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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본당들의 대희년과 희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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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65

본당들의 대희년과 희년의 삶

 

 

1. '대희년'과 경제 문제

 

대희년을 살고 난 2001년 1월의 우리, 아니 나 자신의 모습은 지난 1999년 성탄 이전과 비교해서 과연 얼마만큼 변화했는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희년의 정신을 살았는가?

 

일부 특수한 신분의 신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모두 본당에 소속되어 있고, 따라서 본당들의 희년이 잘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 구성원인 우리 자신은 그만큼 잘 살고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1994년 11월 10일 교황 교서 [제삼천년기]를 전세계에 반포하면서 2000년을 구세주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는 '대희년'으로 선포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준비하도록 '교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요청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도 1995년 봄 총회에서 '2000년 대희년 주교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고 같은 해 10월에는 '새 날 새 삶 운동'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 우리는 희년의 정신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경제를 떠나서는 단 하루도 문화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보다도 경제 세계화의 과정에 있다. 이는 곧 모든 나라가 상품을 사고 팔기 위해서 같은 기준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강대국들이 경쟁력에 바탕을 두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경제 세계화 자체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구체화해 가는 방법에 있다. 곧 전체 백성들을 도외시하면서까지 자연을 파괴하고, 그 결과로 폭력을 조장하면서, 몇몇 나라에 경제가 장악되어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발전을 말하고 있으나 모두를 위한 발전이 아니다. 실제로 세계 인구의 20%가 세계 부(富)의 80%를 소비하고 있으며, 다른 80%의 인구는 나머지 20%로 만족하며 살아가야 하는 실정이다. 세계의 가난한 사람 25억 명이 소유하는 재산이 세계의 갑부 225명이 소유하는 재산과 같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금속, 종이, 목재, 물, 석유, 전기 등을 강대국들이 소비하는 것과 같이 소비하게 된다면, 이런 모든 수요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지구 5개가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전쟁, 부패, 시장 점유를 위한 경쟁 등이 발생하게 된다.

 

'본당들의 대희년'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경제 논리가 웬 말이냐고, 거듭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희년이 제시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본당에서는 어떻게 적용되고 실현되었는가를 짚어 봄으로써 그 대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희년은 기본적으로 4가지의 요소를 갖고 있다. 곧 토지 반환과 빚 탕감, 노예 해방 그리고 원수를 용서하는 그리스도인적 요소가 그것이다.

 

 

2. 한국 교회의 대희년 준비와 본당

 

교황 교서에 따라 교회는 1994년부터 3년 동안의 제1단계 직접 준비 기간을 통해 교회가 '끊임없이 회개와 쇄신을 계속'하도록 준비했으며, 1997년부터 3년 동안은 제2단계 직접 준비 기간으로 삼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해'를 그 첫해에 지내고, 1998년에는 '성령의 해'를, 그리고 1999년에는 '성부의 해'를 살도록 했다. 한국 교회 역시 '2000년 대희년 주교 특별 위원회'를 통해 4권의 [대희년 길잡이]를 내고, [대희년을 바라보며]라는 공동 사목 교서를 주교회의의 이름으로 발표한 데 이어서 한국 교회 전체가 대희년 정신을 효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새 날 새 삶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담은 [새 날 새 삶]을 '대희년 맞이 5'로 펴냈다.

 

'새 날 새 삶' 운동은 '나부터 새롭게', '참된 가정 이루기', '좋은 이웃 되어 주기', 그리고 '함께 가요, 우리', 이렇게 네 가지를 기본 방향으로 잡고 있다.

 

이러한 방향에 따라 군종 교구를 포함한 전국 15개 교구의 1,190개 본당(1999년 말 현재)들은 대희년을 합당하게 준비하려고 애쓴 것이 사실이다. 그 몇몇 사례를 옮겨 보면, 원주교구 동해 북평 본당에서는 본당 예산의 10%를 사회 복지 비용으로 책정해 구역별로 신자 모두가 지역의 가난한 이웃을 직접 찾아가서 실태를 파악하고, 10여 세대에 생계비 지원 등의 사회 복지 사업을 벌이면서 대희년을 준비했다. 금강산 유람선이 출항하는 동해시에 자리잡은 이 본당에서는 또한 2000년 1월 1일 새벽 첫 미사를 해수욕장에서 남북 통일을 기원하며 '대희년 해맞이 미사'로 봉헌했다. 인천교구 연안 본당에서는 1999년 9월 16일부터 대희년 시작 전날인 12월 24일까지 100일 동안 북녘 동포 돕기와 매일 미사 참례하기, 루가 복음서 필사, 성서 가훈과 좌우명 정하기, 고해성사를 통한 화해 운동 등 대희년 준비 5개항 실천 운동을 벌였다. 수원교구 안성 구포 본당에서는 2000년 대희년과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으로 1999년 6월 30일부터 12월 24일까지 전신자 가정을 대상으로 예수 성심상 가정 순회 기도 운동을 전개했다. 본당 역사가 6년 밖에 되지 않고 주일 미사 참여자가 700명에 지나지 않은 청주교구 강서동 본당에서는 기도 생활의 활성화를 통해 매월 '성시간'에 400명 이상이 참가하고 전신자가 매일 묵주기도 15단씩 바치며 고해성사와 냉담자 회두 등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서 대희년을 준비했다.

