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교회문헌ㅣ메시지

현대교회의 가르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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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2-15 ㅣ No.610

[현대교회의 가르침] (42)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상)


“성체성사는 교회 신비와 신앙생활 정점”

 

 

성체성사의 해를 여는 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1994년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2000년은 열렬한 성찬의 해가 될 것입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20세기 전에 마리아의 태중에서 육신을 취하셨던 구세주께서는 당신 자신을 신적 생명의 원천으로서 인류에게 계속하여 내어 주십니다”(55항)라고 천명하시고, 1998년 교서 「주님의 날」(Dies Domini)을 통해서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신자들이 모이는 날인 주일과 주일 성찬례를 강조하셨다. 2000년 대희년에는 교회와 세계 안에 살아계시고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로마에서 ‘세계성체대회’가 개최되었다. 대희년을 마무리하면서 교황께서는 2001년 「새 천년기」 교서를 통해서 모든 신자들이 바라봐야 할 얼굴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고, 바로 이 그리스도에게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얼굴을 가장 잘 바라보고 알아보시는 성모님과 함께 구원의 신비를 관상하도록 묵주기도의 해(2002년 10월~2003년 10월)를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를 발표하면서 시작하였다. 이 교서에서 묵주기도를 성모님의 문으로 예수님 삶과 죽음의 신비를 바라보는 관상기도로 정의하면서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를 추가하여 더 완벽한 복음의 요약으로 만들었다. 이 ‘빛의 신비’는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최후만찬에서 거룩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사건에서 절정에 이른다. 

 

교황께서는 교회가 특별히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신비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성체성사의 해’(2004년 10월~2005년 10월)에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이하, 교서)를 발표하면서 선포하였다.

 

교서는 서론, 4장으로 이루어진 본론,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론 제1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대희년의 발자취를 그동안의 교서와 회칙들을 통해 살펴보고, 성체성사의 해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사목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강생과 구원 사건을 묵상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음을 강조한다. 제2장 ‘빛의 신비인 성체성사’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임을 선포하며 신자들은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 말씀 뿐 아니라 생명의 빵으로 영적 힘을 얻게 된다고 밝힌다. 제3장은 ‘친교의 근원이자 표징인 성체성사’의 관점에서 성체성사가 성체를 모시는 신자들의 일치를 촉진시킨다고 강조하며, 제4장 ‘선교원리이자 계획인 성체성사’에서 예수와의 만남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주님의 증인이 되도록 하며 교회 복음화에 나서게 한다고 말한다.

 

 

성체성사의 해는 새 천년기 사목계획의 일환

 

성체성사의 해를 선언한 바로 다음 주일인 6월 13일 삼종기도 훈화에서 교황께서는 성체성사의 해 선포배경을 자세히 설명했다. 새 천년기를 맞아 그리스도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신자들은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현존해 계시는 강생하신 말씀(그리스도)의 얼굴을 묵상함으로써 기도에 맛들이고 복음적 생활에 투철함으로써 새로운 복음화에 매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께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하면서 성모 마리아와 함께 주님 성체성혈의 신비를 향해 신앙과 사랑 안에서 모든 공동체가 성체성사의 해 안에서 성장하기를 희망한다고 교황은 밝혔다. 곧 교황이 성체성사의 해를 선포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제3천년기를 준비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이미 계획해온 새 천년기 사목계획의 일환이다. 

 

교황의 권고로 세계교회는 2000년 대희년과 새 천년기 준비를 위해 1997년 성자의 해, 1998년 성령의 해, 1999년 성부의 해를 지냈다. 2000년 대희년을 지내고 2002년 10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묵주기도의 해를 보냈다. 그리스도 강생 2000년을 기념하는 대희년과 성모 마리아와 함께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는 묵주기도의 해에 이어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성체성사의 해 제정은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10항에서 ‘성체성사의 해’는 이전까지의 여정을 종합하는 해라고 밝히고 있다. “‘성체성사의 해’는 그리스도와 그분 얼굴에 대한 관상이라는 주제에 변함없이 충실하면서도,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풍요로워진 배경 위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체성사의 해’는 우리가 걸어온 여정의 정점이며 그 여정을 종합하는 해가 되어야 합니다.” 교서는 앞선 권고와 회칙들에서 성체성사의 의미를 체득하기 위해서 제시했던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제시하고 있다. 교황께서는 성체성사의 해를 통해 교회의 신비와 신앙생활의 정점인 성체성사 안에서 새 복음화의 열정으로 역사의 바다에 깊이 뛰어들도록 권고하고 있다.

