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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현대교회의 가르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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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3-15 ㅣ No.539

[현대교회의 가르침] (8) ‘가정 공동체’ (1)


“가정은 교회의 길” 천명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는 1980년 9월 26일부터 10월 25일까지 ‘현대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의 과제’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던 제6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마치면서 작성된 건의안을 참고로 1981년 11월 22일자로 반포된 문헌이다. 이 교황 권고가 갖는 가장 큰 가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정과 혼인에 대하여 ‘사목헌장’을 통한 가르침을 좀 더 깊이 있고 폭넓게 또 구체적으로 알려주는데 있다. 이 가르침의 중심에는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의 “인류의 미래는 가정에 달려있습니다”(86항)라는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 아울러 교황은 가정이야말로 혼인과 더불어 “인간에게 하나의 소중한 가치”(1항)임을 재천명하고 있다. 또한 “사회의 활력 있는 기초적 세포”(42항)로서 가정은 “소규모의 교회, 곧 가정교회”(49항)의 모습임을 깨닫게 한다. 때문에 교회는 가정을 “보금자리와 발판이라고 생각”(15항)하기에, 인간은 교회와 가정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교황 문헌은 서론과 결론 사이에 네 가지의 주제로 본론을 써 내려 간다. 그 내용들은 현대사회 안에서의 가정의 모습,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 그리고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등이다.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부분은 혼인과 가정을 통하여 하느님의 계획이 인간에게 드러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부부와 부모 그리고 자녀로서 자신들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소명에 따라 ‘거룩한 생활’과 ‘복음화된 가정’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참으로 가정은 하느님의 계획이 드러나고, 거룩하게 성화되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화되는 공동체인 것이다.

 

 

1. 하느님의 계획이 드러나는 가정 

 

교황은 “역사의 이 시점에서 가정은 그것을 파괴하거나 또는 어떤 모양으로 변태시키려는 다양한 세력의 표적이 되고 있는”(3항) 사실을 전제하면서, 동시에 “교회는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할 사명을 절감하고 있다”(3항)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좇아 “처음으로 돌아갔습니다”(10항)라고 부연하여 설명한다. 

 

그래서 ‘가정 공동체’ 13항에서는 인류의 구세주로서 사랑과 아울러 자신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인류를 당신 몸에 일치시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인의 본래 진리, 곧 “처음”의 진리를 밝혀주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마르 10,6-8)라고 가르치셨다. 참으로 혼인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계획대로 아주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특유하고 배타적인 것으로 공인된 부부애”(11항) 안에서 완성된다. 

 

교황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서 혼인한 부부는 “부모가 되면서 하느님에게서 새로운 책임의 은혜를 받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들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보이는 징표가 되어야 합니다”(14항)라고 가르친다. 결국 부부애의 살아 있는 표상이며, 영원한 일치의 상징인 자녀들은 부부가 자신들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획을 겸손되이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 각 가정이 “본연의 것이 되어라”(17항)는 자신의 사명을 다시금 자각하도록 한다. ‘가정 공동체’ 17항은 본연의 가정이 살아야 할 네 가지를 “인간 공동체의 형성, 생명에의 봉사, 사회발전에의 참여, 교회의 삶과 사명에의 참여”라고 명시하고 있다.

 

 

2. 성화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 가정 

 

복자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인 가정은 스스로 성화될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세계를 성화할”(55항) 소명을 받았다고 가르친다. 이에 따라서 모든 남편과 아내는 “혼인 생활을 거룩하게 하도록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불린 것”(34항)이라고 교황은 일깨워준다. 때문에 부부는 매일매일의 사건, 문제, 어려움, 상황 등을 통해서 그들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께서 그들이 “계속 혼인 안에 머물도록 부르시는”(51항) 초대에 성화된 모습으로써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가정 공동체’ 56항은 혼인성사야말로 “그리스도인 부부와 가정을 위해서는 성화의 특수 원천이며 본래의 수단”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혼인성사는 단지 신자로서 교회법을 준수하려는 선택이 아니라, 성덕에로 불린 그리스도인 부부가 자신들의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의 현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성화되게”(56항) 하는 간과할 수 없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때문에 교황은 “그리스도인 가정의 성화 역할은 세례성사에 그 기반을 두고,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밀접히 연결되어있는 성체성사에서 최상의 표현을 발견한다”(57항)고 강조한다. 결국 그리스도인 가정은 혼인성사로써 성덕의 삶을 향한 씨앗을 뿌리고, 성체성사로 양육되어 거룩한 열매를 맺게 된다. 이렇게 될 때에 그리스도인 부부는 매일매일 “더욱 풍요로운 일치를 향하여 진보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받은 사랑을 교회와 세계에 드러낼 수 있게”(19항)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가정의 본질과 역할은 결국에는 사랑으로 규정된다”(17항)고 교황은 가르친다. 그래서 가정은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전달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다. 부부는 그 사랑을 “서로에게 자신을 주면서도 자신들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주게 되는”(14항) 것이다. 참으로 그리스도인 부부는 자신들의 혼인과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내어주시면서 보여주셨던 사랑을 조금씩 배워간다. 그래서 “부부애가 내재적으로 지향하는 그 완성에 도달하면 부부애덕”(21항)이 된다.

