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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해설4: 교회의 선교적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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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2-23 ㅣ No.611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4) 교회의 선교적 변모


전투하는 지상교회, 일어나 참호 밖으로...



사제로 축성된 사람들은 최전선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영혼을 구하기 위해 전방으로 나가야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교구 사제 서품식.


「복음의 기쁨」은 5장으로 구성되었다. 각 장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1장-교회의 선교적 변모, 2장-공동 노력의 위기 속에서, 3장-복음 선포, 4장-복음화의 사회적 차원, 5장-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자. 이곳에서는 1장 제목의 의미를 다루겠다.


타성에 젖은 교회의 그늘

1장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교회의 선교적 변모’. 이 제목의 의미는 교회가 선교적인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는 제 발로 성당을 찾는 사람들만 관리하는 교회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사실 이 용어는 유럽이나 남미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이다. 태어나면서 모두가 세례를 받고 신앙인으로 사는 그곳에서 사목자들 삶의 양태는 오로지 그들을 관리하는 것이 전부인 셈이다. 더 선교할 곳도, 사람도 없다. 변방으로 나아가 비신앙인을 회두시켜 세례를 받게 하고 그들이 신앙인으로 살도록 만드는 것을 선교 혹은 전교라고 할 때, 그렇다. 유럽과 남미는 더는 복음화할 곳도, 사람도 없는 곳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복음화를 세례를 주는 것으로만 이해할 때, 그렇다. 이제 선교사도 필요 없다. 오로지 신자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목자면 족하다. 그렇게 유럽과 남미는 길게는 1000년, 짧게는 500년을 살아왔다.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리스도교가 문화와 전통으로 자리 잡은 그곳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복음화되었다고 믿는 곳의 실제 신앙인은 얼마나 되는지 반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가 30%밖에 되지 않는다. 오랜 타성에 젖은 목자들은 비록 경건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으나, 선교의 역동적 모습은 오래전에 실종되었다. 찾아오는 신자들에게 타성에 젖은 삶의 태도로 성사 집전을 하고 고답적이며 교조적인 주일 강론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긴다. 때로는, 사제가 되려는 성소자들의 신학교 지원 동기가 그와 같은 평온한 사제의 삶이라는 고백까지 들릴 정도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본당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신심 깊은 사제는 신앙심 깊은 신자들과 즐겁고 행복한 만남으로 자신의 책무를 이행하며 안정적인 일과(日課)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새복음화를 위한 창을 열어야

아주 큰 문제가 있다. 그곳에는 실제적 신앙생활을 포기한 70%의 사람들이 있다. 목자는 교회 밖의 그 양들을 교회 안으로 이끌도록 파견된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이것을 간과하며 살았다. 그래서 교회 내부로부터 ‘재복음화’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복음화시켜야 된다는 의미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옷을 중도에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열정과 방법과 표현으로 그들을 다시 복음화하는 것을 교회는 ‘새복음화’라고 명명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선교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적으로 전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황은 제1장의 제목을 교회의 ‘선교적 변모’라고 정했다. 교회는 선교를 위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교회의 모습을 강조하면서 그리로 돌아가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유럽과 남미 교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어느 정도 안정화된 본당의 사목자들은 열심히 사는 신자들과 큰 문제 없이 안주하며 내적 평화 속에서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새롭게 본당을 낼 때에는 사제관과 성당 그리고 신자들이 제대로 갖추어진 곳에 사제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에 복음화해야 할 90%의 비 신앙인을 위해 목자를 파견해야 한다는 생각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지상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이다. 최전선에서 조금이라도 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목자는 전방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제관에 머물며 참모들에 둘러싸여 호의호식하며 지내라고 사제로 축성된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 울려퍼지는 예수님의 선교 명령이다.

[평화신문, 2014년 12월 21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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