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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회7: 박해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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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2-02 ㅣ No.101

[니~하오! 중국교회] (7) 박해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천주교


'홍역' 뒤 안정 되찾았지만 새로운 문제가...

 

 

중국 천주교회사에서 의화단의 난(1899~1901년)은 참으로 끔찍한 사건이다.

 

부청멸양(扶淸滅洋)을 외치며 무장 봉기한 의화단은 전국 성당들을 불태우며 대학살극을 벌였다. 그들 눈에 그리스도교와 선교사는 서구 열강의 본거지와 앞잡이나 다름없었기에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1900년 7월에 자행된 주가하(朱家河) 대학살은 그들의 광란이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위대 몰살, 부녀자들은 자결

 

의화단이 활개를 치자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약 200㎞ 떨어진 교우촌 주가하에서는 장정들이 자위대를 조직해 저항했다. 학살을 피해 도망나온 인근 마을 장정들까지 합세해 자위대는 1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의화단은 자위대의 거센 저항에 번번이 후퇴하더니 어느 날 관군과 단원 1만여 명을 이끌고 대공세를 펼쳤다. 격전 사흘 만에 장정 1000여 명이 모두 숨졌다. 의화단이 마을로 진격하자 젊은 부녀자들은 깊은 우물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워낙 많은 부녀자들의 몸이 우물 속에 포개지다보니 그 안에서 12일 동안 신음소리가 났다고 한다.

 

단원들은 노약자 1000여 명이 피신한 갈대 지붕 성당에 총격을 가하고 불을 질렀다. 총상을 입은 임덕분 신부는 "이 고통을 참으면 우리는 모두 천당으로 간다"며 겁에 질린 신자들을 위로했다. 성당 안 신자들은 대부분 불에 타 숨졌다. 단원들은 초토화된 마을을 뒤져 돈과 금붙이를 챙기고, 젊은 여자들을 끌고 가서 팔아 넘겼다.

 

그들은 서만자(西灣子)성당과 북당(北堂) 등에서도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학살을 자행했다. 경자(庚子)교난이라 불리는 이 외세배척운동은 1901년 가을 서구 열강 8개 연합군에 의해 진압됐다.

 

 

평화 속 불안한 성장

 

그리스도교는 다시 평화를 찾았다. 선교사들은 교우들을 돌보면서 평신도 선교사를 양성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1903년 상해에 첫 가톨릭대학인 쩐단대학을 설립, 가톨릭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활기를 띤 자선사업과 교육사업은 더 없이 좋은 선교 기반이 됐다.

 

이로 인해 1900년 72만 명이던 신자 수는 1912년 143만 명(총인구의 0.5%)으로 2배가 늘었다. 1920년까지는 평화와 성장의 시기였다.

 

그러나 질적 측면에서는 불안한 점이 엿보였다. 우선 물질적 이득을 얻거나 송사(訟事)에서 선교사들의 보호를 받을 요량으로 입교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선교사들은 의화단의 난 피해 배상금을 신자들의 경제적 곤궁을 덜어주는데 주로 썼다. 세례자 수에 따라 교리교사들에게 활동비를 지급하자 한 사람이 여러 번 세례를 받는 불미스런 일도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복음화가 가능할 것 같습니까?

 

특히 자선사업과 교육사업에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돈이 들어갔다. 이 때문에 유럽과 미국교회에서 재정지원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선 및 교육사업은 시대적 요청이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복음화 방법이기에 사업을 축소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국 국적 신부들 위상도 여전히 서양 선교사들의 보조 역할에 머물렀다.

 

벨기에 출신의 선교사 뱅상 레브 신부 비망록에 이에 대한 근심이 담겨 있다.

 

"교회 사업체들이 인적ㆍ재정적 자원들을 탕진할 우려가 있다. 주요 사업체가 복음화에 조금밖에 기여하지 못하거나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선교사들이 어린이 구제와 교육으로 그리스도인을 양성할 수 있다고 여기는데, 이런 방법으로 4~5억 명의 영혼을 개종시키려면 상당한 경비가 들 것이다…"

 

벵상 레브 신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천주교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원인을 찾아내 쇄신작업을 추진한 인물이다.

 

[평화신문, 2008년 10월 12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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