 

 

빛의 신비인 성체성사

 

교서는 성체성사를 빛의 신비와 연관하여 설명한다. 동방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찾고 경배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세상의 빛”(요한 8,12)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쉽게 이해가 된다.

 

빛은 어두운 곳일수록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가족만의 이익과 안위만을 위하고 물질만능주의에 젖어들어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한 어두운 세상에서 사랑의 희망을 갖게 하는 빛이시다. 그런데 단순히 이승에서의 위안과 평안을 넘어서 영원한 구원의 희망을 주는 빛이라는 특성은 주님의 변모와 부활 사건에서 더욱 명백히 드러났으며, 이러한 사건을 통해 그분의 신적 영광이 눈부시게 빛났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영광이 성체성사에 감추어져 있으며 신앙을 통해서 그 감추어진 것들이 현실이 된다. 그래서 성체성사는 탁월한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이 완전히 감추어진 그 신비를 통하여 빛의 신비가 되시고, 그 신비 덕분에 신자들은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깊이”(교서 11항) 들어갈 수 있다.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루카 24,29 참조)

 

현재의 미사는 두 식탁, 곧 말씀의 식탁과 빵의 식탁으로 이루어져있고 이 둘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드러내는 의미를 각기 다른 매개체를 통해서 연속해서 드러낸다. 이러한 연속성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예수님은 함께 걸어가면서 성경 전체를 당신 신비와 연관하여 잘 설명을 해주셨다.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주셨다.”(루카 24,27) 그분의 말씀은 “제자들의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슬픔과 좌절의 어둠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들 안에 그분과 함께 머무르려는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교서 12항).

 

인생을 긴 여행길이라 할 때 누구와 함께 가고 싶고, 어딘가에서 머물러 쉬어야 할 때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사도로 이어오는 교회는 이승뿐만 아니라 저승에서도 주님이라 고백하는 그분과 함께 걷고 싶고 함께 머물기를 희망하며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라고 청한다. 이제 그분은 그 청을 받아들이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마태 28,20 참조). 그런데 그분이 함께 하고 계심을 어떻게 알아보고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로마 교황청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면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12월 14일, 윤종식 신부]

 

 

[현대교회의 가르침] (43)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하)


성체 안에 ‘현존’하며 우리와 하나되길 원하는 주님

 

 

교서 목적은 신앙이 삶의 증거로 변화되는 것 

 

교서 발표 당시 경신성사성 장관 프란시스 아린제 추기경은 교황께서 이 교서를 통해 교회 공동체에 신앙은 증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한다면서 이 교서가 단순히 성체성사 거행을 강조하고 성체성사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책임, 특히 평화 건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회의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를 강조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례 정신의 기본인 ‘믿는 규범(Lex credendi)을 기도하고(Lex orandi), 기도한 바를 생활해야 한다(Lex vivendi)’는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교서라 하겠다. 

 

말씀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묵상해야 함을 교서는 강조한다. “하느님 말씀이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도록, 복음 선포를 신중하게 준비하고 경건하게 귀 기울여 들으며 조용히 묵상하지 않는다면, 성서 구절을 모국어로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교서 13항).

 

 

성사의 차원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신비 차원에 열려진 마음이 요청됨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말씀으로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식탁에서 ‘빵을 떼어 주시는’ 단순한 행위로도 그분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 “정신이 빛을 받고 마음이 불타오를 때, 표징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성체성사는 풍부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담은 표징들의 역동적인 관계 안에서 펼쳐지고, 이러한 표징들을 통하여 그 신비는 어떤 식으로든 믿는 이의 눈앞에 활짝 열리게 된다”(교서 14항). 표징들을 통해서 펼쳐지는 신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신비의 차원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성체성사가 ‘식사’라는 본질적인 요소와 이 식사가 ‘희생 제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미사가 희생 제사 ‘기념’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분을 ‘오늘’에 현존하도록 하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미래, 곧 ‘종말’로 우리를 향하게 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제대로 성체성사의 신비를 알아보게 된다(교서 15항 참조).

