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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회12: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중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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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2-14 ㅣ No.106

[니~하오! 중국교회] (12)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중국교회


광풍에 쓰러지는 교회

 

 

사람들은 중국에 '애국교회'와 '지하교회'라는 2개의 가톨릭교회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중국 가톨릭은 하나다. 만일 두 개의 교회가 존재한다면 그건 가톨릭교회가 아니다.

 

애국교회의 정확한 명칭은 '애국회'다. 애국회는 중국 정부가 교회활동을 통제, 관장하려고 설립한 교회 내 조직일뿐이다. 반대로 지하교회는 정부 통제를 거부하고 사도좌와 일치하려고 애쓰는 신자들 무리다.

 

이 둘은 차라리 등록(공식)교회와 미등록(비공식)교회로 구분하는 게 쉬울지 모른다. 중국의 모든 예배장소는 정부에 등록해야 한다. 지상, 공식, 또는 정부 승인이란 말을 앞에 붙일 수 있는 교회는 모두 등록된 교회다.

 

 

"차라리 피흘리는 순교를 택하라"

 

중국 공산정부는 1950년대 교회를 교황청과 떼어 놓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그리고 탄압과 회유, 애국회 설립 등을 통해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교황청은 애국회를 공산당의 정치도구로 간주해 단죄했다. "애국회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교회 존립에 대한 위험이다. 중국 교인들은 애국회에 속하느니 차라리 피흘리는 순교를 택하라"고 촉구한 당시 피데스 통신(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소속) 논조가 교황청 기류를 전해준다.

 

사도좌의 뜻에 따라 순교를 각오하고 공산정부의 그늘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사제와 신자들은 그때부터 고난의 길을 걷는다. 바야흐로 수모와 눈물의 지하교회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등록을 거부한 성당들은 상당 부분 몰수되거나 폐쇄됐다. 이 때문에 사목자와 신자들은 감시를 피해 가정교회 형태로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는데, 신자수가 점점 불어났다.

 

그러자 정부는 지하교회를 소멸하기 위해 성직자를 체포하고 활동거점을 폐쇄하는 등 강경책을 썼다.

 

이때 수많은 사제들이 징역형을 선고받고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지하교회 신부와 수녀들은 거의 모두 감옥이나 수용소로 끌려갔거나, 아니면 낙향(落鄕)해 집단농장에서 노동에 시달렸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도 지하교회는 나름대로 명맥을 유지했다. 정부가 탄압은 했어도 어느 정도 온건적 노선을 추구한 덕분이다.

 

하지만 1966년부터 10년간 중국 대륙을 휩쓴 문화대혁명은 그나마의 명맥마저 끊어 놓았다. 홍위병의 야만적 파괴 행위로 가톨릭은 물론 모든 종교가 죽고 묻혔다. 애국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교들을 자살로 몰아간 피의 광란극

 

중국 문화대혁명은 본래 소련의 레닌이 주창한 문화혁명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거리는 대자보와 전단으로 뒤덮이고, 20살 미만 청소년들로 조직된 홍위병들은 종이로 만든 삼각모자를 씌운 반혁명분자들을 끌고 다니다 살해했다.

 

그들은 상해의 장가수 주교를 끌어내 가슴에 '반혁명분자'라고 쓴 패를 달아 끌고 다니다 인민재판대에 세웠다.애국회 소속의 곽칙겸 주교와 종회모 주교는 홍위병으로부터 받은 수모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했다. 성당은 대부분 파괴되거나 봉쇄됐다. 또 상해의 성경 도매상에 침입해 성경을 불태우고, 미처 불태우지 못한 성경은 종이 재생공장에 보냈다. 성경과 성물을 숨기고 있던 그리스도교인 가정들도 큰 화를 입었다. 그들은 무슬림들에게 강제로 돼지고기를 먹이고, 코란을 소각하는 등 곳곳에서 입에 담기 어려운 광란극을 벌였다.

 

그들의 광란에 성경이 동이 나자 임복만 신부는 신약성서 5질을 베껴 신자들에게 나눠줬다. 또 만주에서는 교우들이 "성경을 마귀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며 불태우자 홍위병들은 배교한 줄 알고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문화대혁명 광풍(狂風)은 1976년 모택동이 죽고 강청, 왕홍문, 장춘교, 요문원 4인방이 체포되면서 끝이 났다.

 

이 기간에 교회는 다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파괴됐다. 유형의 교회는 자취를 감추고, 신자들의 신음 섞인 기도소리만 새어 나오는 교회가 됐다.

 

[평화신문, 2008년 12월 14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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