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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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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191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

 

 

1. 문제 인식

 

북핵문제가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2003년 7월 서울에서 열린 제11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측 단장은 한반도에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일촉즉발의 긴장된 사태가 조성되고 있다."라고 하면서 남북한이 "민족공조로 미국에 의해 조성된 전쟁 위험을 막고 나라의 평화를 지키며 북남 화해과정을 촉진시키기 위해" 금년 8월 15일부터 상대방에 대한 비방 방송을 전면 중지하는 조치를 취하자고 제안하였다. 또한 남한의 '주적론'에 대해 한반도에서 "새 전쟁을 일으키려는 미국의 책동에 도움을 주고 동족의 희생을 가져올 뿐"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의 '선(先) 핵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북한의 무장해제를 노리는 것이며, 미국이 "전쟁전략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한마디로 북한은 평화를 사랑하는 데 반해 미국이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한국은 그러한 미국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주장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핵개발을 동결하겠다는 제네바 합의가 있었음에도, 북한은 영변에서 북서쪽으로 40km 떨어진 용덕동에서 1997년부터 2002년 9월까지 이미 70여 차례에 걸쳐 핵무기 제조를 위해 필요한 고폭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1) 더욱이 지난 6월 30일 영변 핵시설 내 8천여 개의 사용 후 핵 연료봉에 대한 재처리 작업 완료를 미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 후 핵 연료봉의 재처리 완료는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상당량 확보한 것을 의미한다. 2003년 7월 20일에는 북한이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제2의 비밀공장을 보유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할 설득력 있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북한의 주장대로 재처리가 완료됨으로써 상당량의 플루토늄이 확보되고, 북한이 이를 "핵 억지력 확보를 위해 사용할 수밖에 없다."라고 미국에 통보했다는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결국 핵무기 보유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핵무기 개발의 진전 상황을 외부에서는 누구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엄격히 말해서 북한 체제의 성격으로 볼 때 외부에서 그 수준을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한 핵개발 수준을 두고 누가 옳고 그른지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또한 확인할 수 없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평가나,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더라도 남한을 타격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안이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주장'대로 핵을 평화적으로만 사용할 것이고, 또 북한이 진정한 한반도 평화상태를 구축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남북화해와 협력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우려하고 있는가? 이러한 우리의 우려는 과연 잘못된 것인가?

 

 

2. 제2차 북핵문제의 전개과정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James Kelly) 미 국무차관보의 방북 후 발표된 농축 우라늄 핵무기 개발계획 의혹으로 시작된 제2차 북핵문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회의 대북 중유공급 중단 결정(11월 15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의 대북 핵개발 계획 포기 및 안전조치이행 촉구 결의안 채택(11월 29일) 등과, 이에 대한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제의(10월 25일), 영변 동결 핵시설 가동 및 건설 재개 선언(12월 12일),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 추방(12월 31일) 등 상호 간의 공방으로 발전하였다.

 

2003년에 들어 이와 같은 공방은 악순환의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1월 6일 국제원자력기구 특별이사회가 농축우라늄 핵계획에 대한 해명, 모든 핵무기 계획의 검증 가능한 방법에 의한 폐기, 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한 내 모든 핵물질에 대한 검증 허용 촉구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북 결의안을 채택하자, 1월 10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다는 정부 성명 발표로 대응하였다. 국제원자력기구 특별이사회는 2월 12일 북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와 총회에 보고할 것이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였으며, 마침내 북한은 2월 하순 "전력 생산과 같은 평화적 목적에 한정"한다면서 영변의 5MWe 원자로를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핵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 실험실의 재가동을 준비한 북한은 4월 18일 외무성 대변인 기자회견을 통해 "8천여 개의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까지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라고 발표하였다.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중 3자 회담(4월 23-25일)에서는 북한 대표가 미국 대표에게 핵무기 보유를 시인하고 8천개의 폐연료봉 처리도 거의 마무리했음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4월 30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미국의 대북 '압살책동' 때문에 "부득불 필요한 억제력을 갖추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라고 핵 억제력 보유를 시사하였다.

