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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수도회와 대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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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66

 

수도회와 대희년

 

 

서언

 

사전에 한국 남녀 수도회에 설문지라도 띄워서 각 수도회에서 대희년 맞이 준비와 희년을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아본 다음 수도회 전체 차원에서 글을 쓰는 것이 타당하고 바람직한 일이었겠으나 그렇게 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원고 청탁을 받고서 많이 망설였다. 그래도 몇몇 큰 수녀회에 직접 간접으로 알아보았지만 '대희년이라고 수녀회에서 특별히 한 것은 없었다'는 대답들이었다. 그러다 마침 필자가 1999년 5월에 마지막으로 개최된 '2000년 대희년 주교 특별 위원회'와의 연석 회의에 참석하였을 때 몇몇 남녀 수도회 장상들이 각기 수도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대희년 맞이 계획과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을 발표한 내용들을 기록해 둔 것이 있었다. 거기에 지난 3년 동안에 열린 한국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 정기 총회의 결정 사항들 가운데 대희년과 관련된 사항들만을 발췌하여 여기에 인용하였음을 밝혀 둔다. 그러므로 이 글의 앞부분은 한국 남녀 수도회 전체가 아닌 소수의 여자 수도회만을 반영하고 있기에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1. 한국 교회 수도회들의 2000년 대희년 준비와 그 과정에 대한 성찰

 

제삼 천년기를 여는 그리스도 탄생 후 2000년을 '은총의 대희년'으로 선포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서 [제삼천년기]를 통해 제삼 천년기를 가장 잘 준비하는 것은 이미 새로운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새롭게 투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20항).

 

대희년의 직접 준비는 두 단계로 나누어 실시되었다.

 

제1단계(1994-1996년)

 

제1단계는 금세기에 이미 해 온 작업을 계속하며, 2000년 희년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2000년 사목 준비를 위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0년 대희년 주교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였다(1995년 10월). '2000년 대희년 주교 특별 위원회'는 교황 교서 [제삼천년기]를 연구하여 이 문헌에서 제시하는 가르침에 따라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해결하려 하였고, 신자들이 2000년 대희년의 의미와 대희년을 맞는 마음가짐을 굳건히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대희년에 관한 교육 자료 [대희년 길잡이] 4권을 작성하여 발간하였다.

 

제2단계(1997-1999년)

 

제2단계인 마지막 3년은 2000년 희년의 그리스도론적이고 삼위일체적인 주제들에 중심을 맞춘 "면밀한 준비 단계"(39항)였으니, 곧 1997년은 예수 그리스도(성자)의 해, 1998년은 성령의 해, 1999년은 하느님 아버지(성부)의 해였다.

 

이 시기에 한국 주교단은 공동 사목 교서 [대희년을 바라보며]를 발표하였고(1997년 3월), 희년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새 날 새 삶'운동을 전개하였다(1998년). 이와 같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0년 대희년 주교 특별 위원회'를 중심으로 대희년 맞이 실천 방안들을 제시하고, 교구 차원에서는 다양한 영성 교육 프로그램들과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잇달아 '교구 시노드'들이 개최되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희년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교육하는 데는 교회의 TV, 라디오, 신문, 잡지들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반면에 수도회들은 조용히 교회의 문헌들을 공부하고, '새 날 새 삶' 운동에 참여하며, 기도와 전례, 쇄신회 등을 통해 화해와 용서의 삶을 사는 '좋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처럼 수도회들은 외적인 행사에서보다 본원을 중심으로 하여 각자가 봉사하고 있는 사도직 활동 안에서 자신들의 내적 쇄신과 기도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2000년 희년의 준비는 이처럼 세계적이고 지역적인 차원에서 교회 전체에 걸쳐 자신이 그리스도께 받은 구원 사명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고취시키면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면밀한 준비 단계를 거쳤는데도 정작 '2000년 은총의 대희년'을 맞이하였을 때에는 사목자들과 수도자들만이 아니라 신자들의 열성도 준비 시기보다 훨씬 뒤떨어진 느낌이어서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2000년 대희년 주교 특별 위원회'(1999년 5월)에서 몇몇 남녀 수도회 장상들이 발표한 바 있는 대희년 준비 사항들이 비록 소수의 수도회만의 것이지만 여기서 발표하지 않은 수도회들의 것과 대동소이한 것임을 전제하고 다음의 몇 가지를 소개하되 전례와 기도 생활 안에서 실천한 내용들은 생략하기로 한다.

