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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회3: 조상제사는 효인가, 미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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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2-02 ㅣ No.97

[니하오! 중국교회] (3) 조상제사는 孝인가, 미신인가?


의례논쟁 100년, 피의 박해 촉발

 

 

16세기 말 베이징의 예수회 선교사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주만물의 주재자, 그리스도교의 신(神, 라틴어 Deus)을 중국어로 어떻게 불러야 하나? 또 조상과 공자에게 올리는 뿌리깊은 제사를 미신행위로 간주해 금지시켜야 하나?

 

마태오 리치 신부가 중국고전 속에서 '천(天)'과 '상제(上帝)' 개념을 찾아냈다. 천과 상제는 전지전능한 신, 모든 권위의 근원, 도덕적 원칙뿐 아니라 선을 행하면 복을 내려주고 악을 행하면 벌을 주는 주재자를 지칭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천주, 천, 상제 3가지 명칭을 모두 채용했다. 유교식 제사도 미신적 색채만 제거하면 종교적 의미가 없는 예속(禮俗)으로 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예수회는 중국 전통문화를 수용해 그리스도교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입장(문화 적응주의)이었다. 또한 그리스도교는 서양의 이질적 종교가 아니라 선유(先儒)사상과 상통하는 종교이며, 사상적으로 유교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補儒論]고 설득했다.

 

하지만 뒤이어 중국에 진출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수도회 선교사들이 예수회 선교방침에 반발하며 "그리스도교의 순수성과 통일성을 해치는 영합주의"라고 비판했다. 마침내 도미니코수도회 모랄레스 신부가 1634년 이 문제를 교황청에 질의하면서 의례논쟁이 촉발됐다.

 

이 의례논쟁은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조상제사와 공자 공경의례 금지 → 교황 알렉산더 7세의 예수회 적응주의 방침 허용 → 이에 대한 파리외방전교회의 이의제기 → 황제 강희제의 유권해석을 첨부한 예수회의 반론제기 등으로 이어지면서 거의 100년 동안 격렬하게 전개됐다.

 

이 논쟁은 교황 클레멘스 11세가 1715년 칙서를 통해 △ 천주 외의 다른 용어 사용금지 △ 제사와 공자 공경의식 금지 △ 조상 위패사용 금지, 단 조상의 이름만 써서 모시는 것은 허용 등의 지침을 내리면서 일단락됐다.

 

그러자 천주교에 호의적이던 강희제가 "내정간섭과 황제권력에 대한 침범"이라며 격분했다. 마침내 그는 1717년 중국 전역에 천주교 금지령을 내리고 박해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교황청은 급히 황실에 특사를 파견했으나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이 문제는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전임 교황 칙서를 재천명하고, 이 문제에 대한 거론을 일체 금함으로써 마무리됐다. 강희제 때 시작된 피의 박해는 19세기 중반까지 계속됐다.

 

의례논쟁은 조상숭배를 둘러싼 선교 단체들간의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다.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예수회와 달리 시골 서민층을 대상으로 선교하면서 제사에 가미된 미신행위를 우려한 것이다. 교황청은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가 적을 때라 처음부터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못했다.

 

제사 금지령은 유럽화된 그리스도교의 순수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 최초 박해인 신유박해(1801년)가 제사문제에서 비롯됐듯이 유교 문화권 선교에 큰 장애물이 됐다.

 

[평화신문, 2008년 9월 7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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