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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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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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2-01 ㅣ No.604

[현대교회의 가르침] (40)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상)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구원의 희망 온 세상에 전

 

 

삼천년기를 맞이하여 희년을 지낸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2003년에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 vivit)을 통해서 성체성사가 교회를 살게 하는 신비의 핵심임을 강조하였다. 

 

이 회칙의 서론에서 “주님께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하신 약속의 항구한 성취를 교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쁘게 체험하지만, 특히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주님의 현존을 강하게 체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모든 교우들이 이런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체험하고 있는 지 의문이 간다. 왜냐하면 한국천주교회는 교우수가 계속해서 증가를 하지만 그것 보다 더 많은 쉬는 신자들이 생겨서 주일미사 참례자는 2013년 전체 신자수의 21.2%(2013년)에 불과하다. 곧 세례 받은 교우들의 다섯 중에 한 사람만이 실질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는 의미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교회를 세우고 양육하며 종말론적 희망으로 나아가게 하는 성체성사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주님을 만나면 우리는 변한다. 이 회칙은 성체성사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여정을 가르쳐준다. 

 

앞으로 2회에 걸쳐서 서론과 6장으로 구성된 본론, 그리고 결론으로 이루어진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내용들을 간추려서 설명을 하겠다. 현존하시는 주님이 가장 잘 드러나고 그분을 만나는 체험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1. 파스카 신비에서 태어난 교회

 

교회의 원천이 어디부터인지, 또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첫 걸음이다. 20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교회는 자신의 기원과 사명을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계속해서 확인해왔다. 

 

이러한 과정의 결실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의 감도하심과 오랜 신학적 통찰력으로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헌장 11항)이라고 하며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인 “살아있는 빵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심을 올바르게 선포했다. 교회의 시작이 성체성사의 제정과 연결되어 있음을 회칙은 강조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만찬을 주례하시며 빵을 들고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마태 26,26 루카 22,19 1코린 11,24 참조)하고 잔을 들어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마르 14,24 루카 22,20 1코린 11,25 참조)하고 말씀하셨으며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1코린 11,25)고 명하심으로써 교회는 예수님께서 행하는 것을 기본적인 사명으로 여기며 수행해왔다(회칙 2항 참조). 

 

주님의 구원신비들은 전례, 특히 성삼일 전례 안에서 선포되며 기억된다. 그래서 과거에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현실이 바로 현재의 교회 안에서 실재가 되어 나타난다. 성체성사 안에서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라고 하면, 교우들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응답하면서 교회는 자신의 토대와 근원이 바로 “파스카 성삼일 전체”라고 증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에 성체성사를 주심으로써 교회에 파스카 신비가 영원히 현존하도록 하셨다”(회칙 5항).

 

 

2. 그리스도의 얼굴 바라보기의 절정은 바로 성체성사

 

대희년의 유산으로 교회에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2001)와 성모님께 관한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 2002)와 연결된 ‘그리스도의 얼굴 바라보기’를 주제로 교회의 다양한 측면들을 더욱 심화시키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며 제삼천년기를 맞이한 교회가 새복음화의 열정으로 역사의 바다에 깊이 뛰어들도록 권고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계획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분께서 여러 현존 양식으로, 특히 당신의 몸과 피의 살아 있는 성사로써 당신을 드러내실 때마다 그분을 알아볼 수 있다”는(회칙 6항) 말이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가 겪었던 체험을 교회가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다”(루카 24, 31). 예수님을 알아보는 데 있어서 ‘빵 쪼갬’ 예식으로 초기교회에 불려졌던 성찬례 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것을 교회는 재확인하고 있다.

 

 

3. 주님의 현존의 잔치인 성체성사의 의미를 모호하게 하거나 평가절하하는 행위들에 대한 우려

 

회칙의 서론 마지막에 성체성사에 대한 우려가 되는 여러 상황들에 대한 서술이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성체 조배 관습이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또 교회의 여러 지역에서는 이 놀라운 성사에 관한 가톨릭 교리와 건전한 신앙에 혼란이 생기는 폐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극단적으로 축소하여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사도직 계승에 바탕을 둔 직무 사제직의 필요성이 때때로 흐려지고, 성찬례의 성사적 본질이 일종의 선포 형식이라는 단순 효과로 축소되기도 합니다.”(회칙 10항).

