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403.....부활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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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4-04 ㅣ No.1743

부활성야 (復活聖夜)

1: 창세기 1,1-2,2                3: 탈출기 14,15-15,1         5: 이사 55,1-11

7: 에제키엘 36,16-17.18-28 신약독서: 로마 6,3-11       복음: 마르코 16,1-7

2015. 4. 4. (). 이태원

주제 : 내가 드러낼 부활의 의미는.....??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올바른 응답인사는 :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누구나 다 기념하고 축하할 부활대축일입니다. 앞서 왔던 사순절이라는 기간을 지내고 자동적으로 맞이하는 것이라면, 시간에 따른 것이니 우리에게 특별한 일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맞이하는 부활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모두 단단한 믿음의 기초위에 서 있겠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너그럽게 들어주십시오. 여러분은 우리 주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쉽게 나올 대답은 그렇죠(!)’이겠지만, 대답을 듣고 한 번 더 그 질문을 해도 그렇다(!)니까요하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부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묻는 소리에 여러분이 하는 대답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이 부활은 세상의 삶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신앙의 일에서 말할 수 있는 내용이므로, 여러분이 저마다 대답하는 방법과 자세는 각자가 그 부활을 대하는 태도를 담을 것입니다.


부활(復活)이라는 낱말의 의미를 사전은 죽었다가 다시 되살아남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일은 일반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이 부활을 세상의 입장에서 정확하게 체험하려면, 누구든지 죽는 일이 먼저 앞서야 한다는 것이니, 현실세상에서는 체험하기가 아주 힘든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이라는 말은 사용하면서, 쉽게 체험할 일도 아니고 가까이 하기도 어려운 것이라면 부활은 우리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부활은 예수님만이 경험하고 삶에서 죽음의 경계를 넘어갔다가 다시 삶으로 돌아온 특별한 일이라면, 사람들이 가까이 갈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아니다’, 두 가지 모두 가능할 것입니다. 대답이 다르면, 그가 선택하고 드러내는 삶의 자세도 다를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들은 복음도 부활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죽음으로 세상의 생명을 마치신 날, 그분의 시신이 어디에 놓이는지 눈여겨봤던 3명의 여인들이 사흘째 되는 날 같은 장소에 갔을 때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부활에 대하여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 안다고 익숙하게 사용하지만,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도 우리가 아는 부활이라는 말의 의미대로 깨달았을까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그 놀라운 일을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예수님은 무던히도 애를 쓰셨지만, 그 특별한 현장에 다다른 3명의 여인들이 보여준 행동은 예수님의 의도를 읽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과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부활은 그리스도교신앙의 중심이라던데, 그 말을 설명해달라고 청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나는 부활을 체험한 일이 없으니 모를 뿐만 아니라 해줄 말이 없다고 하면, 질문하는 사람에게 대답이 될까요?


이 부활은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 늘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묻는 것도 어디까지나 이론입니다. 그 놀라운 체험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더 답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의미가 있는 부활을 세상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사람은 이론을 얘기하는 합리론(合理論)보다는 체험이 담긴 경험론(經驗論)을 우선하고 살 거라고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 시도는 한다고 해도,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부활은 경험론의 세계에서 설명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하도 개인적인 것이라서, 보편화시키기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살아나셨기에,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고 웬 젊은이는 무덤을 찾았던 3명의 여인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한 말을 들은 3명의 여인들은 내가 부활을 체험했다(!)고 탄복하지도 않았습니다. 부활은 경험론의 세계에서 보면, 지금 말씀드린 것이 설명할 수 있는 전부일수도 있습니다.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러나 있고, 그 안에 있었어야 할 시신은 사라진 것이 경험론에서 말하는 부활입니다. 누가 이것을 신앙에서 말하는 부활과 같은 것이라고 알아듣겠습니까? 이런 내용을 대하면서, 내가 세상에서 드러낼 부활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리해야합니다. 놀라운 소리를 들었던 여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 다음과정이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부활은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세상의 창조, 힘겨운 삶에서 구원해주시는 손길, 하느님은 늘 곁에 있는 분이니 우리더러 그 하느님을 찾으라는 권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것을 두렵지 않게 대하고, 세상의 삶을 마치면 언젠가는 우리가 부활에 다가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따르게 할 힘을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실행하신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의 삶을 채우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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