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414.....부활 제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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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4-13 ㅣ No.1751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사도행전 4,32-37      요한 3,7.8-15

2015. 4. 14. 이태원

주제 : 사람의 삶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이론으로 사는 것이고 하나는 실천과 행동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론이 앞서지 않으면 실천에 일관성을 드러내기가 참 어려울 것이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이론을 안다고 한들 그것은 요란한 소리를 내는 꽹과리의 역할에 불과할 것입니다. 소리를 낼줄 아는 꽹과리가 아무리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구별하고 나면 한계는 있습니다. 이론으로 사는 사람이 갖는 서글픔이고, 실천으로는 살지만 자기의 삶을 남들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갖는 서글픔입니다. 이렇게 구별하는 일 없이 다 좋으면 참 좋을 텐데, 우리의 일에서 그런 모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부활대축일의 팔부축일 독서에서 읽은 내용에 조금 덧붙여 오늘 사도행전의 독서를 들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읽은 내용에 덧붙인 부분은 뒤에 나오는 바르나바의 행동에 관한 내용입니다. 실제로 자신의 재산을 내놓고 남들이 함께 쓰도록 한 것이 순수한 이론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았는지는, 우리가 독서만 읽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역시 안타깝다고 해봐야 별로 의미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힘겨운 사람이 살기가 참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바꿀 획기적인 방법은 없는 자본주의사회이지만 이걸 달리 만들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경영자와 정부는 노동자들을 맘대로 해고하고 파견근무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노동자들은 그에 관련된 일은 타협할 수 없다고 하니, 아마도 우리의 삶에서 이런 문제가 해결된 때를 맞이하는 것은 아주 먼 일일 것입니다.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 대한 진단을 아주 잘 한다고 해도, 바르나바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의 역사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가능할 것은 아닐 것이고, 십분 양보해서 이런 일은 신앙의 세계에서 먼저 시작돼야 하는 구조인데, 얼마나 가능하겠습니까?


복음은 예수님과 율법학자였던 니코데모의 씨름이야기의 연속이고, 그 주제는 계속해서 새로 나는 것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니코데모는 어머니를 통해서 새로 나는 방법을 묻고,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이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어야 뭔가 가능한 일이 생기겠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높이 들 때까지는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이 서글픈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는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하셨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이웃들에게 생명을 전달하겠습니까? 우리의 이웃들에게 어떻게 하면 생명의 길을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을 위하여 잠시 기도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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