 

교황님은 이러한 현상의 결과로 교회의 신앙 표현 원리에 어긋나는 성찬 관습에 빠져 드는 초교파적 행위들이 생겨남에 대한 깊은 슬픔을 느끼며 성체성사의 큰 은총에 대한 모호성이나 평가절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합니다. 그러면서 회칙이 “용인할 수 없는 교리와 관습의 어두운 구름을 걷어 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 성체성사가 그 찬란한 신비로 끊임없이 빛나기를 바랍니다”(회칙 10항)라고 하면서 회칙의 목적을 설명한다.

 

 

4.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는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의 사건

 

회칙은 성체성사가 의미로만 구원의 사건 재현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을 기억(anamnesis)을 통해 현재로 불러오는 ‘오늘’(hodie)의 사건임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마치 그 자리에 함께했던 것처럼 당신의 희생 제사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인 성체성사를 남겨 주신 다음에야 십자가 희생 제사를 바치시고 성부께 되돌아가셨다(회칙 11항 참조). 

 

부활로 정점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미사에서 성사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실체 변화라는 매우 특별한 현존과 관계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의심 없이 총체적으로 또 온전하게 하느님이며 인간으로서 현존하시게 되는 곧 본체적인 현존 방식”이다.(바오로 6세, 「신앙의 신비」 39항).

 

희생 제사의 구원의 힘은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영성체에서 완전하게 실현되며 이는 신자들과 그리스도의 내밀한 결합을 지향한다. 물론 이는 강생의 신비 때 함께 했으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한 성령의 내림으로 가능해진다.

 

영성체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교우들은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에 대한 종말론적 희망을 지니면서 가장 약하고 가장 힘없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거의 잃어버린 듯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희망을 전하고 복음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1코린 11,26) 계속 이어가야 한다(회칙 20항 참조).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로마 교황청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면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11월 30일, 윤종식 신부]

 

 

[현대교회의 가르침] (41)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하)


성찬례, 복음화 원천이며 사제생활 중심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는 교회와 성체성사의 불가분의 관계를 재조명한 문헌이다.

 

교황은 묵주기도의 해 중간인 2003년 성목요일에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회칙을 발표하면서 성체성사와 교회의 뗄 수 없는 관계에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조명한다. 회칙은 성체성사의 각 부분의 역사적, 신학적 과정과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성체성사의 가장 본질적인 신학적 원리인 구원역사의 현재화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해서 말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의 사도 전래성을 강조하며 교회일치운동을 전개하면서 생길 수 있는 신학적 원리의 이완된 적용의 문제제기를 한다. 

 

또한 매일의 미사거행이 사제들에게 영적양식을 얻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하고 조절과 적응에 있어서 사제개인의 임의적인 행위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주교들과 교황의 친교와 유대 안에서 지역상황과 문화를 고려한 토착화의 원리를 재확인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체적 신앙생활의 모범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며 구원의 신비에 동참한 성모 마리아를 제시한다.

 

 

성체성사는 복음화의 원천이며 정점

 

온 세상의 복음화는 교회의 지상명령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어받아서 온 인류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와 성령과 친교를 이루게 하는 복음화를 계속하고 있다. 회칙은 이 복음화의 원천을 성찬례에서 발견한다. “교회는 십자가의 영원한 희생 제사에서, 그리고 성찬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결합됨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수행할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성찬례는 모든 복음화의 원천이며 정점입니다.”(회칙 22항). 

 

교회의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와 결합함으로써 힘을 얻어 복음화를 계속해서 실행할 수 있다. 성찬의 희생 제사 거행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공경도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과의 친교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며,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처럼 예수님의 품에 바싹 기대어(요한 13,25 참조) 그분 마음속의 끝없는 사랑을 느끼는”(회칙 25항) 즐거운 일인 성체 조배를 특별히 장려한다.

 

 

성체성사는 사도 전래성을 기반으로 교회가 거행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사도들 위에 세워진 교회의 사도 전래성(apostolica indoles)을 세 가지 의미로 보았다. 

 

먼저,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뽑으시고 선교에 파견하신 증인들인 ‘사도들의 기초’(에페 2,20) 위에 세워졌습니다.”(857항) 따라서 성체성사도 사도들에게 기초를 두고 있다. 

