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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회10: 삼자운동, 자립인가 비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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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2-02 ㅣ No.104

[니~하오! 중국교회] (10) 삼자운동(三自運動), 자립인가 비극인가?


자립이란 억지에 교황청과 결별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종교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들고 나온 게 삼자애국운동(三自愛國運動)이다. 이 삼자운동은 오늘날의 중국교회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열쇳말이다.

 

중국 정부는 1950년 11월 "종교 자유를 보장하되, 제국주의자들이 종교(천주교와 개신교)를 문화침략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며 '산쯔(三自)'라는 애국 대중운동을 제창했다.

 

삼자란 △ 자양(自養) -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 자전(自傳) - 중국인 스스로 복음을 전파하며 △ 자치(自治) - 스스로 교회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말해 중국교회를 종래의 외세 영향이나 간섭에서 완전히 '해방'시키겠다는 것이다.

 

 

1950년 한 해 2274명 추방

 

공산 혁명가들 눈에 그리스도교는 제국주의 산물이었다. 서구 열강이 아편전쟁과 온갖 불평등조약 강요로 중국 국권을 침탈할 때 그리스도교는 제국주의자들의 그늘에 있었고, 때로는 양의 탈을 쓴 위장물로 선봉에 섰다는 게 그들의 인식이었다. 따라서 종교가 제국주의 도구라는 오명을 씻고 사회주의 국가 발전에 기여하려면 삼자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산당은 자전(自傳) 정신에 따라 "외국인은 본토에서 전교활동을 할 수 없다"고 못박고 외국 선교사들을 모두 추방했다. 인민공화국 수립 이듬해인 1950년 한 해 선교사 2274명이 쫓겨났다. 공산당은 정든 신자들과 성당을 놔둔 채 빈 손으로 떠나는 외국 선교사들에게 "양의 무리 가운데 숨어 있던 승냥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천주교인들은 그들 음모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성직자를 중심으로 단단한 대오를 형성하고 반발했다.

 

그러자 공산당은 "꽝위앤(사천 북부)의 신자 500명이 교회를 혁신하는 삼자운동에 찬성하고, 성스러운 교회가 제국주의에 오염되는 것을 막기로 결의했다"고 하는 등 거짓 선전을 늘어놓았다.

 

어떤 지역에서는 당사자 동의도 구하지 않고 신부 이름을 삼자운동 발기인 명단에 집어 넣었다.

 

공산당의 교활한 획책에 많은 주교와 신부들이 넘어갔다. 중국 주재 교황대사 리페이리 대주교가 이를 꾸짖으며 각성을 촉구하자 공산당은 이 일을 트집잡아 그를 연금시켰다. 일부 신자들은 당 사주를 받아 "제국주의자 리페이리, 천주교 애국운동의 파괴자"라며 그를 고발하는 상서(上書)를 정부에 올렸다. 일부 주교들은 애국심을 드러내기 위해 애국회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타협과 순교의 갈림길에 선 중국교회

 

반대로 사천성 출신의 똥(董)슬즐 신부는 대중 강연회에서 "천주도 하나고, 교황도 하나다"며 삼자운동을 신랄하게 비판했는가하면, 쫑칭의 부주교는 전체 성직자 명의로 회개문을 낭독했다. 똥슬즐 신부는 곧바로 체포돼 행방불명됐다. 경찰의 심문과 고문에 시달리던 76살 자레 몬시뇰의 경우 "묘지에 들어가서 너희에게 답하겠노라"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중국교회와 교황청 간의 결별은 자치(自治) 정신에 따른 것이다. 중국교회는 1958년 종교조직과 사무에 외부 간섭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포하고, 스스로 주교를 선출하기 시작했다. 주교 임명권은 교황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주교 자체 선출은 곧 바티칸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교회 입장에서 보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양심을 배반하고 공산당과 타협하든지 아니면 자레 몬시뇰처럼 끝까지 저항하다 감옥에서 최후를 맞든지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수많은 성직자들이 타협과 순교의 갈림길에서 고뇌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삼자운동은 교회조직 파괴와 분열을 가속화했다. 선교사들이 빠져나간 교회는 급격히 힘을 잃었다. 특히 베드로 사도좌 및 보편교회와의 결별은 이루 열거하기 힘든 문제들을 낳았다.

 

삼자운동에 이어 중국교회 이해를 돕는 또 다른 열쇳말이 애국회다.

 

[평화신문, 2008년 11월 23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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