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806.....주님의 거룩한 변모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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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8-05 ㅣ No.1830

주님의 거룩한 변모축일 [0806]

다니 7,9-10.13-14            마르코(나해) 9,2-10

2015. 8. 6. ()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모습

사람은 삶에서 눈으로 보는 것에 아주 큰 중요성이 있는 것으로 대합니다. 그만큼 외부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일에, 사람의 눈이 하는 역할이 크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의 전부는 아니라고 해도 그 일에 눈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눈으로 본다는 것은 사람이 다른 것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불확실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축일입니다. 옛날, 한자로 쓸 때는 현성용(顯聖容,=얼굴이 거룩하게 드러난 축일)이라고 했습니다만, 지금은 얼굴의 변화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입고 있던 옷이 달라진 과정에 초점을 둡니다. 우리말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만, 영어성경은 여전히 얼굴모습이 빛나게 된 일에 초점을 두고 원문을 번역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을 기록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 사는 사람은 내가 하느님을 뵙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하느님께 그 일이 가능하게 해달라고 청할 기세이지만, 실제로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을 사람에게 보여주었다고 성경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모세만이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본 사람이라는 얘기만 기록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얼굴이나 예수님의 얼굴모습이 어떠한지 묘사할 수 없으니, 기껏 사람이 하는 일은 그분이 입고 있는 옷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전할 뿐입니다. 이런 일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이 자기 눈으로 보고 하느님의 모습을 보았으니, 그분의 모든 비밀을 다 알았다고 할까봐서 제한조치를 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을 묘사하는 일일까요? 여러 가지 표현이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예수님의 선택을 입었던 3명의 특출한 제자들조차도 제대로 행동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그 눈으로 본 것을 전달한다는 일의 한계도 제대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올바른 자세로 하느님께 다가설 수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하느님의 참 모습을 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통해, 역경의 길로 가지 않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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