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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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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27 ㅣ No.64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상)

 

 

프랑스 파리 기적의 메달 성당 내부 모습과 기적의 메달.

 

 

창설과 영성

 

1633년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에 의해 설립된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는 회헌을 통해 『사랑의 딸회는 모든 자선의 모델이며, 근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며, 영적 · 물적으로 그들 안에 계신 주님을 섬기기 위해 하느님께서 사랑의 딸회를 설립하였다』고 명백히 존립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만큼 사랑의 딸회 규칙은 가난한 이들을 복음화 하는 예수님께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또 예수님의 육화 신비는 수녀회를 창설한 성 빈첸시오와 성 루이즈 영성의 핵심이다. 

 

『이제 알게 되겠지만 사랑이란 무거운 짐이란다. 국냄비나 가득 한 빵바구니 보다 더 무거운 거지…. 그래도 친절과 미소는 늘 지켜야 해. 국하고 빵을 나누어 주는 게 전부는 아니야. 그거야 부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 너는 가난한 이들의 작은 여종이야. 언제나 미소짓고 좋은 마음으로 지내는 「사랑의 딸」임을 잊어서는 안돼. 네 주인은 가난한 이들이야…』

 

스스로 가난한 이들의 종이 되기를 자청했던 자선 사업의 수호 성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가 「사랑의 딸회」 첫 수녀를 일터로 보내며 당부한 이 말은 수녀회가 지니고 있는 영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단순하면서도 강하며 침묵과 개인, 공동기도, 성사생활, 성모 마리아와 성체께 대한 신심으로 하느님과의 일치를 근본으로 한다. 

 

이러한 정신은 창설자 빈첸시오가 『사랑의 딸들은 예수님과 성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기 위해 창설되었다』고 밝혔던 것에서도 알 수 있고 성 루이즈가 새롭게 창설한 사랑의 딸회를 샬츠의 성모님께 봉헌한 것도 같은 배경이다. 1830년 파리 뤼드박의 모원 성당에서 당시 수련수녀였던 가타리나 라보레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것은 이와 관련한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그 모원 성당은 「기적의 메달」 성당이라 불리며 세계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차 들르는 곳이다. 특히 성모님 축일 같은 경우 2만여명의 순례객이 전세계 및 교회와 그들 자신들의 지향을 갖고 기적의 메달 성모님을 공경하며, 청원하기 위해 방문한다. 

 

이와 더불어 사랑의 딸회는 시대의 징표를 찾고 교회와 가난한 이들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 다양한 종류의 봉사에 유동성과 기동력을 발휘하도록 한다. 또 성 빈첸시오의 가르침과 영성의 토착화를 끊임없이 찾는다. 이것은 각 나라의 문화를 증진시키며 각 개인을 존중하려는 의미다. 

 

또한 창설 당시부터 선교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성빈첸시오는 이런 면에서 수도회원들을 프랑스 밖으로 파견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사랑의 딸회는 사도직을 수행하는데 있어 봉사의 우선권을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돌린다. 성빈첸시오는 가난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고 고통 당하는 환자들의 비참함에 마음 아픔을 느끼고 이들과 함께 하는데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수도회가 운영한 병원은 그래서 가난한 이들의 「큰 벽」이라고 불렸다.

 

빈첸시오 성인은 회원들이 가난한 이들, 특히 비참하고 가장 버려진 이들을 만나고 찾아 나서기 원했으며 이러한 봉사는 항상 영적 물적 봉사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가톨릭신문, 2003년 6월 8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수녀들과 노인들이 흥겨운 시간을 갖고 있다.

 

 

사도직 활동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는 사도직 수행에 있어 『온전히 봉헌된 주님의 종이 되기 위해 능력과 기쁨은 정의 안에서 우리의 주인이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무이다』는 빈첸시오 성인의 영성을 뿌리에 두고 있다.

 

사랑의 딸회는 1633년 창설된 이후 1655년 파리 대주교의 승인을 받았으며 1668년 교황 클레멘스 9세의 승인이 있은 후 전세계 교회에 본격적인 진출을 시도하게 된다.

 

현재 80여개국에서 활동중인 사랑의 딸회는 1978년 당시 안양 라자로 마을 원장을 맡았던 고 이경재 신부가 수녀회 일본 관구에 나환우 치료방법을 가르쳐줄 수녀 파견을 요청하면서 한국 분원 역사를 시작했다. 

 

마침내 그해 4월 10일 미국 루이지애나 칼빌에서 오랫동안 나환우를 치료했던 콘스탄스 하멜(Sr. Constance Hummel)수녀가 일본 관구로 파견돼 쟌기나시수 녀와 함께 라자로 마을에 파견되었고 이후 수녀회는 1980년 11월 6일 김남수 주교의 승인을 얻어 한국분원을 정식 설립했다. 

 

1995년 일본 관구에서 필리핀 관구로 한국 분원이 이관된 것을 계기로 자체적인 회원 양성이 시작됐으며 이후 경기도 양주군에 양성소를 건립하고 서울 안동교구 등에도 분원을 설립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나환우들을 위한 이동치료와 무료 양로원 빈첸시오의 집, 본당사목, 농촌사목과 안산시 위탁 본오 종합복지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회원교육 등을 하고 있다. 사도직의 우선적 선택은 창설자 지향에 따라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진다.

 

전세계적으로 이들이 벌이는 봉사는 우선 「인간적, 영적을 동반한 봉사」를 비롯 어린이 성인 노인 나환우 에이즈 환자 등 「나이와 병명을 초월한 환자 돌보기」등이며 또한 맹아, 농아, 정신지체자 등 심신지체아들을 문화와 장소에 따라 가정, 병원, 재활원, 전문치료기관 등을 통해 돌본다.

 

이밖에도 어린이들과 청소년, 특히 버려진 어린이들 위해 고아원, 유아원, 놀이방, 영양센터 등을 운영하기도 하며 △ 캠프지와 휴양지 △ 거리의 어린이 △ 사회부적응 현상을 겪는 청소년을 위해 기술학교 상업학교 등을 열고 있다. 

 

교도소 사목분야에서도 사랑의 딸회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재소자 가족에 대한 사목도 포함돼 있다. 난민 수용소 운영도 이들 수녀회 활동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민자 난민들을 위한 병원, 학교 운영, 고아원, 양로원, 청소년을 위한 기관 등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거나 또는 위탁운영하고 있다. 원주민과 빈민촌을 대상으로 한 활동도 시도중이다.

 

사랑의 딸회는 사도생활단에 속하기 때문에 종신서원이 없고 수련기를 포함, 5~7년 사이에 첫 서원을 한다. 또한 정결 순명 가난 서원외에도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서원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톨릭신문, 2003년 6월 15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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