 

대희년 준비를 선교 활성화에 두고 커다란 실적을 올린 본당들도 많았다. 미사 참여자 수가 100명도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시골 본당에서 선교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교회 언론의 칭송을 받은 본당이 있으니, 제천시 백운면 천등산 아랫동네에 위치한 원주교구 백운 본당은 1999년 5월부터 '새 가족 찾기 운동'을 펼쳐 7월 4일 105명의 예비신자를 봉헌하고 환영식을 가졌다. 인구 4,700명에 개신교 교회당이 9개소로 인근 주민 대부분이 개신교 신도들인 지역 특성에서도 성체 조배와 로사리오 기도로 무장한 본당 공동체가 적극 선교 운동에 나서서 한 가족이 20명을 불러오기도 하는 등 커다란 성과를 거둔 것이다. 광주대교구 봉선동 본당에서는 연인원 5백여 명이 참가해 3개월에 걸친 단계적인 선교 운동을 펼친 끝에 9월 28일 500명의 예비신자를 봉헌했다. 마산교구 통영지구 대건, 북신, 태평, 고성, 거제, 장승포, 고현, 장평, 옥포, 지세포 등 10개 본당에서는 1999년 9월 5일부터 '밀레니엄 교리반'을 개설해서 2000년,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 1일 오전 거제 지역 6개 본당은 대우중공업 다목적 홀에서 박정일 교구장 주교 주례로 세례식을 갖고 430명의 새 영세자를 냈으며, 통영 지역 4개 본당에서는 통영 시민 회관에서 지역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세례 성사를 베풀고 250명의 새 영세자를 배출했으며, 대구대교구 상인 본당에서도 대희년 첫 날 첫 시간에 120명에게 '밀레니엄 세례성사'를 베풀었다. 대구대교구 포항 장성 본당에서는 신자 재교육을 위해 교리 신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향후 10년 동안 복음화율 18% 달성을 목표로 선교 운동을 벌이고 있는 서울대교구에서도 주교좌 명동 성당을 비롯한 청담동, 역삼동, 신림 4동 등 수십 개 본당에서 가두 선교 등, 열성적인 활동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대희년을 준비했다. 서울대교구 봉천동 본당에서는 '대희년 준비 위원회'를 조직해서 본당 공동체가 단계적으로 선교 활동에 총력을 기울였다. 군종교구 광성대 본당에서도 1999년 6월 말 '2000년 대희년 준비 위원회'를 구성하고 넉 달 동안의 준비 끝에 행동 강령과 실천 목표 등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겼다. 행동 강령은 '새 날 새 삶 운동', 실천 목표는 '나부터 새롭게', '참된 가정 이루기', '좋은 이웃 되어 주기', '함께 가요 우리'로 정하고, 준비 실천 사항은 영내외 신자간 결연, 냉담 사병 찾아 결연하기, 부대 내 개신교와 불교 행사 참여하기에 나섬으로써 주교회의가 제시한 새 날 새 삶 운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례를 보인 것이다. 서울 공덕동 본당에서는 8월 29일 본당 설립 30주년에 맞춰 1,036명의 예비신자를 봉헌했으며, 같은 해 대림 시기에는 쉬는 신자 회두의 일환으로 교무금 탕감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실시하기도 했다. 교무금 탕감 운동은 인천교구에서 대대적으로 전개한 프로그램이며, 인천교구 만수 3동 본당에서는 실직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여러 측면에서 마련, 실시했다.