 

 

3. 복음화의 자리인 그리스도인 가정 

 

‘가정 공동체’ 52항에서는 “그리스도인 가정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 안에서 성숙하는 만큼 복음화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라고 장엄하게 선언한다. 그 이유를 43항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가정은 사회를 인간화하고 인격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고 원초적인 장소입니다. 가정은 특히 미덕과 가치를 보호하고 전수함으로써 인생을 진정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세계 건설에 창조적 기여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황은 그리스도인 가정이야말로 더욱 독창적이고 특수한 양식으로, 즉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50항)로서 교회와 사회에 봉사할 사명을 지닌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리스도인 가정은 혼인성사로써 부부와 부모를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며 동시에 ‘사랑과 생명의 선교사”(54항)가 되게 한다. 그리하여 교회는 가정과 힘을 합하여 “특히 도움과 후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가정들, 가난한 이들, 병약자, 노인, 장애자, 고아, 과부, 버림받은 배우자, 미혼모, 곤란한 처지에서 인공유산의 유혹을 받고 있는 임신부 등을 위한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애덕을 실천”(71항)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참으로 가정이야말로 “전체교회의 맥락 안에서 복음화되고 복음화하는 공동체로서의 자리를 차지”(53항)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하여 가정의 복음화는 최우선적이다. 

 

‘가정의 교황’이라도 불리는 복자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 공동체’와 더불어 1988년 발표한 사도적 서한 ‘여성의 존엄’(Mulieris Dignitatem)과 1994년에 서명한 ‘가정 교서’(Gratissimam Sane)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가정과 혼인에 대한 가르침을 아주 명확하게 정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가르침을 관통하는 교황의 통찰은 ‘한 처음’에 시작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이 ‘미래/종말’까지 ‘가정과 혼인’ 안에서 항구하게 계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황은 “가정은 교회의 길”(86항)이라고 천명한다.

 

* 정연정 신부는 1993년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수품됐다.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총무, 우면동본당 주임, 로마 한인신학원 재정담당으로 봉직했으며, 로마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절두산 순교성지 주임으로 재직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3월 16일, 정연정 신부]

 

 

[현대교회의 가르침] (9) ‘가정 공동체’ (2)


‘참된 부성 · 모성’ 실현은 곧 하느님 창조사업 협력

 

 

■ 부성과 모성 : 가정 성화의 돌쩌귀(cardo, 중추) 

 

지금 우리사회의 가정은 더 이상 대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핵가족화’ 된 모습으로 살고 있다. 이렇듯 작아진 가정 안에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정서적으로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레 늘게 되었다. 

 

반면에 예전에 여러 세대가 한 가정 안에 공존함으로써 누릴 수 있었던 다양한 역할의 모습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었다. 이러한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부성과 모성의 불균형은 결국 자녀들이 균형적인 가정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가정교육 안에서 부성과 모성은 둘 다 중요한 것이다. 어느 것 한 쪽만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가정 안에서 참된 부성과 모성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현대사회가 부모들에게 거는 기대이며 요청이라 할 수 있다.

 

 

1. 불가분적이고 초월적인 부성과 모성 

 

사실 하느님께서는 부부들이 인간생명을 전수함으로써 창조활동에 참여하도록 하셨다. 이처럼 부부는 이미 ‘하느님 안에서 영원을 향해 운명 지워진 인간생명’을 전달하는 데에 자유로이 책임 있게 협력하게 된다. 

 

이를 위하여 부부는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사랑으로 그들의 소명에 응답한다. 이러한 ‘특유하고도 배타적인 부부애’는 참 부모가 되기 위하여 본질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참조 ‘가정공동체’ 11항). 이렇게 부부는 가정 안에서 자신들의 부성과 모성을 드러낸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인간의 부성과 모성은, 자연 안에서 다른 생물들의 그것과 생물학적으로 유사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이고도 독특한 방법으로 하느님과 ‘닮은’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가정교서’ 6항) 

 

이는 인간의 부성과 모성도 역시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하느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초월적인 면을 지니게 됨을 적시한다.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 부성과 모성이란 육체적인 책임에만 머무르는 것이 나이라 정신적인 책임까지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부부가 드러내는 부성과 모성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 모델과 역동적인 임무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인간의 부성과 모성은 서로 분리될 수도 없는 것임을 드러낸다. 결국 모성은 필연적으로 부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부성도 당연하게 모성을 내포하고 있다(참조 ‘가정교서’ 7항). 때문에 부부는 서로를 좀 더 ‘대상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에 부성과 모성은 서로에 대한 충만한 의식과 책임감 안에서 올바르게 실현될 것이다.

