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427.....부활 제4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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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4-26 ㅣ No.1762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사도 11,1-18      요한 10,1-10

2015. 4. 27.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선택에 대한 인간의 판단

새삼스레 하는 질문이겠습니다만, 세상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이렇게 하는 질문에 대답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라면,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첫 번째 대답은 하느님일 것이고, 다른 두 번째 대답은 사람의 결정을 존중(!)하여 그 대상은 사람일 것입니다. 가능할 수 있는 대답을 두 가지로 표현했습니다만, 사실은 그 대답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됐든지, 선택하거나 대답하는 방법에 따라서 말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드러내는 삶의 태도도 또한 달라질 것입니다. 답을 정해놓고 난 다음에, 여러분에게 하는 질문은 아니지만, 이런 질문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오늘 독서에 나오는 베드로사도는 한 가지를 먼저 드러내는 행동을 했다가, 다음 순간 다른 선택을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사람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하느님이라고 세상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 바뀌는 대답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그 대답을 하느님이라고 하면, 사람에게는 자율권이나 삶의 묘미가 사라지고 하느님의 뜻에 대하여 꼭두각시가 된다고 여길까요? 반대로 삶의 주도권이 인간인 나에게 있다고 한다면, 삶에는 특별한 재미가 생길까요?


이것은 제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만이 아니라, 신앙인으로 움직이는 내 삶의 모습에 대한 자세를 묻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하고 대답한 베드로사도는 어떤 자세였을까요? 나는 내가 생각한 완벽한 방법대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했으니, 하느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지...하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좀 더 넓게 세상을 보지 못하는 우리는 이렇게 대답을 하고, 내가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했노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 선택에 대한 것이야 훗날 내가 감당하면 될 일이니까, 미리부터 고민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미리 걱정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느님의 뜻에 승복한 베드로사도는 예루살렘을 벗어나서 복음을 선포하게 됩니다만,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양이 들어있는 우리를 대할 때, 문을 열고 들어가느냐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내 자세가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면 충분하다고 말할까요? 내가 목자의 삶을 사느냐, 도둑이나 강도의 삶을 살 것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입니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삶에 대한 판단은 내가 하는 일은 아니겠지요? 어떤 것이 올바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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