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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47회 군인주일 군종교구장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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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3 ㅣ No.585

2014년 제47회 군인주일 담화문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47회 군인주일을 맞이하여 군의 복음화를 위해 수고하는 군종사제들과 함께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한결같은 사랑으로 국군 장병들과 군종교구를 위해 기도와 도움을 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4년은 우리에게 슬픔과 기쁨이 함께 하는 해입니다. 세월호와 전후방 각지에서 발생한 장병들의 사고는 많은 국민과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님과 군대에 아픔을 주고 있습니다. 반면, 교황님의 방문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은 우리 사회에 희망과 용기와 그리고 삶의 참된 길을 알려주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이런 슬픔과 기쁨의 해를 보내며 군종교구장으로서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라는 군종교구 사목표어를 묵상하고 한국교회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전후방 각지에서 만나는 장병들을 보고 있으면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납니다(창세 12,4ㄱ). 이 여정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 인간적인 안정감을 모두 버리고 막연한 미래를 향해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났지만, 아브라함의 삶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아내를 누이동생이라 속이는 비극(창세 12,10-20,20)도, 조카 롯과 분쟁으로 가족 간에 갈라서야 하는 이별(창세 13,9)도 경험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의 징표였던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봉헌하는 일도 생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런 시련과 고통을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넘기고, 축복의 근원이 됩니다.

 

정의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 청년들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인간적 안정감을 주던 모든 것을 버리고, 막연한 장소인 군대로 입대합니다.

 

예수님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태어나면서 어머니와 연결된 탯줄을 끊었다면 군대는, 아직까지 가지고 있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탯줄을 끊고 자립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립은 관계의 단절과 결핍 때문에 고독과 두려움과 공허함을 느끼게 합니다(복음의 기쁨 87항). 또한 GP, GOP, NLL 등을 지키는 긴장된 임무와 레바논과 남수단, 필리핀, 소말리아와 같은 먼 거리 장시간의 파병, 잦은 인사이동에 장병들은 고독과 격리를 체험하게 됩니다(정의와 평화의 봉사자 315항). 이 단절과 결핍을 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마르지 않는 샘물을 갈망하던 사마리아 여인처럼, 장병들은 자신들이 처해있는 어려움과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비어있는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종교를 찾고,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애덕의 교회 -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교회는 이렇게 종교를 찾고, 하느님을 찾는 장병들에게 애덕을 통해 선교 사업을 합니다. 애덕은 복음 선교의 언어이자 내용이고, 복음의 핵심적 활동입니다. 실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고, “애덕을 보면 삼위일체를 보는 것”입니다(정의와 평화의 봉사자 334항).

 

그래서 군종교구는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라는 사목목표를 세우고 사랑으로 장병들에게 다가서고, 사랑으로 장병들의 육적, 영적인 공허함을 채워주고, 교회 본연의 모습인 친교의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군 성당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친교의 현장입니다. 두서너 가정이 200~300명 되는 장병을 돌보기도 하고, 가족이 없는 곳은 군종신부 혼자 멀리 떨어져 있는 대대와 연대 장병들을 위해 종일 운전하며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소속부대 지역 전체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야간에 근무하는 장병을 위해 위문을 다닙니다. 때로는 이런 노력이 장병들 안에서 눈으로 보이는 결실로 이어지지 않을 때 인간적인 실망과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생깁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실망과 포기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하느님께 돌아오는 장병의 모습에서, 힘든 가운데 사랑을 실천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군종 신부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시며 꼬깃꼬깃 넣어두었던 쌈지 돈을 손에 쥐어 주시는 어르신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격려를 받습니다.

 

요즈음 군대에 불미스럽고 안타까운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몇몇 분들은 군대에 많은 실망과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이 사건들은 군의 시스템 문제만이 아닌 인성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살펴볼 기회입니다. 이런 어려운 여건 안에서 복음을 살아가려는 장병들을 위해, 그리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함께 하고 있는 군종신부들을 위해 군종교구민과 한국교회 모든 신자분들의 더욱 많은 기도와 도움이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교 열정을 빼앗기지 않도록 도와주십시다.”

 

2014년 10월 5일

천주교 군종교구장

유수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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