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교회문헌ㅣ메시지

현대교회의 가르침: 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사랑의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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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1-19 ㅣ No.622

[현대교회의 가르침] (46) 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사랑의 성사」 (상)


성찬례, 다시 뜨거운 열의로...

 

 

베네딕토 16세(1927~)의 교황 권고 「사랑의 성사」는 2005년 10월 2일에서 23일까지 성체성사를 주제로 개최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1차 정기 총회의 결실이다. 이 총회가 제출한 건의안에 대한 응답으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07년 2월에 「사랑의 성사」를 발표하였던 것이다. 

 

이 문헌은 “교회 안에서 성찬례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새롭게 다짐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5항)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총 97개 항목으로 구성된 본문은 성찬례를 믿고, 거행하며, 실천해야 하는 신비로 규정하면서, 성찬 신앙 안에서 신자 각자와 교회 전체가 진정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길로 나아가자고 촉구한다.

 

 

I. 성찬례, 믿어야 할 신비 


성찬례는 삼위 하느님의 무상 선물 

 

성부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생명의 빵으로 보내주셨다(요한 3,16-17). 성자는 성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당신의 피를 쏟아 부어 주시어 당신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아울러 그분은 성체성사를 통해서 “십자가 희생과 부활의 승리를 선취하시고 또 현존하게 하신다.”(10항) 

 

교회는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성자의 명령에 따라 날마다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그분의 십자가상 희생제사가 성사적으로 현존하게 하는데, 여기서 성령께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중심인 성찬례부터 시작하여 당신 교회 안에서 계속 현존하시며 활동하실 수 있는 것은 성령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것이다.”(12항) 


성찬례는 교회 시작의 원리이며 친교의 토대 

 

성찬례는 “교회가 시작된 원리”, 곧 “교회의 기원 자체에 영향을 미친 원인”(14항)이다. 십자가 위에서 창에 찔리신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요한 19,34)은 성체와 세례성사를 상징하고, 이 두 성사와 함께 교회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먼저 십자가에서 교회에 당신 자신을 주셨기 때문에 교회는 성찬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거행할 수 있다. 

 

또한 성찬례는 교회의 친교와 일치의 토대다. 성체성사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만이 아니라 성찬을 받아 모신 신자들이 성령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것도 목표로 한다. 성찬례의 힘으로 교회는 친교의 공동체가 되는데, 개별 신자들 간의 친교만이 아니라 개별 교회들 간의 친교가 실현되어 보편적 친교가 가능하게 된다(15항).

 

성찬례는 성사들의 중심 

 

교회가 거행하는 일곱 성사의 중심은 성체성사로서, “다른 여러 성사들은 성찬례와 연결되어 있고 성찬례를 지향하고 있다.”(16항) 세례와 견진,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의 성사인데, 그 절정은 성체성사다. 따라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는 것은 성체성사를 위한 것임”(17항)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합당한 영성체를 위해서는 하느님 은총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는 본질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고, 따라서 “성찬례의 의미를 가르치는 참된 교리 교육에는 참회의 길을 추구하라는 촉구가 포함되어야 한다.”(20항) 또한 성체성사를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고통과 죽음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셨는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병자성사를 통해 병자들은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을 내어 놓으신 그리스도의 봉헌에 일치”하여 “성인들의 통공의 신비 안에서 세상 구원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22항). 

 

예수님께서는 최후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시는 동시 새 계약의 사제직도 제정하셨기 때문에 성체성사와 성품성사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성찬례 거행에서 주교나 사제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며 온 교회의 이름으로 행동한다(23항). 또한 혼인성사로 결합된 남녀의 유대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가 이루는 일치에 본질적으로 연결되고(에페 5,31-32), 이 일치는 성찬례를 통해 성사적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성찬례는 모든 그리스도교 혼인의 불가해소적인 일치와 사랑을 끝없이 강화해 준다.”(27항) 

 

성찬례는 순례하는 교회를 위한 선물 

 

성찬례는 “성인들과 이루는 통공의 기쁨 안에 거행될 마지막 잔치를 실제로 선취하는 것”(31항)으로서, 순례하는 교회가 종말의 잔치를 미리 맛보도록 해준다. 이렇게 종말의 완성을 미리 맛보여주는 성찬례는 “우리 육신 또한 영광스럽게 될 미래의 영광에 대한 약속”으로서, “우리보다 앞서 간 이들을 다시 만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키워준다.”(32항) 우리는 그 희망을 간직하면서 성찬례 중에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II. 성찬례, 거행하여야 할 신비 

 

성찬의 신비가 올바로 체험되고, 그 고유한 광채가 발하기 위해서는 성찬례가 합당하게 거행되고, 신자들은 거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합당한 성찬례 거행 

 