 

서울대교구 세종로 본당에서는 이미 1998년 '성령의 해' 초부터 전 신자를 대상으로 성서 읽기 운동을 전개해서 평일미사 참여자 수를 3배로 늘리는 등 대희년을 알차게 준비했다. 광주대교구 농성동 본당과 마산교구 진해 중앙 본당은 1999년 10월 7일부터 11일까지 본당 주임 신부가 상대 본당에서 미사 집전과 사목회 모임을 주재하는 등 교환 사목을 실시해 대희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교회가 '동서화합'에 앞장서기도 했다.

 

 

3. 대희년 달력과 본당

 

1) 대희년 달력과 각종 전국 행사에 본당 참여

 

주교회의는 교황청 대희년 중앙 위원회의 여러 위원회에서 발표한 문헌들을 번역해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계간으로 펴내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실었고, 2000년 대희년 주교 특별 위원회 활동을 통해 교황청에서 펴낸 '2000년 대희년 달력'을 바탕으로 한국 교회의 희년 달력을 제정하기도 했다.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공식 전국 대회 네 차례와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주최한 '대희년 평신도 대회'를 가졌는데, 한국 전쟁 발발 50주년인 6월 25일을 기해 '민족의 화해를 위한 기도의 날' 행사로 그 막을 올렸다. 분단 교구인 춘천교구가 주관한 가운데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역 광장에서 열린 이날 철야 행사에는 전국 각 교구 신자들을 비롯해서 탈북자, 실향민 등 6,250명이 함께 해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했다. 때마침 6·15 남북공동선언이 있은 지 10일 후에 열린 행사였던 만큼 민족 화해와 일치의 염원은 상당히 달아 올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 다음 달 7월 25일부터 3일 동안 대구대교구 주관으로 대구 가톨릭 대학교 교정에서 열린 '전국 청소년 축제'에는 청소년 신자 4천여 명이 모여 청소년의 신앙 생활과 올바른 문화 창달을 위한 잔치로서 뜻깊은 행사였으며, 다음 달 8월 로마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축제에 앞서 마련한 대회로서 성공적이었다.

 

9월 24일에는 안동교구 주관으로 경북 점촌 시민 운동장에서 열린 '생명 환경 신앙 대회'는 죽음의 문화를 청산하고 참된 생명의 문화를 가꾸자는 취지가 잘 드러난 행사였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박석희 안동교구장 주교가 10월 9일에 선종함으로써 생명과 자연 환경 보호를 역설한 그의 메시지는 한국 교회 모든 신자들에게 보낸 마지막 호소였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것이기도 했다.

 

10월 15일에는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청주교구 주관으로 '전국 가정 대회'가 열려 이혼과 낙태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우리네 가정을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로 바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로마에서도 10월 14일 '가정들의 대희년' 행사와 15일 교황 집전 장엄미사가 비 속에서 봉헌되어 '가정과 사회의 봄인 자녀들'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상 한국 교회 4대 전국 행사는 행사 자체로는 나무랄 데 없이 잘 진행되었으나, 준비 과정에서 주관 교구만이 모든 것을 준비했을 뿐 전국의 모든 본당이 참여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던 점과 또 동시에 본당과 전국 대회 사이의 연결 고리가 형성되지 못했던 아쉬움을 지적할 수 있다.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한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대희년 평신도 대회' 역시 서울만의 행사가 된 느낌이 들었고, 일부 본당 외에는 전국의 신자들이 고루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본당 사목자들의 관심 여하에 따라서 참여도가 달라진다는 점이 행사 후 평가에서 지적되기도 했다. 평신도 대회에서는 교회 운동, 단체들의 역할을 강조했고, '평신도들의 반성과 다짐'을 발표하고 '새 천년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을 선언했던 것이다.

 

문제는 대희년 경축을 위한 각종 행사가 일회성 행사에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고, 그 행사의 정신을 전국의 각 본당들을 통해 전신자들이 실행에 옮길 때에만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후속 조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 밖에도 '장애인들의 대희년'(5월 7일)이라든지, '행려인들의 대희년'(10월 4일) 같은 때에 본당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가 하는 것은 짚고 넘어갈 일이라고 생각한다.