 

북핵문제의 심각성이 점차 증대하면서 5월과 6월에 걸쳐 한·미·일 3국은 교차 정상회담을 통하여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대화의 방식으로는 다자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3국은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제거되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포함된 5자 회담 형식의 다자 회담 추진이나 북한이 추가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경우에 대한 조치 등에 관한 한·미·일 3국의 이해 수준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미국은 확산방지구상(PSI)이란 새로운 조치를 가지고 일본, 호주, 영국, 스페인 등 여러 나라와의 국제적 연대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압박외교(coercive diplomacy)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은 북한의 마약과 무기 밀수출과 같은 "불법적 행위를 더욱 엄격하게 단속"한다는 명분으로 북한의 돈줄에 압력을 넣고 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방향에서 접근했던 유럽 연합(EU) 국가들도 6월 20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북한조항을 포함시켜 북한의 핵프로그램과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조치협정 미준수가 비확산 체제를 저해하고 있음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7월 초에는 북한이 최근 영변의 핵 재처리 시설에서 8천여 개의 사용 후 연료봉의 일부에 대해 재처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보 평가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러한 평가와 함께 나온 70여 차례에 걸친 북한의 고폭 실험에 대한 소식은 북한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동안 원칙적인 입장에서만 북핵문제를 언급하던 중국이 7월 중 고위급 특사를 서둘러 평양과 워싱턴에 파견하여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3. '정권 안보'를 위한 협상용인가, 핵무기 보유 의지인가?2)

 

북한 핵개발프로그램의 수준에 대해서 그동안에는 대체적으로 북한이 1-2개의 핵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와 같은 북한의 핵 보유 추정의 근거는 1990년대 초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에 제출한 핵활동 보고서의 내용과 국제원자력기구 사찰 결과의 '불일치'에서 출발한다.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향후 핵 활동 전면 동결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북한의 과거 핵 활동에 대한 사찰문제는 추후의 해결과제로 남게 되었다.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의 정보당국은 북한의 핵 보유 의지와 과거 핵 활동에 따른 플루토늄 추출 가능성에 근거하여 북한의 핵 보유를 추정해 왔다. 미국의 CIA는 북한이 2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판단해 왔으며, 특히 부시 행정부에 들어서서는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언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2003년 4월 베이징 3자 회담에서 핵 보유를 시인한 것이다. 핵 보유를 시인한 북한의 의도가 북한이 제시한 이른바 '대담한 접근'을 미국에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활용하려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미국의 북한 핵 실체에 대한 추정 단계를 넘어선 더욱 분명한 증거의 확보와도 관련이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핵 보유 '추정'과 핵 보유 '시인'은 그 의미에서 중대한 차이가 있다. 북한의 핵 보유 시인이 허세, 압박, 위협 등의 목적을 가질 수도 있다. 이것은 경제적 자원의 고갈상태에서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자신의 체제를 위협한다고 보는 북한 측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북한 측의 행태를 두고 볼 때, 핵 보유 시인은 북한 핵의 실체를 더 이상 문제 삼을 필요가 없는 단계로 상황이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북한의 핵전략을 보유와 개발이 아닌 '협상'에만 무게를 두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대응에 실패할 수 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는 "핵 실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 보유 기정사실화는 곤란하다."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현재의 핵 기술 수준에서 반드시 핵실험을 해야만 핵 보유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핵실험과 관련하여 확인도 부정도 하지 않는(NCND) 전략을 채택할 수 있으며, 핵실험은 핵사용 직전에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컴퓨터 모의 실험도 핵실험을 대체할 수 있다. 더욱이 소형이면 지하 동굴에서 은밀히 실험할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의 경우 파키스탄의 핵실험 자료로 실제 핵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핵실험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고폭 실험을 이미 70여 차례 이상 실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핵실험이 핵 보유 입증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북한은 핵실험 의도 자체를 협박 또는 협상용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핵실험이 필요불가결한 사안이 아님에도 북한은 핵실험 의사 카드를 적절한 시기에 협상용·협박용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요컨대 북한의 핵무기 보유나 구체적인 핵물질이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핵무기 보유 여부는 핵무기를 가진 나라가 핵 실험을 하는 방식이나 선언을 하는 방식 등으로 과시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확인할 수 없으니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하여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중요한 점은 전체주의 독재자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이 자신의 정권 안보를 위하여 핵카드를 활용하고 또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4. 북한, 미국과 한국의 입장

 

1) 북 한

 