 

두번째는 “교회는 그 안에 계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사도들의 가르침과 고귀한 유산, 사도들에게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보존하고 전한다.”(857항), 마찬가지로 성체성사도 사도들의 신앙에 따라 거행되기 때문에 사도적이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사도들의 사목직을 이어받아 그들을 계승한 사람들, 곧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회의 최고 목자와 하나되어 사제들의 도움을 받아 이 명령을 수행하는’ 주교단을 통하여,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거룩하게 되며 지도를 받는다.”(857항)는 의미이다. 곧 유효한 주교품을 처음부터 중단 없이 이어받는 것을 뜻한다. 일반사제직을 수행하는 신자들은 “자신의 왕다운 사제직의 힘으로 성찬의 봉헌에 참여”(교회헌장 10항)하지만, “참으로 그가 지닌 거룩한 힘으로 사제다운 백성을 모으고 다스리시며, 성찬의 희생 제사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거행하고 온 백성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교회헌장 10항) 사람은 성품 사제이다. 

 

최근 몇십년 동안 교회 일치 영역에서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이 오랫동안 가르침으로 전해온 진리를 저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분별력 있는 행동이 요구됨을 회칙은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갈라진 형제들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지만, 성찬례의 본질을 흐리는 것을 묵과함으로써 진리를 명백히 증언할 의무를 저버리지 않도록, 그들의 예식에서 나누어 주는 친교의 빵을 거절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눈에 보이는 완전한 일치를 향한 진전이 늦어지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위에서 말한 교회 공동체들의 신자들과 함께 하는 초교파적 말씀 전례나 공동 기도 예식, 나아가 그들 공동체의 전례 예식 참여로 주일 미사를 대신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한 전례나 예식이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성찬의 친교를 포함하여 완전한 친교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 아무리 훌륭하게 이바지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성찬례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회칙 30항). 또한 가톨릭 신자들은 사도 전래성에 문제가 있어서 유효한 성품성사가 없는 공동체에서는 성체를 받을 수 없다(회칙 46항, 참조).

 

 

사제는 날마다 성찬례를 거행함으로써 목자다운 사랑을 지속할 수 있다

 

다양한 사목활동에 참여하는 현대의 사제들은 수많은 다양한 임무 속에서 중심을 잃어버릴 지극히 현실적인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교황님은 직시하고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목자다운 사랑에서, 사제의 생활과 활동을 통합시켜 주는 끈을 보았습니다. 이 목자다운 사랑은 ‘주로 성찬의 희생 제사에서 흘러 나오며, 따라서 성찬례는 모든 사제 생활의 중심이며 근원’(사제생활교령 14항)이라고 공의회는 덧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제들이 날마다 성찬례를 거행하라는 공의회의 권고를 따르는 것이 사제의 영성 생활과 교회와 세계의 선익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회칙 31항).

 

 

성찬례 거행은 그 거룩함의 품위를 예술의 도움을 통해 이루어왔다

 

교회는 예식적·심리적 차원에서 이해한 성찬례의 신비를 흠숭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으며 지역의 훌륭한 건축물과 예술작품들이 그리스도교 예술에 이바지한 공로가 매우 크다. 동방의 종교 예술은 놀랄 만큼 강한 신비 의식을 간직해 왔으며, “이러한 의식은 예술가들이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단순히 그들 자신의 재능의 표현으로만 보지 않고, 신앙에 대한 참된 봉사로 보도록 이끌었다.”(회칙 50항).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성찬례의 의미를 예술의 모든 요소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노력과 일선 사목자들은 종교 건물의 건축과 장식, 그리고 종교 음악을 규제하는 규범들에 주의를 기울여 성찬례 거행이 더욱 그 의미를 다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체성사 제정 이전에 이미 성체성사의 신앙을 지니신 성모님은 ‘최초의 감실’이자 ‘성찬의 여인’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성모님께서는 강생에서부터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까지 제자들과 함께 하신 성모님의 참된 ‘성찬의 여인’이시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행하신 것을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고 하시며 그분께 순명하라시는 성모님의 초대를 받아드려야 한다(회칙 55항 참조). 성모님처럼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분과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성찬의 사람’이 될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12월 7일, 윤종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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