 

- 실직자, 노숙자들을 위해 수녀들의 휴가비를 반환 또는 절약

- 수입의 1/10 애긍시사

- 북한과 불우 이웃돕기

- 휴가비 일부 애긍

- 이웃 노인들 초대

- 화해의 편지쓰기

- 고운말, 경어 사용

- 실직자,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수녀회, 학교에서)

- 무료 안과 수술, 낙태 반대 운동 참여 및 교육(병원, 본당에서)

- 가난한 학생, 실직자들의 자녀에게 장학금(학교, 유치원에서)

- 헌혈, 장기 기증 운동 참여

- 하루 품팔이를 실시하여 일당을 북한 돕기에 보냄

- 자연을 존중하고 환경 되살리기(학교, 본당)

  * 비누 사용, 쓰레기 분리 수거, 음식 찌꺼기 남기지 않음

 

수도회들은 이처럼 각기 수도회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 정기 총회의 결정에 따라서, 곧 한국 교회 수도 연합회 차원에서도 모든 수도자들이 힘을 합하여 다음과 같은 희년 맞이 준비를 함께 하였다.

 

- 2000년 대희년 맞이 40일 기도 바침

- 1996년부터 매월 25일 통일을 위한 기도와 북한 돕기 위한 단식

- 개인, 수도회, 연합회 차원에서 환경 오염을 막고 자연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

  *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운동 실천

  * 쓰레기 분리 수거, 음식 찌꺼기 남기지 않음

  * 신자들에게 자연 보호 운동, 시민 단체 가입 권장

  * 에너지 절약 운동

 

1999년, "여성과 화해"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 정기 총회에서는 우리 수도자들이 먼저 자신과의 화해, 선교를 위한 공동체와의 화해, 민족간의 화해와 자연과의 화해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다음과 같이 결의한 바 있다.

 

- 지구촌 동서남북의 화해를 지향하며 기도하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위해 노력한다.

- 민족간의 화해와 동시대 여성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들 수요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 우리 민족의 화해를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1995년에 결의한 통일을 위한 기도와 북한 돕기를 위한 단식을 계속한다.

- 주교회의에 여성 사목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요청하고, 여성의 관점에서 한국 교회사를 읽는 연구를 적극 지원한다.

 

그리고 '2000년 은총의 대희년'에는

 

- 봉헌 생활의 날(4월 10일) 행사와 나눔 바자회가 한국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 주최로 서울에서 실시되었고(1,500여 명 참석),

- 수도회 차원에서는 성지 순례, 젊은이 축제, 퇴회자들의 초대, 이웃 노인 잔치 등의 대희년 행사가 있었으며,

- 각 수도회에서 희년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형태의 기도들이 바쳐졌다.

 

그러나 이제 '2000년 대희년'을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수도회와 수도자 개개인은 이렇듯 여러 해 동안의 준비를 통해 '은총의 대희년'에 얼마나 내적으로 쇄신되었는지, 높은 담을 넘어 들려오는 세상과 인간들의 외침에 얼마나 귀기울이고 마음의 문을 열었는지,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세상을 위해 살면서도 '세상 것'이 아닌 하느님께 봉헌된 자로서 예수님의 비전인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모습을 얼마나 보여 줄 수 있었는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하겠다.

 

 