 

 

그리스도 현존을 바탕으로 잘 거행되어야 하는 성체성사 

 

성체성사에서 단순한 상징주의를 넘어선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그래서 성체성사는 현존의 신비이며, “이를 통하여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이 완전하게 실현된다.”(교서 16항). 그런데 예수님의 약속이 완전하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체성사가 잘 거행되어야 한다. 거룩한 미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샘이며 정점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모든 공동체가 정해진 규범을 따르며,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회중과 성직자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노래나 전례 음악의 거룩한 특성을 살리며 거행되어야 한다(교서 17항 참조). 각 본당 공동체가 ‘미사경본총지침’과 전례주년의 흐름을 충실히 따르며 옛 교부들이 즐겨 하던 ‘신비’교육(Mystagogia)에 전념하여야 한다. 이러한 교육이 성체성사를 통해서 드러난 신비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는 데에 도움을 준다.

 

 

성체의 올바른 공경을 방해하는 남용이 있는지 살펴보기 

 

교서는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깊은 존경으로 성체를 대하여야 한다”(18항)고 권고한다. 이 교서가 발표되기 전인 2004년 3월 25일 경신성사성에서 ‘지극히 거룩한 성찬례와 관련하여 준수하거나 회피해야 할 일부 문제들에 관한 훈령’ 「구원의 성사」(Redemptionis Sacramentum)를 발표했다. 공의회 이후 전례쇄신의 그림자인 여러 가지 남용들에 대한 문제들의 심각함을 직시하며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훈령은 말한다. 남용의 문제점은 성체성사에 관한 건전한 신앙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음도 지적하고 있다. “전례의 남용은 이 놀라운 성사에 관한 가톨릭 교리와 건전한 신앙에 혼란이 생기도록 하는 데에 일조한다. 따라서 그러한 남용은 신자들이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4,31)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가 겪은 일을 다시 체험하는 데에 장애가 된다”(훈령 6항). 남용의 구체적인 실례와 그에 대한 올바른 지침을 제시하고 있는 교령 「구원의 성사」는 모든 성직자들이 읽어보고 혹시 본인들이 자유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사목적 배려라는 차원으로 남용이 없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체에 계신 그리스도와 시간보내기 

 

어렸을 적에는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성체 앞에서 조배하는 교우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아이들도 잘 모르면서 따라서 무릎을 꿇고 성체 앞에 있었다. 성당이 학교 가는 도중에 있으면 잠깐이라도 성체조배를 하고 가는 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성체를 관상하는 습관이 교우들 사이에서 사라지고 있다. 교서는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시간을 가집시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믿음과 사랑으로 부주의하고 태만한 행동들을 고쳐 나가고, 우리 구세주께서 세계 도처에서 견디셔야 하는 상처들까지도 치유합시다. 또한 오래되었거나 새로운 수많은 신비주의 체험과 하느님 말씀에 영감을 받은 기도문들에 의지하여, 성체 조배를 통하여 우리의 개인적·공동체적인 관상에 깊이를 더해 나갑시다.”(교서 18항)

 

 

우리를 떠나지 않고 친교를 맺으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우리가 머물러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다. 또한 당신도 우리 안에 들어와 머무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이 얼마나 긴밀한 관계이며 친교인가! 어느 드라마의 ‘네 안에 내가 있다’라는 유행어가 혹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 성령을 보내 주시어 당신과의 일치를 이루게 하고 또한 당신께서 직접 성체 안에 현존하심으로써 이 일치를 끊임없이 증진시킨다. “성찬례의 빵 하나가 우리를 한 몸이 되게 한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였듯이,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7)”(교서 20항).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친교의 드러남인 성체성사에서 또 다른 차원들, 곧 교회의 다양한 역할과 직무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교계적 친교와 상호 개방과 애정, 이해와 용서를 촉진하는 ‘친교의 영성’으로 자라나는 형제적 친교도 촉진된다(교서 21항).

 

 

교서는 성체성사가 ‘선교’ 원리라고 선포한다 

 

“성체성사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심화되는 그리스도의 만남은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증언과 복음화의 절박성을 일깨워주며”(교서 24항)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상황에서 친교와 평화와 연대의 촉진자가 되는 법을 배우게 한다고 말한다. 성체성사는 단순한 구원 표징의 모음이 아니라 현실이며 그리스도의 사명을 지속하게 하는 힘의 원천임을 교서는 천명한다.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1일, 윤종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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