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421.....부활 제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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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4-21 ㅣ No.1757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사도행전 7,51 - 8,1ㄱ       요한 6.30-35

2015. 4. 21. 이태원

주제 : 박해와 탄압

세상에는 여러 가지 힘들이 있습니다. 힘들다고 말하는 세상에서도 그 힘겨움을 이기게 해주는 힘도 있고, 그와는 반대로 세상의 삶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졌다고 여기는 힘마저도 빼앗아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힘도 있습니다. 둘 중에 어떤 것이지, 둘 다 모두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에 따라 드러내는 것에 따르는 결과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어떤 모습이 드러나게 하는 방법으로, 여러분이 가졌을 힘(!)을 사용하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당연히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기대하고 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이 다 행동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사람의 삶을 활기가 있게 만들고 격려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와는 다른 입장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박해라는 표현으로 할 수 있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탄압이라는 말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가지 표현이 어느 것이 어느 상황에 써야한다고 정해진 바가 있는지는 모릅니다만, 박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신앙이나 종교와 관련하여 많이 쓰는 말이고, 탄압은 말 그대로 세상의 일에 많이 쓰는 표현입니다. 어떤 것이 됐든,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힘겹게 하는 것이니, 좋은 일은 아닙니다.


세상의 삶에서 올바름에 대한 판단은 싸움의 결과로 드러납니다. 때로는 무력을 동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승리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삶에서 기대하거나 바랄 것은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정의를 바탕으로 한다면, 그런 세상에는 박해도 없을 것이고 탄압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로 생각할 것은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에서 자신은 정의의 길을 간다고 말하면서, 드러나는 행동이 박해나 탄압일 경우입니다. 주변 사람의 한둘이 지적한다고 달라질 일은 아니겠지만, 세상에서 이런 모습이 얼마나 사라지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질 일입니다.


스테파노부제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시라고 청원합니다. 세상을 향해서 가진 힘이 없는 사람은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게 힘을 가진 사람에 대한 올바른 대처방법일까요? 예수님을 통하여 기적을 체험했으면서도 덤비는 모습을 보이는 군중들의 태도와는 비교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세상의 삶에 정의는 항상 승리하지 못합니다. 훗날 결론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 수 있어도 현실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모습은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쉽게 현실과 타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생명의 빵을 먹는 시간에 올바르게 참여할 수 있는 자세가 무엇인지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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