 

 

2. 자기 봉헌의 증거인 부부애 

 

현대사회 안에서 특별히 인간생명과 관련하여, 부부들은 부성과 모성의 책임을 올바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는 많은 부부들이 성과 인간생명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출산력’(fertility)에 대한 그릇된 생각이다. 사실 “출산력은 부부애의 결실이고 징표이며, 또한 부부상호간의 완전한 자기봉헌의 산 증거”이다(‘가정공동체’ 28항). 때문에 ‘출산’(procreation)이 불가능한 경우에라도 출산력은 그 의미와 능력을 상실하지 않는다(참조 ‘가정공동체’ 14항). 그러므로 부부의 출산력을 단지 육체적 의미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되며, 영적인 시각으로도 이해하여야 한다. 이런 이유로 ‘부부사랑의 일치’는 항상 출산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나누는 사랑은 이미 ‘영적 출산력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현대인들은 이러한 진리를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런 결과로 성을 단순히 출산을 위한 수단과 과정으로 전락시키고, 인간생명을 자신들이 지니는 계획의 일부로 여기게 된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부부의 ‘책임있는 부성과 모성’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사실 인간의 손에 의해서 ‘찢겨지고 떨어져 나온 출산’ 앞에서 ‘책임있는 부성과 모성’은 이미 그 존엄성 자체를 상실하였다. 때문에 불임부부들이 행하는 인공수정이나 복제는 ‘책임있는 부성과 모성’을 자신들이 계획한 생산물로 대체하는 참담한 모습이라고 하겠다. 

 

참으로 부부는 자녀 없이도 자신들이 맺은 혼인을 통하여 본질적으로 살게 되는 책임있는 부성과 모성을 올바로 수행해야 한다. 사실 부부의 혼인은 생물학적인 불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의지적으로 유발한 행위의 불임’에 의해서 깨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에 혼인은 부부가 서로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과 인간생명을 위한 봉사의 길을 통하여 완성되는 것이다(참조 ‘가정공동체’ 14항). 결국 책임있는 부성과 모성은 부부가 ‘자신을 내어 주는 것’에서 이미 실현됐다고 할 수 있다.

 

 

3. 삼위일체 : 부성과 모성의 원형 

 

부성과 모성에 대하여, “교회는 책임있는 부성과 모성에 관한 윤리적 진리를 가르치고 또 오늘날 만연되고 있는 그릇된 관념과 경향으로부터 그 진리를 수호합니다”라고 선언한다(‘가정교서’ 12항). 그것은 바로 이것이 참 사랑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에 나아갈 수 있도록 교회는 인간을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이끌어, 그들이 부모로서 받은 사랑의 소명을 발견하게 한다. 이 만남으로 인간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서 혼인성사의 은총으로 부부공동체의 성숙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현대사회 안에 만연한 ‘세속화’는 여러 형태로 가정이 파괴된 모습을 가져 왔다. 이런 이유로 부부는 자신들에게 부여된 책임있는 부성과 모성을 스스로 실현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느님 앞에 엎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책임있는 부성과 모성의 원형’이신 삼위일체 하느님만이 부부에게 그 소명을 성취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부부는 무엇보다도 먼저 혼인성사의 은총에로 나아가야 한다. 성사의 은총은 부부로 하여금 한 마음과 한 몸으로 이끄는 인격적 심오한 일치를 동경하게 하고 참된 출산력에 열리도록 한다. 그리하여 부부는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미 몸 안에 새겨져 존재하는 ‘인격적 차원의 성’을 살 수 있다. 

 

이로써 부부의 삶은 성성의 여정이 되며, 서로간에 성화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책임있는 부성과 모성을 올바로 실현하는 것은 부부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협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느님의 신비 안에도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에 부부는 오로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의 눈’을 엶으로써 그들의 소명을 이룰 수 있다. 왜냐하면 부부에게 맡겨진 책임있는 부성과 모성의 원형이 바로 창조주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가 ‘사랑’의 원형인 것처럼, ‘부부의 사랑’도 ‘책임있는 부성과 모성’의 실현을 통하여 더욱 더 확장되고 깊어지게 된다. 

 

참으로 부부는 자신들의 가정 공동체를 통하여 “하느님의 의도를 채우는” 것이라고 하겠다(‘가정공동체’ 25항). [가톨릭신문, 2014년 3월 23일, 정연정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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