2. 대희년의 정신은 수도자들의 삶 안에서 지속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1) 수도자의 정체성 확립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레위 19,2) 부름을 받은 수도자들이 '희년'에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바쳐지기 위해서는 더욱 깊은 차원에서 회개와 쇄신의 삶이 요청된다. 이미 수도 서원을 통해 하느님께 속하고 주님의 것이 된 수도자의 삶의 중심에 하느님께서 자리하고 계시며, 과연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희년에 땅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듯이 우리 자신을 주님의 것으로, 본래 주인께 돌려드리기 위한 노력을 다하였던가? 자신을 하느님께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것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신뢰하며 맡기는 사람만이 자아 포기, 자기 이탈, 자기 극복, 죽음이 가능하다. 이런 자세는 자신의 욕망과 자애심을 끊어 버리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사랑에 맡기는 회개의 삶이 요청된다. 해방과 자유를 목표로 한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주 구체적이고도 철저한 참회의 길을 뜻한다. 이 길은 하느님께, 곧 자유의 길로 가는 데 있어 "완전한 응답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모든 장애를 멀리하고 자신의 전 존재와 소유물을 하느님께 돌리고 바쳐야 함"([봉헌생활], 25항 참조)을 뜻한다. 곧 모든 것을 버리는 완전한 투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은 끊임없는 자아 포기, 자기 이탈, 자기 극복을 통한 '죽음의 여정-탈출의 여정'을 가야만 한다. 이 힘겹고 고통스런 '탈출의 여정'을 통해서만 죽음 안에 생명과 삶이 있고, 삶 안에 죽음이 있다는 '파스카의 신비'를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수도자는 하느님의 선택적 사랑으로 부름을 받고 세상에서 분리되어 하느님만을 섬기도록 봉헌된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수도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우선적인 사랑 때문에 선택한 삶이다. 수도적 삶은 의미 있는 인격을 향하여 방향지어져 있고, 긴 수도 생활의 여정에서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에서 제자리, 가치, 의미를 주시는 분이시다. 봉헌의 삶에서 그리스도께 촛점을 맞춘 분명한 삶이라야만 포기도 분명하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참으로 의미 있는 존재라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면 자기 포기, 자기 이탈, 자기 극복을 통한 '파스카의 여정'을 걷게 된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산 증인이 되고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될 수 있다. 이같이 탈출의 여정을 통해 정화되고 자유로워진 수도자라야만 세상과 사람들에게 주님의 선물인 자유의 참 가치를 일깨워 줄 수 있고, 자유와 해방의 길에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수도자는 모든 상황에서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증언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로서 봉헌된 사람이다. 수도자는 자기 자신을 실현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다. 수도자는 수도 생활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실현은 특정한 방향을 지닌다. 더 이상 개인의 어떤 필요를 기반으로 해서 자기 긍정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생각하는 방법을 재조직하고 자신의 느끼는 방법이나 현실을 재가치 평가하는 방법을 그리스도의 생각하는 방법과 대조하면서 현실을 느끼고 재가치 평가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며 그분과 동일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도자가 행동하는 유일한 준거점은 사랑이어야 한다. 이는 곧 그리스도께 집중된 사랑이며 자신의 삶을 통합해 주는 구심점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인생을 함께 이끌고 나가는 그분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모든 것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상대화되어야 하고 결국은 부수적인 것이다.

 

현대 수도자들은 실제로 내적인 생활보다는 외적인 활동에 시간과 정력을 더 많이 쏟고 있다. 그래서 수도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이념이나 카리스마에 두지 않고 각자의 자질과 그 실현에 두고자 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므로 순종과 자아 실현, 순종과 포기, 편의주의와 가난, 하느님 사랑과 인간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과 합리화의 도전을 받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도자들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축성된 자로서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수도자의 존재론적 의미는 doing이 아닌 being에 있다.

 

그러나 한국 수도자들은 기도하는 수도자이기보다 일하는 수도자로 비추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가치 불확실 시대 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현존 의식이 자주 약화되는 세상 속에서 수도자들은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복음적인 삶을 살아감으로써 예언적이고 확신에 찬 증거를 해야 한다. "선교는 외적인 활동이라기보다 인격적 증거를 통하여 세상에 그리스도를 현존하게 하는 것([봉헌생활], 72항 참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의 존재와 삶 전체가 참된 증거가 되려면 수도자는 첫째로 기도하는 사람이고 참 신앙인이어야 한다. 현대인들은 수도자들에게서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수도자, 복음적인 삶을 사는 수도자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삶이 바로 희년의 정신을 사는 삶이며, 이런 삶은 기나긴 수도 생활의 여정을 통해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2) 수도회의 고유 카리스마 실현 -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수도 생활의 쇄신 적응에 관한 교령' 안에서 수도자들의 시대적 쇄신을 위해 세 가지 기준, 곧 예수님과 복음의 정신, 창설자들의 영성과 의도, 건전한 전통들을 제시하고 있다. "수도 생활의 쇄신과 적응이란 모든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원천과 수도회의 창립 당시의 정신으로 계속 돌아감과 동시에 이 시대의 변화하는 상황에의 적응을 내포하는 것이다"(수도생활교령, 2항). 모든 수도회의 규칙서와 회헌들이 이미 복음에 기초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복음적 가치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도회의 카리스마와 창립자의 정신에 따라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곧 복음 정신에 따라 사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수도자로서의 자아와 소명 또한 온전하고 더욱더 명백하게 되찾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 복음 전래 200주년 사목회의(1984년)의 '수도자 의안'은 수도자의 본질을 상기시키기 위해 수도자의 뿌리 의식을 강조하였다. 모든 수도회는 자기 수도회가 역사상 어떤 상황 속에서 뿌리내렸는지, 어떤 맥락 속에서 접목되었는지 그 근원을 알아야만 자신의 뿌리 의식을 튼튼하게 하고, 자기 수도회의 은사를 알게 되어 수도자로서의 신원을 더욱 확고히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에 바탕을 둔 창립자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려는 노력과 창립자의 정신을 현 시대와 교회의 필요에 민감하게 응답하고 쇄신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곧 토착화의 과정이기도 하다(수도자 의안, 3.4.5항 참조). 따라서 회원들은 각 수도회의 고유 은사에 충실하면서도 오늘의 한국 교회와 사회의 필요성에 대응할 수 있는 수도자로서 양성되어야 한다.

