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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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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28 ㅣ No.90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상)

 

 

인천교구에 있는 타종교와의 대화센터인 「우리 위로의 샘터」에서 타종교인들과 만남을 갖고 있는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회원들.

 

 

꼰솔라따 선교수도회(Consolata Missionaries)는 「위로」라는 뜻을 지닌 「꼰솔라따」가 의미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자이신 성모님 도움에 힘입어 그 사랑을 전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1990년 복자로 선포된 요셉 알라마노 신부가 1901년 창설한 꼰솔라따 선교수도회는 『복음선포가 최고의 봉사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활동과 영성을 요약할 수 있다.

 

회원들은 그러한 바탕속에 「끊임 없는 인내와 절대적인 신뢰」 「선교에 대한 열정」과 「성모로부터 배운 모성적 정신」을 모토로 선교 현장에서 소임을 펼치고 있다.

 

꼰솔라따 선교수도회의 영성은 「가정의 정신」 「성덕의 정신」 「마리아의 정신」 「복음화의 정신」 「선교」 「교회 정신」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여기서 가정의 정신이 갖는 의미는 특히 선교지에서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서로 존경하고 형제적 사랑을 지니며 깊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창설자 복자 알라마노 신부는 선교를 나서는 회원들이 그들안에서만 한 가족으로 느낄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과도 한 가족으로 느끼게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또한 성가정을 모범으로 제시하면서 성가정이 모든 가정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수도 공동체를 위해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성인이 되는 것」은 알라마노 신부 자신이 토리노 교구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평생 자신이 해야할 일로 깨달은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선교사들을 위해 성인이 되려 했던 그는 평범한 생활 속에서 매일 매일 쌓아가는, 항상 선할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성덕을 강조했다. 성덕의 정신이 꼰솔라따회의 중요 영성중 하나로 꼽히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알라마노 신부는 『매 순간,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모든 일을 주님의 생각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역설했고 『선교사가 되는 것은 그 후의 일』이라고 상기 시켰다.

 

선교사는 특히 『자신이 먼저 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물을 가져다 줄 수 없을 것』이라고 했고 『친교를 이루는 가운데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성덕의 정신을 설명했다.

 

「마리아의 정신」을 강조하는 영성은 수도회 이름에서 볼 수 있듯 마리아에 대한 깊은 의탁을 보이고 있는 꼰솔라따회가 「위로자이신 성모님이야말로 수도회의 진정한 창설자」로 여기고 있다는 표시다. 알라마노 신부는 자신의 아들과 딸들이 위로자이신 어머니의 이름을 지니기를 원했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 비 크리스천들을 복음화하는 것이 수도회의 존재 이유라고 밝혔다. 그만큼 수도회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을 복음화 사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외면적 활동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수도회 영성의 근본적 요소 중 하나다. 다시 말해, 복음화는 회원들 생활의 모든 측면에 활기를 주고 생활 전체의 중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수도회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사람들을 복음화하는 것입니다. 복음화야말로 우리 수도회의 고유한 특성입니다. 즉 크리스천 국가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사목활동을 하기도 하는 다른 수도회들과 다른 점입니다』(복자 알라마노 신부). [가톨릭신문, 2004년 8월 15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하)

 

 

2002년 한국을 찾은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 아린제 추기경(왼쪽에서 3번째)과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왼쪽에서 4번째) 등이 「위로의 샘터」를 방문했다.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회원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라는 표현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바오로 사도가 『선교란 유다인종이 아닌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 동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직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수도회는 1993년과 1999년 총회에서 「비크리스천들을 위한 선교」라는 초창기 정신으로 돌아가야 하며 또 존재방식을 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바 있다.

 

꼰솔라따 선교수도회가 복음화를 위해 펼치는 활동은 두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 그것은 복음 선포와 인간의 총체적(영혼과 육신)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두번째 측면은 여러가지 사업들이나 정의 평화 활동 등을 통해 진작된다.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성당 옆 혹은 교리실 곁에 병원, 진료소, 학교, 목공소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꼰솔라따회 선교사들이 최근들어 복음화 활동에 있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이들은 비크리스천들과 함께 도시 빈민들이다. 그 다음이 교리교육, 선교사, 성소 발굴 등을 통한 지역교회 봉사와 종교간 대화다.

 

선교사와 성소계발, 종교간 대화, 도시빈민 사목은 특히 한국의 꼰솔라따 선교수도회에서 두드러진 활동이다.

 

수도회의 한국 진출은 1986년과 1987년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총장과 참사회가 아시아 진출을 모색하던중 제44차 세계 성체대회 개최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던 한국에서 선교활동의 가능성을 찾고 선교사 파견을 결정함으로써 이뤄졌다.

 

마침내 1988년 이탈리아와 스페인 콜롬비아 브라질 출신 선교사 4명이 한국에 도착했고 인천교구의 도움으로 부천시 역곡동 상가 주택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됐다. 아시아 최초의 수도회 지부였다. 

 

인천 만석동 달동네에서의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전개된 꼰솔라따회의 한국 선교는 타 종교와 나누는 대화의 장, 무신론자까지도 환영하는 「위로의 샘터」 공동체와 양재동 구룡산밑 비닐하우스촌 사람들과 함께하는 구룡마을 공동체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진출 초기부터 본당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소외된 지역에서의 활동 전개에 주력해온 꼰솔라따 선교수도회는 후원회 회지 「꼰솔라따」도 발행하고 있고 우간다와 모잠비크 등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구체적 나눔도 실시하고 있다.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선교사들의 특성 중 하나는 온 일생을 선교에 바친다는 것. 그런 만큼 공부뿐아니라 선교사 양성에 필요한 다양한 과정을 통해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선교사 소임을 부여받는다. 

 

수녀회원(한국 미진출)들과 함께 1902년 케냐를 시작으로 현재 세계 24개국에 진출해 있는 꼰솔라따 선교수도회는 아프리카와 유럽, 북미, 남미 등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고 2003년과 2004년에는 몽고와 지부티에서 새로운 선교 사업을 시작했다. [가톨릭신문, 2004년 8월 22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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