 

2) 대희년 경축과 본당들의 여러 가지 행사

 

청주교구의 모충동 성당은 본당에 '희년문'을 지정해 축복식을 갖고, 각 가정에도 희년문을 지정해 가족이 함께 모여 축복식을 가지는 한편 그 문을 드나들 때마다 문이신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또 하느님 자비의 문이 활짝 열렸음을 체험하도록 했다. 서울대교구 용산 본당은 본당 신자들이 성가정 안에서 뜻깊은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도록 하기 위해 1999년 11월 25일부터 신앙 강좌를 열고 외짝 교우 특별 교리반을 개설했으며, 대희년 맞이 부부 축복식을 갖기도 했다. 서울 혜화동 본당은 '2000년을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표어를 내걸고 쉬는 신자 모셔 오기, 신약성서 순례, 천년맞이 100일 기도 운동 등을 전개하며 본당 신자들의 신심 열기를 북돋우는 가운데 대희년을 시작해 12주간 신약성서 공부에 550여 명이 참가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수원교구 아미동 본당은 2000년 대희년을 시작하면서 '하루 세 번 웃자' '두 번 칭찬하자' '한 번 선행하자'는 '3-2-1 운동'을 전개했다. 모든 신자가 화목과 신뢰를 바탕으로 희년 정신에 따라 기쁘게 생활함으로써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삶을 증언해 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이 운동은 복음의 실천을 통한 선교의 결실로 이어졌다. 부산교구 전포 본당은 '나부터 변화하자'는 새 날 새 삶 운동의 정신에 따라 '웃는 얼굴'을 보이기 위한 '스마일 운동'을 전개해서 외짝 교우 선교 등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인천교구 상 1동 본당은 청소년 사목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면서 월 1회씩 주일학교를 위한 2차 헌금, 중고등부 135명에 대한 2박3일 꽃동네 체험 실시, 본당 내 PC방 개설, DDR 설치 등으로 교적상의 초중고 학생 615명 중 418명이 주일학교에 나오도록 했으며 초등부는 80% 이상이 나오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 본당들의 주일학교 출석률이 2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대희년의 경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자 비신자 부모들의 입학 문의가 쇄도할 지경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에 대한 사목적 열정과 배려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서울대교구 해방촌 본당에서는 분기별로 영화와 순결 등 미사 전례에 어떤 주제를 부여하고 그 주제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접목시켜 진행하는 방식의 테마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청년 사목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서울대교구 수유동 본당의 새 가족 찾기 운동과 수원교구 분당 마태오 본당의 우리 가족 찾기 운동은 새 신자 영입과 쉬는 신자 모셔 오기의 귀감이 될 정도이다. 대구대교구 삼덕동 본당은 사회 복지회 기금의 일부를 활용해 2000년 2월 21일 미사에 참석한 전신자 1,100명에게 3천원씩을 나누어 주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도록 한 '사랑의 3천원 나누기 운동'을 전개해서 교회의 이웃 사랑을 확산시키고 신자들 사이에는 사랑과 나눔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효과를 나타냈다. 수원교구 화서동 본당은 성당 근처 일반 주택을 빌려 마련한 작은 공간인 '사랑 마을'을 통해 노인들에게는 점심을 대접하는 사랑방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결손 가정 아이들에게는 공부방으로 활용하도록 운영함으로써 교회가 지역 사회에 열린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부산교구 울산 호계 본당에서는 2000년 7월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ME 부부들의 봉사를 주축으로 가족 미사를 봉헌하고 촛불 봉헌과 편지 쓰기, 가족 또는 부부간 체험 나누기를 함으로써 가정이 작은 교회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부산교구는 대희년 선교 운동의 결실로 10월에 6천5백여 명의 예비신자들에게 세례성사를 베풀기도 했다. 대구대교구 상인동 본당은 2000년 9월 1일부터 12월 12일까지 103일 동안 103위 한국 순교 성인 현양 기도 운동을 전개해서 매일 300명 이상 참여하는 놀라운 열성을 이끌어 냈다. 대희년의 정신을 순교자 신심에서 찾고자 하는 사목적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서울대교구 도봉 1동 본당과 같이 사순 시기에 '달콤한 것을 포기하자'는 등 10가지 생활 지침을 제시해서 신자들이 절제의 덕을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는 본당이 있는가 하면, 청주교구 강서동 본당 등 어린이날에 어린이들의 대희년을 합당하게 지낸 본당도 있으며, 청주교구 감곡과 수원교구 곤지암 본당과 같이 본당 차원에서 대규모의 성체 대회를 개최한 본당도 있다.