 

사도직 수행에서도 수도자들은 시대의 징표에 민감하여 그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고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지를 식별하여 그 시대의 징표에 맞게 응답해야 한다. 급변하는 현 세상 안에서 수도회들은 '시대의 징표' 속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실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는 오늘날 교회와 세상을 위해 수도자들이 3대 서원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미리 보여 주는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의 증인으로서, 기도 생활로 세상에 영적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영적 존재로서, 그리고 수도회 고유 카리스마를 따라 세상 사람들을 섬기는 봉사자로서 자기 역할에 더욱 충실함으로써 이 세상에 '하느님의 특별한 증인'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3) 영성 쇄신과 심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새로운 열의,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새 복음화'의 시작을 선포하였다. 새 복음화는 교회가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의식 속에서 시대의 징표들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새롭게 체험함으로써 동시대인이 복음과 일상 생활 사이에서 새로운 창조적 통합을 이루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새 복음화'의 새로움은

(1) '시대의 징표' 속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며,

(2) 교회 구성원들의 회개와 교회 쇄신을 필요로 한다.

 

교황은 세상이 복음 선포자들에게 기대하는 일련의 성덕을 열거하면서 이러한 성덕의 표시 없이 현대인들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단순 소박한 생활, 기도하는 정신, 모든 이에 대한 사랑, 특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 순명, 겸손, 해탈, 극기 등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성덕의 표시 없이는 우리의 말이 현대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교회의 선교 사명], 76항).

 

수도 생활은 "교회와 세상을 위해" 주신 "사명의 선물"이라고 정의한 공의회는 변천하는 오늘의 시대와 세상 안에서 진정한 선물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새로운 자기 이해,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근거하여 수도회들도 그들의 영성적 삶과 사도적 생활에서 철저한 쇄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뿐 아니라 공의회는 수도자 쇄신의 기준에서 4가지 중요한 충실성을 그 준거로 제시하였으니, ① 인류와 우리 시대에 대한 충실성 ②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충실성 ③ 교회와 세계 안에서의 교회 사명에 대한 충실성 ④ 수도 생활과 소속된 수도회의 카리스마에 대한 충실성이다(수도 생활 쇄신과 적응 참조).

 

수도 생활의 본질적 내용과 각 수도회의 이상과 사명은 구별되어야 한다. 특수한 이상과 사명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수도자의 봉사와 사도직 활동은 수도자다운 삶을 전제할 때 참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수도 생활 쇄신과 적응을 위한 교령' 5항의 정신에 따라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제9차 정기 총회의 의안집 개요' 11항에서 수도자들의 영성 생활의 기본 요소들로 제시된 것은 수도자들이 제삼 천년기에도 지속적으로 살도록 노력하며 내면화시켜야 할 희년의 정신이기도 하다.

 

① 세상의 포기와 하느님만의 근본적 선택 ② 봉헌 생활의 그리스도 중심적 의미 ③ 봉헌 생활의 파스카적 의미-부활의 증거자 ④ 교회 안에서 주님께 대한 봉사에 전적으로 헌신 ⑤ 관상과 활동 생활의 조화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이후의 교회 문헌들이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를 철저하고 완전하게 따르는 데서 오는 수도자 개개인의 성화와 사도적 책임이 서로 반대되거나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아주 밀접히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보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 생활, 교회, 세상"이라는 세 가지 주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확인해 준 수도 생활의 위치와 역할을 명백히 요약해 주고 있다.