2003년 1월 10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한 이후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 시사 등 단계적으로 미국에 대한 대응 수준을 높이면서도,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으며, 현 단계에서의 핵 활동은 전력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국한하고, 북·미간 별도의 검증을 할 용의가 있다는 등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동시에 북한은 미국이 체제안전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북·미 불가침협정 체결을 주장하면서, 북·미 양자간에 불가침협정 체결과 미국의 우려 사안을 동시에 협상하자는 입장을 보여주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대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의제를 '핵개발 포기'에 한정하고 있는 것은 진지한 협상을 하고자 하는 의사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북한은 미국을 '제국주의자'로 간주하는데, 이는 미국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담고 있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대북 '압살정책'을 강화하고 있고, 남북관계의 진전을 방해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핵태세 보고서(2002년 3월)에 따라 북한을 비롯한 7개 국가에 대한 핵선제 공격을 정책화하는 등 제네바 합의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파기하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다자 회담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다루려는 것을 북한과 실질적인 관계를 개선할 의도 없이 북한을 무력화(無力化)시키기 위한 의도로 판단하는 것이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논평(2003년 6월 9일자)을 통해 "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도는 미국이 우리(북)와의 쌍무회담을 통하여 출로를 찾는 것뿐이며, 미국이 쌍무회담을 회피하고 '다자 회담'만을 고집하는 것은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국력을 무기로 하여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자기 정체성을 압박하고 있는 '위협국'이지만, 동시에 정치·안보 관계 개선 과정을 통해 정치·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고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국가라는 점에서 북한의 딜레마가 있다. 북한은 또한 대미관계 개선을 추진함으로써 경제회복을 위한 자원 동원의 출처와 시장으로서의 기대도 가지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북한의 핵심적인 전략 수단은 대량살상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이다.

 

2) 미 국

 

미국은 북핵문제를 북·미 양자간 사안으로서가 아니라 국제적 사안으로 다루고 있으며, 다자간 틀 속에서의 양자간 대화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일단 '선 핵문제 해결, 후 지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외교적 수단과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경제제재, 해상봉쇄, 군사적 압박 등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대안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 첫째, 북한은 시간을 벌기 위해 서방의 지원을 활용했을 뿐 적대적 입장에는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둘째,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여 핵무기 개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셋째, 지속적인 생화학무기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넷째,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지원책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통해, 미국은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북한에 대한 정책에서 강한 불신을 저변에 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의 일차적 목표는 대량살상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의 확산 방지이며, 대북 접근은 장기적 차원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개입전략의 일환이다. 미국은 북한이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핵프로그램을 폐기할 경우, 북한 인민 지원, 대북 제재 완화(경제제재 완화, 테러 지원국가 해제), 기타 정치적 조치 노력(정치적 관계개선과 수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 핵의 '선 해결'을 추진하고 있으며, 대량살상무기, 미사일, 재래식 전력, 인권문제 등에도 관심이 많다.

 

3) 한 국

 

2002년 10월 북한이 농축우라늄 핵개발 계획을 시인하였을 때, 미국이 강경한 태도를 보인데 반하여 한국은 대미 대화 재개 의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은 북핵문제 해결이 시급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해 오고 있다. 또한 주변국과의 공조를 중시하면서 특히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였다. 요컨대 북핵문제에 대한 입장은 북핵 불용, 대화를 통한 해결, 한국의 적극적 역할이라는 입장으로 정리되었다. 

 

이러한 한국의 입장은 최근 미국이나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 부분적으로는 실용주의적 노선이 가미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은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서 현실주의적인 대안의 선택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5. 북핵 해결의 대안

 

제네바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미국 협상대표로 참여했던 로버트 갈루치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섯 가지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3) 첫 번째 선택방안은 유엔 제재이다. 그에 따르면 유엔 제재는 군사행동처럼 도발적이지 않으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제재로 북한을 굴복시켜야 하는데 중국은 제재를 지지하지 않는다. 제재를 하면 북한이 붕괴하고 내부 폭발을 일으켜 중국이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선택 방안은 군사행동이다. 군사적인 선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원하는 부분만을 외과적으로 도려내는 국지적 타격이다. 그런데 농축우라늄 핵 시설의 위치를 모르며 국지적 공격이 북한의 대규모 반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정권 교체이다. 미국의 일부 인사들은 이 방안을 장기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이 방안도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안고 있고 한국 정부가 이 방안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군사적 방안은 항상 선택 방안으로 남아있다.

 

세 번째는 이른바 '공짜점심' 또는 '무임승차' 방안이다. 이 방안 가운데 하나는 중국이 북핵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위협이 미군의 대응으로 이어져 미군이 바로 국경까지 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일본이 비핵정책을 재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중국이 적극적으로 평양에 압력을 넣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북한이 미국의 무력행사 위협에 굴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현실적인 방안은 아니다.

