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체 선교 글라라 수녀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28 ㅣ No.89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체 선교 글라라 수녀회 (상)

 

 

비신자 아이들을 위한 「토요학교」에서 수녀가 아이들과 비누방울 만들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원내는 창립자인 마리아 이네스 데레사 아리아스 수녀.

 

 

「성체 선교 글라라 수녀회」. 이름만 들어선 수도회의 정신을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 「글라라 수녀회」는 봉쇄 관상수도회인 「성 글라라 수도회」와 비슷한데다, 「선교」라는 말은 관상수도회와는 반대 의미를 지닌 활동수도회를 뜻하는 것으로 보여 수도회의 영성적 지향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체 선교 글라라 수녀회」의 정신(영성)과 사도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의문이 도움이 된다. 왜 그러한 표현을 사용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바로 아는 것이 수도회의 영성과 삶을 이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성체 선교 글라라 수녀회의 영성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선교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선교」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활동」 선교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게, 복음의 전달자가 된다』는 보다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뜻을 담고 있다. 수녀회가 지향하는 「선교」란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녀회의 영성은 다분히 「관상적」이다. 이러한 영성의 뿌리는 단순함에 있다. 단순함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자신도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충만한 내적 기쁨으로 드러난다. 

 

수녀회 영성은 또한 「성체적」이다. 회원들의 삶, 사도직, 영성의 중심은 성체다.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1고린 15, 25)라는 성서의 말씀을 모토로 삼고 있다. 성체적 삶이란 나아가 『예수 성체와 같이 우리도 쪼개어지고 나눠진 삶을 살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죽기까지 희생하는 사랑을 사는 것』이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한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을 살기에 「마리아적」이며 「사제적」인 삶이기도 하다.

 

이처럼 『선교적, 성체적, 마리아적, 사제적 삶, 이 모든 것을 기쁘고 단순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성체 선교 글라라 수녀회의 정신이다. 기쁨과 단순함은 수녀회 창립자 마리아 이네스 데레사 아리아스 수녀(1904~1981)가 지향한 정신이었고, 그의 삶도 기쁨과 단순함으로 빛났다. 

 

이러한 「선교적」 의미, 기쁨과 단순함에 바탕을 둔 회원들의 삶은 작은 희생, 숨은 희생과 실천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삶의 순간 순간에 일어나는 작은 희생, 기도, 감사 이 모든 것이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봉헌된다. 그것이 곧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지향과 영성은 소화(小花) 데레사 성녀의 영성과도 매우 흡사하다. 봉쇄 관상수도자였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선교사들의 주보가 된 소화 데레사 성녀의 삶도 「작아짐」 「단순함」의 모델이었고, 영혼구원을 위한 작은 희생과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열망, 그것이었다. [가톨릭신문, 2004년 8월 1일, 전대섭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체 선교 글라라 수녀회 (하)

 

 

한국을 방문한 수녀회 총장 및 본원 관계자들과 함께 한 한국지부 수녀들.

 

 

수도회의 정신과 삶은 보통 창립자의 영성과 지향을 토대로 한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의 특별한 뜻이 그 가운데 있다고 믿는다. 성체 선교 글라라 수녀회도 예외는 아니다. 창립자의 삶과 수녀회 창설 역사는 이 수도회 영성과 정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창립자 마리아 이네스 데레사 아리아스는 1904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20살 되던 해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 성체대회였다. 당시의 부르심에 대해 마리아 수녀는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큰 힘으로 나를 끌어 당기셨다. 그때부터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동경이 되었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믿음에 충만해 성체의 예수성심께 의탁했고, 그로부터 그의 모든 생애는 성체적이 되었다. 

 

1929년 당시 멕시코 정부의 박해를 피해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옮겨있던 글라라 봉쇄수도회에 입회하고, 이곳에서 16년 동안 관상 수도생활을 하게 된다. 침묵, 기도, 희생, 노동으로 헌신적인 삶을 살면서도 선교에 대한 갈증은 끊임없이 깊어져갔다. 이것이 정말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식별하기 위해 더욱 기도와 고행에 정진했다. 보다 더 열렬한 기도 속에서 더 큰 선교적 열망을 찾았고, 이러한 선교적 열망은 그녀를 더욱 깊은 관상에 이르게 했다. 

 

새로운 선교 수녀회 창설을 위해 수녀회를 떠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깨달은 그는 마침내 1944년 8월 그녀를 따르는 다섯명의 수녀와 함께 쿠에르나바카에서 새로운 수도공동체를 시작했다. 1951년 6월 교황청의 인가를 받음으로써 「성체 선교 글라라 수녀회」라는 이름의 새로운 수녀회가 탄생했다. 

 

한국 진출 과정에서 창설자에 얽힌 사연도 특이하다. 창설자 마리아 수녀는 어릴적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와 순교자들의 삶을 담은 책을 감명깊게 읽은 뒤 한국이라는 나라를 마음에 품고 자랐다. 

 

그녀는 수녀회 창립 후 오랫동안 품고 있던 한국 선교를 실현하고자 1970년 한국을 방문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녀의 소망은 그가 선종한지 6년 만인 1987년, 대전교구에 첫 발을 내딛음으로써 비로소 실현됐다. 

 

「과달루페 성모님」을 주보로 모신 성체 선교 글라라 수녀회는 현재 14개국에서 600여명의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동과 성인을 위한 교리교육, 의료 및 보건위생사업, 유아와 청소년 교육, 기숙사와 피정의 집 운영 등 사도직을 수행하며 특히 평신도 선교공동체인 「반 글라르(Van Clar)」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선 현재 대전교구에서 본당사목과 여대생 기숙사 「과달루페의 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비신자 어린이 선교를 위한 「글라라 토요학교」를 열고 있다. 한국지부(지부장=라우라 수녀)에는 현재 모두 8명의 수녀가 활동하고 있다. 

 

수녀회는 올해로 창립자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세계 회원들이 창립자의 시복시성을 기원하고 있다. 한국지부는 지난 7월 7일 창립자 탄생 100주년 기념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 성소모임은 매월 넷째 주일 오후 3시부터. 문의는 (042)527-5514, 대전시 서구 괴정동 114-3. [가톨릭신문, 2004년 8월 8일, 전대섭 기자]



76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