나 고기를 곁들여서 손으로 싸서 먹는 음식입니다. 아직도 가난한 나라인 에티오피아는 1인당 국민 소득이 125달러(1999년 현재)에 불과하고 절대 빈곤 상태에 있는 국민도 전체 인구의 절반이나 됩니다. 교육 시설이 부족하여 성인 문맹률이 60% 이상이며 보건 시설도 열악하여 국민의 평균 수명이 50세 전후입니다. 에티오피아에는 이슬람교와 토착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고대 그리스도교 문화 유산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고 국민의 절반이 정교회 신자들입니다.

 

그러면 잠시 에티오피아의 고대 역사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기원 전 2700년에 에티오피아에는 향과 몰약이 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기원 전 1000년에 고대 에티오피아 왕국이 건설되었고 기원 전 600년에는 악숨(Axum) 왕국이 건설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홍해를 통한 무역이 활발했던 것 같습니다. 무역 국가들은 대체로 이스라엘, 인도, 중국까지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악숨 왕국에 관한 신화가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세바의 여왕(남쪽 여왕)이 악숨의 여왕이라고 믿습니다. 세바의 여왕은 무역 길을 따라 홍해를 건너 솔로몬 왕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과 동침을 하여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왕은 에티오피아로 돌아와서 메넬릭 왕자를 낳았습니다. 20세가 된 메넬릭 왕자는 아버지를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솔로몬 왕은 왕자를 성대하게 환영했지만 얼마 후 원로들은 샘이 나서 왕자를 그의 나라로 돌려보내라고 간청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동의하는 조건으로 원로들의 맏아들들을 메넬릭 왕자와 함께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 맏아들 중에는 대사제 사독의 아들도 있었는데 그는 성전에서 계약궤를 훔쳐 에티오피아로 가져갔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에서는 계약궤를 찾지 못했고,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이 계약궤가 악숨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는 이와 같은 신화가 없기에 이 신화는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볼 때 에티오피아는 유다교와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도 팔라샤 부족은  탈무드 이전(Pre-Talmudic)의 전통 유다교를 지키며 회당에 모입니다. 1975년에 선종한 하이렐 셀라시에 황제는 자신이 메넬릭 왕의 후손으로서 조상은 바로 솔로몬 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모든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 26-40절에서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케의 내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간다케'는 그 지방에서 그냥 여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쨌든 그 내시는 필립보에게서 세례를 받았지만 공식적으로 그리스도교가 에티오피아에 들어온 해는 330년입니다.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 때 박해를 피해 시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이 무역 상인들의 항로인 홍해로 도망갔습니다. 우연히 그들 가운데 젊은 사람 2명이 에티오피아에 가게 되었습니다. 프르멘시오라는 똑똑한 젊은이는 왕국에 머물면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왕은 그에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를 모시고 오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 주교는 에티오피아로 오는 대신 프루멘시오에게 주교품을 주고 돌려보냈습니다. 악숨에 돌아온 프루멘시오 주교는 왕을 그리스도교에 입교 시켰습니다. 그 후 에티오피아는 이 백 년 만에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부터 그리스도교는 주로 하층 계급부터 상층 계급으로 전파되어 갔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왕과 왕족, 상류 계급에서 하류 계급으로 전파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에서 그리스도교는 항상 왕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6세기 말엽 아두리스 항구가 다른 나라에게 강탈당하여 바닷길이 막히게 되자 어렵게 되었습니다. 또한 100년 이후 이슬람교인들이 해안으로 침입해 왔습니다. 이렇게 적으로부터 둘러싸인 에티오피아는 1000년 동안 세계와 고립된 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의 영토를 확장하면서 에티오피아에 들어오게 되자 에티오피아는 다시 세계와 연락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 가톨릭교회의 선교에도 에티오피아는 여전히 콥트 교회(Coptic Egyptian Monophysite)였습니다. 예수의 인성은 무시하고 신성만 인정하는 단성론 등 몇 가지 교리의 차이 때문에 로마 가톨릭교회가 시도한 일치 운동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교회 활동은 교회 일치를 위한 것이었고, 그리스도인이 아닌 부족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도 했습니다. 데 야고비스 주교와 마싸야 추기경이 19세기의 유일한 선교사였습니다.

 

에티오피아는 한번도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처럼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1936년에서 1941년까지 5년 동안 이탈리아의 간섭 하에 있었습니다. 1974년 사회주의자 멘기투스 대령이 1930년부터 나라를 지배하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신이 집권했지만 1991년 쿠테타로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러나 1993년 에리트레아 독립 선언으로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와 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해상 무역 항로가 사라지게 되자 다시 1998년 에리트레아와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또한 수단과 소말리아에서 밀려오는 난민들 때문에 국가의 재정 상태는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지금 에티오피아는 연합 민주주의 공화국입니다.

