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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북한 교회의 정상화와 사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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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29

[세계 교회는 지금] 북한 교회의 정상화와 사제 문제

 

 

북한에 과연 교회는 있는가?

 

이 문제는 2000년 6월에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한 뒤, 김정일 위원장에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초청할 것을 권유하자 이에 동의했다고 밝힌 뒤에 불거졌다.

 

정상회담 직후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떠오르자 사람들의 관심은 교황청의 입장에 쏠렸다. 김정일 위원장이 초청하기로 했으니 교황이 가겠다고 하면 방북이 성사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교황청의 공식입장은 드러나지 않은 채 교황청의 한 매체 책임자가 교황이 방북하려면 먼저 교황청과 북한이 외교관계가 있어야 하고 현지 교회의 초청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는 외신이 나왔다. 이것은 교황이 해외방문을 할 경우의 일반적인 절차이긴 하지만, 교황청이 교황 방북에 어떤 ‘조건’을 건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뒤 한국교회에서는 북한의 특수성을 들어 교황이 북한과 외교관계가 없어도 방문할 수 있지 않느냐고 교황의 적극적 의사를 은근히 촉구하는 한편, (나중에 교황청은 이 외교관계 조건을 포기한다고 시사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현지 교회”라는 조건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공식적으로는 현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대주교가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 대주교가 실질적으로 평양교구장 일을 할 수 있도록 북한측이 허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교황의 해외방문 절차에 따르면, 방문지의 교구장이 교황의 도착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즉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평양교구장 서리인 정진석 대주교가 평양의 순안공항에 가서 교황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 대주교가 교황의 평양방문에 맞추어 한 번 갔다가 마는 것이어서는 사실 교황 방북의 의미 자체가 없고, 북한측이 “평양교구의 최소한의 정상적 작동”을 허용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평양교구에 정진석 평양교구장 서리의 지시를 받는 사제가 상주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위 교황청 일각의 입장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상태에서 한국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인 당시 서울대교구의 강우일 보좌주교(현 제주교구장)가 “북한에는 교회가 없다.” “‘북한교회’란 말 자체를 쓸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 이해된다.

 

 

“북한에는 교회가 없다”

 

당시 강우일 주교는 “교회는 사제와 평신도로 구성되는데, 북한에는 사제가 없다. 그러니 북한에는 ‘교회’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북한에 가톨릭 사제의 상주를 촉구하는 압박이기도 했다.

 

1998년 5월에는 당시 서울대교구의 최창무 보좌주교(현 광주대교구장)가 평양교구장 서리인 김수환 추기경을 대신하여 평양에 “사목방문”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현지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나아가 “사제가 없으니 교회도 없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세계에 자랑하는 바,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이 시작했다.”는 것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교회 모델과는 크게 다르고 또 문제도 있지만, 현실로 보나 신학적으로 보나 북한에 교회가 있기는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조선천주교인협회에 따르면 북한에는 가톨릭 신자가 약 3000명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숫자를 확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막상 평양의 장충성당에 가서 북한 사람들과 같이 미사를 드려도, 공식 관계자들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신자들과는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기 어렵다고 한다. 곧 이들의 신자 여부를 두고 일부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데 대해 직접 대화를 통해 확인하고 반박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지난 몇 년간 남북간 교류에 열정을 쏟았던 전 주교회의 사무총장 김종수 신부는 아시아 가톨릭 뉴스와 인터뷰에서 (북한정부에 의해) “훈련된 신자”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보아야 한다고 적극적인 해석을 했다. 이것은 보수적인 개신교회 등에서 “가짜 신자다.”라고 주장하는 것에 비해서는 훨씬 긍정적인 태도이지만, 사실 북한측의 태도는 너무 폐쇄적이다.

 

 

“북한에 신자는 있다”

 

“북한에 신자가 있다.”는 가장 확실한 사례는 차성득 전 장충성당 회장에 관한 증언이다. 1989년 12월 24일 성탄 전야에 홍콩의 정생래 신부가 방문했을 때는 당시 북한의 천주교인협회측은 개성, 원산, 남포 등에 지방위원회가 있고, 평양에서는 신자가 200-300명, 전국적으로는 1000-1200명이 있다고 말했다. 1987년 부활절에는 신자 몇 명이 바티칸에 가서 교황을 알현하고, 미사에도 참석했다. 장충성당 회장, 부회장과 그 밖의 한 사람 등 세 명이 결혼도 않고 사제가 되고 싶어한다(「Yi China」지, 1990년 2월호). 이 밖에도 1989년 임수경 씨와 문규현 신부의 방북 사건 뒤로 이에 감명받아 천주교 신자가 됐다는 이도 확인된다.

 

한국 종교인 평화회의 사무총장 변진흥 씨에 따르면 북한은 차성득 회장을 사제로 만들려고 베이징에 보냈으나, 중국교회측에서 관할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지금 북한은 이런 적극적 정책은 포기한 듯하다. 그렇다면 “사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 정부가 교황청이 주교를 임명하는 것을 “내정간섭”으로 받아들여 강력히 거부하는 것에 비추어보자면, 중국보다 “자주성”에 훨씬 민감한 북한이 “남한인을 비롯한 일체의 외부 임명 사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무래도 남북관계에 획기적 진전이 있기 전까지는 이 문제가 풀리기 어렵다.

 

1987년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에만 해도 북한은 종교정책을 바꾸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 자세였고, 신자 발굴 사업도 적극이었던 듯하다. 위 「Yi China」지에 따르면, 당시 조선천주교인협회 장재철 중앙위원장(1998년에 장재언으로 개명)은 “우리 사회주의 국가 생활에서 교회는 특수한 의의가 있다. 우리 교회는 정부와 어떠한 관계도 없으며, 우리들은 독립적이다.”라고 밝혔다.

 

가톨릭을 비롯한 북한의 종교단체들이 통일전선부 산하에 있다는 점을 들어 독립성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외형상 비슷한 관계에 있는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는 교회가 일정한 자립성을 확보하고 있고, 그 정도는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너무 괘념할 필요는 없겠다.

 

[경향잡지, 2003년 3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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