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412.....부활제2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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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4-11 ㅣ No.1749

부활 제2주일 (나해)

사도 4,32-25         1요한 5,1-6        요한 20,19-31

2015. 4. 12. 이태원 (2000년 요한바오로2세 교황님이 제정한 하느님 자비주일)

주제 : 세상에서 신앙인이란?

같은 세상에서 태어나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다가 비슷한 모양으로 그 세상을 떠나는 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입니다. 사람마다 태어나는 나라가 다를 수 있고, 태어난 지방이나 부모님이 다를 수 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비관적인 표현일까요? 조건도 다를 수 있고, 사는 방식과 자세와 태도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세상에서 사는 일에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오늘은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하는 부활제2주일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어떻게 대하실까요?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고,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옳겠습니까? 사람이 지식으로 안다는 것을 모두 다 삶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어도 내가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특정한 미래의 어느 순간부터 삶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달구는 한 가지의 일은 무상(無償)급식(給食)’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사는 곳이니 저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무상급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무상급식이 필요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같은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살피자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는 이런 문제를 이미 2000년이 넘는 세월 전에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있었던, 히브리민족공동체에서는 해결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점령자도 아니고, 식민지국민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그런 놀라운 특성을 보였다고 생각하면, 요즘의 우리나라의 정치가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이웃을 생각하는 자세는 2000년 전 히브리민족이 처했던 상황보다 좋다고 말해줄 수는 모습입니다. 세상은 발전했다고 하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요? 이런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내가 올바른 생각을 한다고 해도, 경쟁사회에서 그렇게 생각한 올바른 결정대로 잘 산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놀라운 모습을 전하는 것이 오늘의 첫 번째 독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무상급식이라고 다른 이를 조금 생각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내 재산을 다 팔아서 내어놓고, 다시 필요한 만큼 돌려받았다는 소리는 오늘날에도 힘든 일이니, 그 옛날에 실현됐을 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까요?


이런 말씀을 먼저 하고 난 할 수 있는 얘기는 참된 신앙인은 세상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 보기에 어리석은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세상의 기준입니다. 달리 말해서, 우리가 살고 있거나 살아야 할 세상이 눈에 보이는 세상말고도 다른 차원이 있다면 그 판단과 결정 그리고 행동하는 모양은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또 하나 복잡한 일은 나라의 안전에 관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싸드(THAAD,=고고도미사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 군사분야에 문외한이라서 그게 얼마나 필요한지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오늘복음에서 우리가 들은 것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빌어준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무력을 배경으로 합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는 소리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같은 방법으로 세상에서 사신 분이 아니지요.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큰소리친 토마스를 두고, 그의 머릿속과 삶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을 행한 것이 아니라, ‘구멍이 뚫어진 손에 손가락을 넣고, 창에 찔린 옆구리에 주먹을 넣어보라는 세상의 방식으로 토마스사도를 설득시키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만,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이 세상이 있게끔 만드시고 그 세상이 올바르게 살기를 바라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사는 것이 옳겠습니까? 지금 당장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것은 하느님의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방식이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산다면 우리가 준비하고 챙기고 대비해야 하고, 내 주변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을 내 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비중이 커지게 됩니다.


좀 더 가졌다는 사람이 자기 것을 내놓아 힘겨운 사람을 도울 생각은 하지 못하면서, 힘겨운 사람을 향하여 너는 왜 가난하게 살아서, 내 주머니를 털어가는 사람으로 사느냐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살이가 힘겹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많이 가진 사람이 자기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려면 더 많은 경비원(警備員)을 두어야 하고, 더 많은 CCTV를 설치해야하며, 더 많은 긴장과 갈등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게 좋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다른 방법을 아무리 얘기해봐야 소용없는 일입니다

 

평화를 빈다(!)’고 세 번이나 하신 예수님의 진정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그러한 갈등과 고민은 성당에 왔을 때만 한다든가, 그렇게 하는 것은 신앙세계의 일이니 현실세상에서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늘 같은 상황과 같은 입장에서만 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을 향해 선포하신 그분의 계명과 그 계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담긴 계명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힘겹고 부담스러운 것일까요? 그래서 피하고 도망치고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하느님의 눈에서 잘 숨는 것이 최고의 방법일까요

 

세상에서 바르게 산다는 신앙인이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겠는지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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