 

네 번째는 억제와 관리(contain and management) 방안이다. 이 방안은 제재와 공짜점심 방안을 결합한 형태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도록 허용하고 핵 이전에 한계선(red line)을 부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장기적으로 이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의 핵이 용인된다면 한국과 일본도 핵 보유를 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마지막의 대안은 협상 방안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외교는 시도하겠지만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목적을 달성하려 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고 협상을 피하는 태도이다.

 

한편, 북한의 노동 미사일로 일본열도가 사정거리에 들어감으로써 북핵문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일본에서 나온 대안을 보면 다음과 같다.4)

 

첫 번째 대안은 외교적 노력을 통한 새로운 합의의 도출이다. 북한은 2003년 4월 23`-`25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중 3자회담에서 새로운 포괄적 제안을 내놓았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실험 동결과 수출 중단, 핵 포기를 약속하는 대신 미국은 불가침 약속, 한국과 일본은 대북 경제지원에 나서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이 북한의 핵 포기 등을 목표로 삼고, 그 대가로 불가침 약속을 해줄 용의가 있다면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다.

 

두 번째 대안은 북핵 시설의 폭격이다. 북핵 시설에 대한 제한적 공습과 관련해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를 선택의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 한국은 이 대안의 선택에 절대적으로 반대하며 일본도 반대한다. 한·일과의 정책 협력을 강조하는 미국에게도 이 시나리오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대북 봉쇄로서, 이는 위험을 동반한 새로운 냉전의 시작을 의미한다. 송금 정지를 포함한 경제제재부터 북한을 출입하는 선박 전체에 대한 검사와 같은 해상봉쇄까지 형태는 다양하다. 봉쇄 전략은 북한에 양보를 촉구하는 압력수단으로서의 의도가 있다. 그러나 일단 제재에 돌입하면 양쪽 중 한쪽이 꺾어질 때까지 대립의 강도가 상승되기 때문에 역내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

 

 

6. 한반도 평화과정의 험로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공산주의자, 독재자, 그리고 무수히 많은 북한 주민의 삶을 등한시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당한 지도자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러한 지도자와 협상을 할 수는 있으나, (불법적인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다. 미국의 대북정책의 일차적 목표는 대량살상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세계적 차원의 전략적 문제이며, 북한에 대한 접근은 장기적 차원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개입전략의 일환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반도의 불안정을 방지하고 안정적 평화를 보장할 수 있도록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불안 요인을 제거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 문제를 관리함으로써 현상을 유지하면서 위기관리의 제도화를 중시하고 있으며, 한반도 질서의 안정적 관리를 선호한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핵심은 북한에 대한 '개입'을 지속하되 '힘의 외교'의 토대 위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제시하고, 북한이 그에 적응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해 나가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방향에서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제2단계 테러와의 전쟁의 목표, 곧 '대량살상무기 사용에 의한 테러'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는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은 그 최우선 순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북한이 경제부문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으로도 실질적 변화를 보이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의 입장에서 부시 대통령은 거대한 군사력과 국력을 무기로 하여 북한을 없애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자'로 간주된다. 미국은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자기 정체성을 없애려고 하는 거대한 '괴수'로 비친다. 따라서 북한은 자원의 고갈상태에서 체제를 유지하고 특히 김정일 정권을 유지하려면 군사적 수단을 버릴 수 없다.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은 김정일이 가지고 있는 군사전략무기이자 정치적 무기이다. 그런데 사회주의 진영 붕괴 이후 북한은 '적대국'이자 '제국주의자'인 미국과의 정치·경제 관계 개선과정을 통해 체제 안정과 안보를 보장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자국을 '압살'하려는 국가를 통해 생존을 유지하는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을 본 북한 지도부로서는 자기보존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전략적 수단인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의 확산 위협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대량살상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미국의 외교·경제적 제재와 군사적 대응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북한은 앞으로도 협상과 대화결렬, 대북제재 감수 불사, 강경대응 등을 혼합하여 사용할 것이다. 

 

결국 북핵문제의 해결은 여러 가지의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상태를 수립하기 위한 과정은 험난하다. 우리에게는 평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는 것과 함께 북핵문제라는 국제정치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위에 공고한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평화는 말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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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앙일보」, 2003년 7월 10일자.

2) 조민, "핵 불감증에 걸린 한국," 「월간 중앙」, (2003.6.), 296-301면의 관련 내용 참조.

3) 「연합뉴스」, 2003년 5월 7일자.

4) 「연합뉴스」, 2003년 5월 7일자.

 

[사목, 2003년 8월호, 박영호(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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