 

4) 나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마태 20,28) 분을 따르는 수도자들은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의 생활, 실제적이고 헌신적인 봉사의 생활을 해야 한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심으로써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깊이를 보여 주신 예수님처럼, 특히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봉사하는 것은 일체의 자기 이익을 버리고 겸손한 자기 봉헌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함을 뜻한다. 가난의 정신은 개인과 공동체 안에서 '나눔'으로써 실현된다. 복음적인 삶은 말과 행동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사람들은 수도자들에게서 가난과 검소함, 청결과 신실함, 순종에 있어서의 자기 포기와 같은 모범의 증거를 기대하고 있다([아시아 교회], 44항 참조).

 

그러나 내적 쇄신이 선행되어야만 행동 변화(변형)가 가능해짐과 같이 수도회들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교적 형제애의 가치들과 기쁜 소식의 변형적인 힘을 증거하게 된다(위와 같음). 수도회 공동체가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장소, 하느님의 현존과 기도의 장소, 나눔과 친교의 장소가 될 때 이기주의와 물질주의 팽배로 가정 공동체들이 파괴되어 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서로를 살리는 생명 공동체의 참 모델이 될 수 있다.

 

아직 복음적이지 못하고, 탈출로 정화되지 못하고, 성숙되지 못한 수도자들의 삶의 모습이 세상과 교회를 복음적으로 변형시키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스스로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 안에서 나누는 삶으로 이해되는 형제 생활은 교회의 친교를 나타내는 훌륭한 표징이다"(위의 책, 42항 참조). 이처럼 수도자들이 복음적 삶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제는 세상에 외치는 복음 선포에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지구가 다시 생명을 회복하여 하느님의 생명으로 가득차고 하느님께서 만드신 본래의 모습으로 세상을 되살려 놓을 수 있도록 수도자들이 화해와 공존의 모범이 되고,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접합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맺음말

 

이제 한국 남녀 수도회들은 제삼 천년기를 맞아 양적 성숙기를 지나 질적 성숙기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세주 강생 2000년 은총의 대희년'을 경축하고 새 출발을 하게 되는 제삼 천년기의 한국 수도회와 수도자 개개인은 대희년의 은총 안에서 살기 시작한 희년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도 생활 자체가 긴 삶의 여정이어서 끊임없는 참회와 쇄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수도 생활 여정 안에서 수도자들에게서 요청되는 역할과 과제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 요약하면서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첫째, 수도 생활과 수도자 개개인의 정체성 확립:희년의 정신에 따라 하느님께 속하며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바쳐짐으로써 수도 생활 자체가 복음적 증거가 되게 한다.

 

둘째, 각 수도회의 고유 카리스마 실현:단일하고 확고한 가치 체계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원적이고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수도자로서, 개인적 공동체적 식별 능력을 지닌 수도자로서, 활동 속에서 관상하는 수도자로서 양성되어 이 한국 땅에서 '현대 21세기의 하느님의 선물로서, 카리스마'로서 형제들과 함께 나눈다.

 

셋째, 영성 쇄신과 심화:수도자 개인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수도회 차원에서도 교회와 세상 사람들이 수도회의 영성을 함께 살고 나눔으로써 더욱 삶을 풍요롭게 한다.

 

넷째, 시대의 징표:늘 깨어서 시대의 징표들과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음과 동시에 이에 유연하고 민첩하게 응답할 수 있는 개방적인 수도자로 산다.

 

다섯째, 토착화:참된 토착화는 그리스도께 대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인식과 믿음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므로 새로운 언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심리 현상, 새로운 가치관으로 형성되는 현대의 우리 사회에 복음을 전하도록 한다.

 

여섯째, 외방 선교의 부름:받는 교회, 받는 공동체로부터 나누는 교회, 나아가 주는 공동체로서 적극적으로 외방 선교를 향하여 준비하고 초대에 응한다.

 

한국 교회 안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수도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수도자들 자신의 존재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곧 수도자들이 참된 영적 존재로서 성숙하려고 노력하면서 영적 안내자가 되고 기도와 상담 등을 통해 인간적, 영적 치유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수도자가 기도로써 하느님과 꾸준히 일치하면서 사랑에 성장하여 하느님의 거룩함을 반사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세계에서 수도자의 주된 선교 사업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은 무엇보다 기도의 전문가, 복음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존재론적 전문인으로서의 양성과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수도자들이 진정으로 새로운 복음화의 사명을 위해 카리스마적인 존재로서 교회와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것, 이것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우리 수도자들 모두에게 주어진 주된 과제이다.

 

[사목, 2001년 1월호, 정하돈(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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