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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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3: 춘천교구 설립 이전의 강원도 교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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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1-12 ㅣ No.1078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 (3) 춘천교구 설립 이전의 강원도 교우촌

 

 

교우촌의 형성은 신유박해 이후에 더욱 두드러졌는데, 그 대표적이고도 구체적인 사례는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 에 소개된 신태보(申太甫, 베드로, ?~1839)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다.

 

신태보는 박해가 일어나자 고향인 전주를 떠나 경기도 용인 · 강원도 풍수원 · 경상도 등지의 교우촌을 전전하다가 정해박해 때에 경상도 상주에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교우촌의 모습

 

많은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은 옹기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신앙을 키우면서 공동체의 사랑을 통해 이웃에 전교 활동도 해나갔다. 이 시기 옹기 제작을 생업으로 삼은 이유들은 첫째, 인적이 드문 곳에 숨어 살며 하기 좋은 일이었고, 때로는 옹기가마가 피신하는 신자들을 잡으러 오는 포졸들을 피해 은신하는 장소로, 조용히 기도하는 장소로도 사용하는 것이 적합했기 때문이다. 둘째, 깊은 산중에서 구하기 쉬운 나무와 흙 같은 재료만으로도 생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셋째로는 무엇보다 옹기를 팔러 다니면서 여러 교우촌과의 교류를 통해 박해에 대한 정보수집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20일 연중 제2주일 춘천주보 2면, 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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