 

종교와 문화는 다양합니다. 수단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남쪽의 부족들은 전통 종교를 따라 아직도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동쪽의 소말리아 종족은 유목 생활을 하거나 이슬람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쪽 지부티 근처의 아파르족은 아주 공격적인 성향을 띠며 유목 생활을 하면서 소, 염소, 낙타를 키웁니다. 이들은 원시적인 생활 습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며 사람의 목숨은 낙타 100마리로 갚아야 합니다. 고원 지대에 사는 암하라족은 아프리카에서 가톨릭의 유일한 종족입니다. 이 종족은 교회와 사제와 타봇(Tabot)을 중요시합니다. 사제는 사람들과 하느님의 중개자이며 각 마을에 성당이 있고 사제도 있습니다. 전례 안에서 일치와 조화가 중요하고 청원기도도 중요합니다. 전통적인 은수자들과 수녀님, 수사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영성 지도도 하며 단식과 기도를 통하여 세상에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어떤 은수자들은 동굴 속이나 나무 위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시간을 성서를 읽고 기도하면서 보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의 영적 지도를 받으러 찾아옵니다.

 

교회 전례는 고대 게에즈(Geez) 언어로 합니다. 성당에서는 사회적인 모임이나 종교적 모임도 하고 전통 문화 교육도 합니다. 에티오피아는 아직도 '율리우수 달력'(Julian Calendar)을 사용하고 있어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과 연월일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 성탄절은 동방 교회와 같고 가톨릭교회보다 몇 일 뒤에 거행합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에서는 예수 성탄절보다 주님 공현 대축일이 더 중요합니다. 이날 에티오피아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도 기억하며 축일을 지냅니다. 이날을 '팀캇'이라고 하며 해마다 사제들이 거룩한 타봇을 모시고 행렬을 합니다. 원래 계약궤는 악숨에 있는데 타봇은 돌이나 나무로 만든 판들로서 모세의 계약의 돌 판을 상징적으로 재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타봇을 많이 공경합니다. 타봇은 축성된 것으로 성당에 이 돌 판이 없으면 다른 일반 건물과 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타봇을 불경한 시선으로부터 보호하도록 명주실로 수놓은 천과 금, 은으로 덮어야 하고, 이때 향을 피우며 악기와 작은 종을 치고 나팔을 붑니다. 사제들은 타봇을 특별한 텐트 안에 모셔 놓고 밤을 세우면서 계속 기도하고 다음날 사람들에게 세례를 줍니다. 그리고 다시 성당에 타봇을 모십니다.

 

에티오피아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인간 문명의 비범한 건축 작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랄리벨라(Lalibela)의 성당들입니다. 각 성당은 직접 동굴 속에 정으로 내부와 외부를 파서 만들었는데 두 종류의 성당이 있습니다. 깎아지른 절벽 내부에 동굴처럼 만든 성당과 접근이 어려운 바위 꼭대기나 계곡 사이에 지은 보통 건물 구조의 성당이 있습니다. 이 첫째 종류의 성당은 보통 동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큰 바위에 참호처럼 만든 것으로 그 성당들 안에는 성서 내용의 벽화들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습니다. 또한 모든 성당들은 지하로가 그물 망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성당들 안에서 전례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랄리벨라 시는 과거의 수도였지만 지금은 작은 마을에 불과합니다. 이 마을에는 랄리벨라 왕자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왕의 돌에 맞은 랄리벨라 왕자는 숨이 끊어지는 동안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에서 하느님을 보았고 하느님께서 자신이 죽지 않으며 왕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한 왕이 되면 하느님을 위하여 세상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특별한 성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성당의 설계도도 보았습니다. 그의 꿈대로 왕자는 왕이 되었고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설계도대로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천사들이 사람들을 도와 주었고 밤에는 천사들이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밤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탄 성 제오르지오가 나타나서 자신을 위한 성당 건축을 건의하자 왕은 성 제오르지오를 위한 아름다운 성당을 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베타 기오르기스'(성 제오르지오의 집) 성당이 생겨났습니다. 이 성당은 거의 완벽한 정육면체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 숨겨진 지하도로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밖에 기억해야 할 유적 가운데는 2000년이 된 높이 25미터의 악숨 돌기둥과 옛 수도 곤다르의 성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땅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하느님의 복도 많이 내렸습니다. 이 강하고 자랑스런 에티오피아 국민은 언제나 모든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제 몇 년 동안 평화의 길을 걸으면서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에는 아름답고 재미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사진을 보는 것보다 에티오피아에 직접 가서 경험하는 것이 에티오피아를 잘 알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단 타무랏 신부(꼰솔라타 선교 수도회) / 교황청전교기구 한국지부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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