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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속의 이라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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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31

[세계 교회는 지금] 이슬람 속의 이라크 교회

 

 

가톨릭 교회의 반전평화 노력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교황청의 입장이 처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9월에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열린 종교간 대화 모임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전 교황청 정의평화위원장인 로제 에체가라이 추기경은 “전쟁으로는 아무 문제도 풀 수 없기 때문에 전쟁은 고려조차 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과 미국의 부시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개인특사를 보내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설득하려 했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가톨릭 주교회의와 지도자들은 미국이 주장하는 대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이를 침략전쟁이라 규탄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은 실패했다. 미국이 3월 20일에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영국이 연합국으로 참전했으며, 교황의 조국 폴란드가 수백 명을 파견했고, 한국이 파병을 결의했다. 스페인은 파병하겠다고 하다가 국민의 반전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철회했다. 그러나 전쟁 직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 대표와 시리아 외교장관은 교황의 평화 노력을 격찬했다.

 

이번 전쟁을 반대하는 일에 아시아에 있는 이슬람 국가의 가톨릭 교회들은 더욱 적극적이었다. 개신교 근본주의자인 부시 대통령이 이 전쟁을 시작하며 십자군을 입에 올리는 등 그리스도교적 성전의 이미지를 내걸면서, 이슬람인들 사이에 이 전쟁은 그리스도교 세계가 이슬람 세계를 침략하는 전쟁으로 강하게 머리에 박혔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 교회들은 “우리는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전쟁은 종교전쟁이 아니다.”고 말하며 미국과 교회를 구분시키려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치솟아 오르는 반미감정과 이슬람 근본주의 속에서 그리스도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이라크에도 가톨릭 교회가 있다. 이라크 주교회의는 작년에 이라크 밖의 모든 가톨릭 교회를 향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연대를 호소했다. 교황청을 비롯한 세계 각국 교회의 반전평화 노력은 이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 덕분인지 이번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이라크인들이 그리스도인을 죽였다거나 박해했다거나 하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라크인들이 이번에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보여준 인내심은 대단했다. 그리스도 교회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파키스탄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곳에서 벌어졌다.

 

 

“우리는 신자들과 함께 있겠다”

 

이라크를 포함한 서아시아 지방에서 가톨릭 교회를 구성하는 가장 큰 집단은 아랍인도 유럽인도 아닌 바로 150만 명에 이르는 필리핀인이다. 사우디에만 100만 명이 있으며, 쿠웨이트에는 6만 3000명이 있다. 경제제재에 시달리던 이라크에는 필리핀인 이주노동자가 없다. 이들 상당수는 가정부로 일하는 여성들이다. 이들이 고향 가족에게 보내는 달러는 필리핀 경제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전세계적으로 해외에 나간 필리핀인은 740만 명이나 되는데, 이는 전체인구의 10분의 1이다.

 

그런데 바로 이 필리핀이 올 2월 12일에 이라크 외교관들을 추방했다. 추방 이유는 “필리핀 남부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과 연계됐다.”는 것이었다. 분명 전쟁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이라크에 대한 국제적 압력의 일부였다. 필리핀은 9·11 테러 사건 이후 남부 민다나오 섬의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을 토벌하려고 몇 년 전에 철수했던 미군 특수부대를 다시 받아들였다. 때문에 이라크 전쟁이 임박하면서,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서는 박해를 우려한 필리핀인 노동자들이 50만 명이나 대거 귀국하는 혼란이 일어났다.

 

현재 이라크에는 교황청대사관이 있다. 이라크 주재 교황대사인 페르난도 필로니 대주교는 요르단 주재 교황대사도 겸하고 있는데, 그는 1992년부터 홍콩에서 근무하며 중국과 교황청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던 중국교회 전문가로서, 2001년 1월에 대주교로 임명되며 이라크 주재 교황대사가 된 사람이다.

 

이번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일하던 국제기구나 외국회사 직원들이 일제히 철수하고 외교관들까지 짐을 싸서 나갈 때, 교황청대사관은 “우리는 신자들과 함께 있겠다.”면서 이것이 교회전통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청대사관 근처에 있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도 폭격 위험을 무릅쓰고 남아있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 인도인 등 외국인으로서, 장애아들을 돌보고 있었으며 주변 이슬람인 이라크인들도 이들을 돕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공통의 신앙유산을 지닌 곳

 

사실 이라크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신앙이 시작된 성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모세가 올랐던 이집트의 시나이 산과 바오로 사도가 전교했던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그리고 아브라함이 태어난 이라크의 우르 등을 두고 “하느님이 우리들 하느님 백성 사이에 장막을 치기 위해 고른 곳”이라고 표현했다. 또 이라크 남부의 습지대는 아담과 하와가 살던 낙원인 에덴의 동산이 있던 곳으로 추측되는 곳이다.

 

한편 필리핀의 이슬람 전문가인 엘리제오 메르카도 신부(오블라티회)는 앞서 필리핀이 이라크 외교관들을 추방한 것을 두고 “사람들이 미국이 벌이는 대테러 전쟁과 이라크 무장해제를 혼동하는 까닭”을 보여준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필리핀 주재 이라크 외교관들은 “절대 (필리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과 연계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고 말하면서 “이라크는 (빈 라덴 같은) 종교 근본주의를 배척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사실이다. 후세인의 정치기반인 바트당(바트 아랍 사회주의당)은 아랍 민족주의와 근대화, 정교분리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빈 라덴 자신이 후세인을 두고 “배교자”라고 혹독하게 비난했다. 그런 이라크가 빈 라덴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미국의 선전일 뿐이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부터가 후세인과 빈 라덴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보고를 발표한 바 있었다.

 

끝으로 이슬람에 대한 오해 하나. 이슬람 반미혁명을 일으킨 이란은 시아파다. 그러니 시아파는 강경 근본주의자들이고 수니파는 온건 정교분리주의자다? 아니다. 빈 라덴은 수니파 근본주의자다. 곧 수니파냐 시아파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이냐 그리스도교냐가 아니라, 종교 근본주의가 문제란 뜻이다. 그럼 후세인은? 그냥 독재자였다.

 

[경향잡지, 2003년 5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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