그리스도께서는 성찬례 안에 현존하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심으로써 우리를 당신과 일치시키신다. 이렇게 성찬례의 본래 집전자는 그리스도이기에 “그 기본 구조는 우리 마음대로 바꾸거나 최신 경향에 얽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37항). 따라서 성찬례의 합당한 거행 방식은 새로운 것을 추가하기 보다는 현재 사용 중인 전례서를 존중하고, 다양한 표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몸짓의 소박함,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표징의 엄숙함은 그 어떤 인위적이고 부적절한 것을 추가할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하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40항) 

 

합당한 성찬례 거행의 책임은 교구장 주교에게 부여된다. “탁월한 전례가”인 주교는 자신의 교구에서 “하느님 신비들의 첫째 관리자요 전례 생활 전체의 조정자이며 증진자요 보호자”로서 “사제와 부제, 그리고 평신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항상 전례 예식과 본문의 참뜻을 온전히 이해하여 활발하고 효과 있게 성찬례 거행에 참여하도록 마음을 써야한다.”(39항) 

 

성찬례 거행의 구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추진한 전례 개혁이 교회 전통 안에서 충실하게 지속되기 위해서는 미사의 주요 부분을 올바로 이해하고 거행해야 한다. 이를테면 미사에서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오직 하나의 예배를 형성하는데, 이는 교리 교육은 물론 미사 거행 자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 외에도 미사 구조와 관련해서 다양한 주의, 요청 사항이 상세하게 언급된다(43-51항 참조). 

 

성찬례의 능동적 참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촉구한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예식을 합당한 방식으로 거행하는 것으로서, “거행 방식은 풍요로운 전례 규범을 충실히 따르는 데에서 비롯된다.”(38항) 아울러 규범에 따라 “거행되는 신비, 그리고 이 신비와 일상생활의 관계를 더 잘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52항). 또한 성찬례의 능동적 참여에는 지속적인 회개의 정신도 포함된다. 이는 자신의 생활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내적 태도로서, “예를 들어 전례 시작 전에 잠시라도 묵상과 침묵의 시간을 가지거나 단식을 통하여,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촉진될 수 있다. 하느님과 화해를 이룬 마음이 진정한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55항)

 

* 손희송 신부는 1986년에 서울대교구 사제로 서품됐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에 용산 본당 주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교구 사목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18일, 손희송 신부]

 

 

[현대교회의 가르침] (47) 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사랑의 성사」 (하)


가정에서… 일터에서… ‘쪼개진 빵’으로 봉헌의 삶 살아야

 

 

III. 성찬례, 살아야 할 신비

 

성찬례는 믿고 거행할 뿐만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다. 성찬의 양식을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인은 그 양식의 힘으로 신비롭게 변화되어 새로운 삶, 곧 ‘성찬적 모습’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찬적 모습의 삶 

 

성찬례의 힘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오로가 말한 대로 하느님께 “합당한 예배”(로마 12,1), 곧 “온 교회와 일치하여 바치는 완전한 자기 봉헌”(70항)을 드린다. 이런 자기 봉헌의 삶은 “주님의 날에 따라 살아가는” 삶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해방을 인식하며 살아가고 우리 삶을 하느님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 봉헌이 되게 함으로써, 깊이 쇄신된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승리가 온 인류에게 온전히 드러나게 한다.”(72항) 

 

자기 봉헌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와의 친교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친교도 더욱 깊게 한다. 따라서 성찬례에 기반을 둔 삶은 교회적이고 공동체적인 모습을 지녀야 한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도록, 그리하여 서로서로의 지체가 되도록 부름 받은(1코린 12,27 참조)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세례에 바탕을 두고 성체를 통하여 자라나는 실재, 우리 공동체 생활 안에서 가시적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실재”다(76항). 

 

성찬례에 뿌리를 둔 삶은 일상 전체를 포괄하는 성찬 영성, “곧 ‘성령에 따라’(로마 8,4 이하 갈라 5,16.25 참조) 사는 삶”(77항)으로 자라나야 한다. 이 성찬 영성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자신이 변화되도록 하면서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이지 분별”(로마 12,2)하는 것을 의미한다(77항). 성찬 영성은 근본적으로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 안에서 그 “문화들과 나누는 대화”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러한 문화에 대한 도전이 되기도 한다.”(78항)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성찬 신비 

 

교회의 구성원 각자는 성찬례에 바탕을 두고 자신이 받은 고유한 소명을 실현해야 한다. 평신도들은 성찬례가 자신의 일상생활에 더 깊게 자리 잡게 함으로써 일터나 사회 안에서, 특히 평신도들의 고유 영역인 가정에서 설득력 있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문헌은 “가정들에게 성체성사에서 영감과 힘을 얻으라고 격려”하면서, “남녀의 사랑, 생명에 열린 자세, 그리고 자녀 양육은 삶을 변화시키고 삶에 그 충만한 의미를 부여하는 성찬례 고유의 힘이 드러나는 탁월한 분야들”이라고 역설한다(79항). 