 

이 밖에도 본당 차원의 대희년 행사를 예로 들자면 한이 없다. 지금까지 열거한 사례는 전부가 아니며 드러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대교구 등촌동 본당과 같이 주보의 한 면을 할애해서 '대희년' 교육의 장을 마련한 본당도 있고, 다른 방법으로 대희년 교육에 힘쓴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긍정적인 사례들은 해당 공동체의 사목자가 얼마만큼 열성적으로 임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목자에 따라서 부정적인 결과를 드러낸 사례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요컨대 강론이나 공지 사항에서조차 대희년을 언급하지 않고 1년 내내 그냥 지나쳐 버리는 본당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것이 사실이다.

 

 

4. 희년이 갖는 가치와 충만한 삶

 

대희년 정신이 신자들의 삶 안에서 지속적으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희년이 갖는 가치를 제대로 익히면서 충만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년이 제안하는 근본적인 가치들은 어떤 것일까?

 

'중단' 또는 '휴식'의 의미를 지니는 안식년에 하는 것처럼 인류는 손님으로 하느님의 땅에서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노동(일)을 중단하고, 세상을 다스리던 일을 멈추도록 초대받았다. 안식년의 잔치에서 가난한 사람을 포함해 모든 히브리인들은 일에서 손을 놓고, 자신들의 하느님의 손 안에서 인간적 종속 관계를 벗어나 모든 이와 동등하게 자유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땅의 손님인 인간이 자유롭고 충만한 삶 속에 있기를 원하신다. 하느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인간의 삶이다. 땅은 유일하고도 합법적인 소유주이신 하느님의 것이다.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 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레위 25,3). 객이라고 해서 땅이 정작 우리의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고,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객이며, 아무도 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것'이라는 소유의 논리에 대해 희년은 다른 논리를 내세운다. 하느님께 받은 선물의 논리, '무상'의 선물이며, '모든 이를 위한' 선물의 논리이다. 우리는 모두 상호 형제들이며, 동등하다. 그러므로 우리 사이에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 모든 인간 관계는 나눔과 연대감의 가치 위에 기초를 두어야 할 것이다. 땅의 모든 재산은 모든 이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우리의 형제들과 이 재산을 나누는 만큼 재산은 우리들 사이에 친교를 이루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희년의 기도문이라고 할 수 있는 '주님의 기도'는 우리의 생활에 연관된 요청 가운데 첫 번째 요청으로 '일용할 양식'을 청하고 있다. 일용할 양식은 우리가 하는 노동의 '결실'이지만 '대가'는 아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일용할 양식을 청해야 마땅하다. 단지 하느님과 종속 관계에 있으며, 모든 이를 위한 선물로서 그분의 은총을 수용하는 의미를 지닐 때에만 평등과 형제애의 의식이 싹트게 될 것이고, 나눔과 절제의 깨침이 생겨날 것이며, 약자를 향한 모든 형태의 불의를 고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희년은 인간들 사이의 모든 종속 관계에서도 해방을 선포한다. 단지 하느님께만 종속되기 때문이며, 인간은 모든 우상과 주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성을 갖는다. 이스라엘에서 희년은 용서와 화해의 잔치로 시작한다. 백성들은 이 잔치 동안 이사야서 58장을 읽었다.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 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이사 58,6). 모든 사람에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용서해 주시는 은총으로 죄인인 인간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희년이 갖는 이 세 번째 차원 역시 우리 사회를 위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기도하듯이, 그리고 빚진 두 사람의 비유에서 제시하는 것과 같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큰 빚을 갚아 주신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적인 빚이라고 할 허물을 서로 용서해 준다. 용서와 화해는 하느님의 가장 큰 두 가지 은총이다. 용서와 화해로써 우리는 단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인간 상호간에도 관계를 회복할 수가 있다.

 

새로운 세상의 건설은 반드시 거저 용서해 주는 사고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악을 악으로 대응해 나간다면 폭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악을 선으로 대응해 나갈 때에만 폭력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이야말로 희년의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변화 없이 평등은 이루어질 수 없다. 희년이 갖는 가치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의 선물로서,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 주는 것이어야 하며, 또 이 선물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동시에 충만한 삶을 사는 길은 재산의 축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재산과 올바른 관계를 발견하고, 또 깊은 형제애의 인간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에 있다는 확신을 키워 나가야 한다. 재산이 우리의 존재 이유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러한 행위와 선택은 예수님께서 제안하신 삶의 새로운 형태이기도 하다.

 

대희년을 돌아보며, 특별히 본당 생활을 통해서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이 정신을 실천했는지 살펴보고, 이제 새로운 결심을 할 때이다.

 

[사목, 2001년 1월호, 최홍준(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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