 

성찬례 거행의 임무를 지닌 사제의 영성은 본질적으로 성찬의 성격을 지닌다. 사제는 성찬례를 통해서 자신의 소명에 더욱 굳건해진다. “충만한 믿음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거행하는 미사는 사제가 그리스도를 더욱 닮게 하고 자기 소명을 더 굳건히 하기 때문에 매우 심오한 의미에서 양성의 성격을 띤다.”(80항) 또한 수도자들의 증거의 삶, 특히 그들의 봉헌된 동정은 성찬의 신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봉헌된 동정은 교회가 완전하고 풍요로운 충실성으로 자기 신랑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표현”으로서, “성찬례 안에서 그리스도께 완전히 헌신하기 위한 영감과 자양분을 얻는다.”(81항) 

 

성찬의 신비를 살아가려면 도덕적 회개, 곧 “인간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존재 전체로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고자 하는 진심 어린 바람과 노력”(82항)이 요구된다. 또한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공적 차원에서도 성찬에 맞갖게 살아야 한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순전히 개인적인 행위가 결코 될 수 없고, 신앙을 공적으로 증언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물론 세례 받은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지만, 특히 사회적 정치적 지위 때문에 근본 가치들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들에게는 의무로 지워진다. 이러한 가치에는 임신[受精]에서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생명의 존중과 수호, 남녀의 혼인으로 세워진 가정, 자녀 교육의 자유, 모든 형태의 공동선 증진에 있다.”(83항)

 

세상에 선포되어야 할 성찬 신비 

 

성찬의 신비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 세상에 선포되어야 한다. “우리가 성체성사로 거행하는 사랑은 우리 혼자만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은 본성상 모든 이와 나누어야 한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 곧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믿는 것이다. 따라서 성찬례는 교회 생활뿐 아니라 교회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이다.”(84항) 그러므로 선교적 노력은 그리스도인 삶의 성찬적 모습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성찬례는 하느님의 사랑을 삶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선포하도록 인도한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주신 그 선물 앞에서 경이로움을 체험한 우리는 삶에 새로운 자극을 받고 그분 사랑의 증인이 되고자 노력한다. 우리 행동과 말과 존재 방식을 통하여 절대 타자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고 통교하실 때 우리는 그 증인이 된다.”(85항)

 

세상에 주어야 할 성찬 신비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구원의 희생 제사를 기념하는 성찬례는 모든 이를 위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이에게 다른 이를 위하여 ‘쪼개진 빵’이 되어, 더욱 정의롭고 형제애가 넘치는 세상의 건설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촉구한다.”(88항) 주님께서는 성찬례 안에서 형제적 친교를 굳건히 해주시고, 대화와 정의 실현에 마음을 열어 서로 화해하도록 촉구하시는데, 모든 신자들이 이에 응답하여 평화와 정의를 증진시키는 참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 “성찬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폭력과 전쟁, 그리고 오늘날 특히 테러리즘, 경제적 부패, 성적 착취로 얼룩진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룩하고자 노력하여야 한다.”(89항) 

 

또한 성찬의 신비는 점점 더 심해지는 빈부 격차를 고발하고 극복하도록 촉구한다. “진리의 양식은 우리에게 불의와 착취 때문에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 가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고발하도록 요구하고, 또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어 우리가 끊임없이 사랑의 문명에 봉사하게 한다.”(90항) 문헌은 이렇게 성찬의 신비가 개인의 성화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릇된 관계들의 개선을 위하여 용감하게 일하도록 고무하고 촉진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사회 교리를 가르치고 증진할 필요성을 역설한다(91항). 

 

성찬의 신비는 사회 구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피조물과 환경 보호를 촉구한다. 성찬례 중에 사제는 빵과 포도주 위에 축복과 청원 기도를 바치는 데, 이 부분은 “이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세상이 하느님께서 세우신 좋은 계획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해줌으로써 “창조된 세상을 보호하는 활동에 책임 있게 투신”하도록 촉구한다(92항).

 

 

맺는 말 

 

「사랑의 성사」의 결론 부분은 교회의 정화와 쇄신에 일조한 수많은 성인들은 성체 신심에 힘입어 진정한 삶을 살았다는 점을 역설한다(94항). 실상 성찬 신앙은 장구한 교회 역사에서 교회의 쇄신과 성화에 원동력이 되었는데, 이런 점은 문헌의 시작 부분에서도 강조된다. “성찬 신앙이 더욱 활기에 넘칠수록”, 하느님의 백성은 “교회 생활에 더욱 깊이 동참하여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에 굳건하게 투신할 수” 있었고, “모든 중요한 개혁은 주님께서 성찬례를 통해 당신 백성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믿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과 어느 모로든 연결되어” 왔다(6항). 성찬의 신비는 교회를 정화하고 쇄신하는 데에 ‘최선의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의 활성화와 교회의 쇄신이 시급하다는 요청을 받고 있는 한국천주교회는 좀 더 성찬 신앙과 성찬 영성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25일,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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