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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위대한 인도인의 이름 마더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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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37

[세계 교회는 지금] 위대한 인도인의 이름 마더 데레사

 

 

마더 데레사는 인도인?

 

지난 10월 19일에 데레사 수녀, 그러니까 마더 데레사가 바티칸에서 복자가 되는 시복식이 있었다. 그녀의 주된 활동무대는 인도였으니 당연히 인도에서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죽을 당시 그녀의 국적도 인도였다. 그럼 그녀는 인도인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선 그녀가 태어난 스코페는 지금은 독립국가인 마케도니아의 수도가 되어 있다. 그러니 마케도니아에서는 당연히 그녀가 마케도니아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녀가 태어난 1910년에 스코페는 터키 영토였다. 적어도 태어날 당시 국적은 터키였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알바니아인이었고, 알바니아는 데레사 수녀가 태어난 지 2년 뒤인 1912년에 터키에서 독립하였다. 하지만 스코페는 여전히 알바니아 땅은 아니었고 1차대전 뒤에는 세르비아를 모태로 새로 탄생한 유고슬라비아 왕국 영토였다. 데레사 수녀는 인도가 독립한 바로 뒤인 1947년에 국적을 인도로 바꿨다.

 

 

토착화, 봉사자, 분쟁의 중재자

 

과연 발칸 반도가 “세계의 화약고”였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녀가 197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아 일약 평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시복식에서도 이런 문제는 말끔히 해결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복식 미사에서는 여러 나라 말이 쓰였는데, 그 가운데 그녀의 주 활동무대인 콜카타(캘커타)에서 쓰이는 벵골어가 있던 것은 당연하지만, 알바니아어와 마케도니아어도 나란히 함께 등장하였다.

 

데레사 수녀의 태어날 당시 이름은 아그네스 곤자 복사쥬(Agnes Gonxha Boxhajiu)였으나, 선교의 수호자인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를 따라 이름을 바꾸었다. 데레사 수녀는 생전에 자신의 이름에 대해 “아빌라의 대데레사가 아니라 소데레사”라고 설명하곤 했다.

 

흔히 마더 데레사라고 부르는데, 이때 마더(Mother)란 전통적으로 대수녀원장에게 붙여지는 존칭이다. 남성 성직자를 신부(Father)라 부르는 것에 대응한다. 하지만 이제 이 존칭은 많은 이들에게 그녀 이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녀가 바꾼 것은 이름이나 국적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1950년에 고급 교육사업을 주로 하던 로레토 수녀회를 나와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만들면서, 전통적인 서구식 수녀 복장과는 사뭇 다르게 인도의 여성들이 입는 사리를 수도복으로 택했다. 새 수도복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뒤인 지금 생각해 보아도 매우 과감했다. 더구나 가난한 하층민들이 입는 무명 사리로서, 흰 천에 그저 파란 줄무늬가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생전에 토착화를 주장하는 신학자는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더 잘 토착화를 실천한 셈이다.

 

그녀가 활동을 시작한 콜카타는 인도의 상업적 수도라 할 정도로 번화하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듯 콜카타는 빈부격차가 격심하다. 한편에선 이 도시를 “인도의 보석”이라고 하지만 그 보석의 길거리에는 시체가 있어도 치우지 않는다. 그뿐인가, 인도가 1947년에 독립하기 직전에는 힌두인과 이슬람인들 사이에 극심한 유혈 폭동이 일어났다. 비폭력의 사도 마하트마 간디가 늙은 몸을 이끌고 이 폭동의 한가운데 들어와 폭력 중단과 상호 용서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지방자치가 발달한 인도에서 콜카타는 오랫동안 공산주의 정당이 지방정권을 장악했다. 데레사 수녀가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만들어 “가난한 자 가운데 가장 가난한 자”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했던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보자. 가난과 증오, 계급격차와 종교분쟁의 한가운데 그녀는 서 있었다.

 

 

분쟁의 대상이 된 이름 ‘마더 데레사’

 

그녀의 국적 뿐 아니라 이름도 그녀의 평소 소원인 평화, 또는 사랑과는 달리 이따금 분쟁의 대상이 되곤 한다.

 

사랑의 선교회는 지난 7월 데레사 수녀의 이름과 수녀회 이름, 로고 등에 대해 “법률적 보호조치”를 취하려 한다고 밝혔다.

 

수녀회에 따르면, 데레사 수녀는 생전에 “자기의 이름을 자신의 허락 없이 다른 개인이나 단체가 사용할 수 없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여러 차례 밝혔으며, 자기가 죽은 뒤에는 승계자인 사랑의 선교회 총장이 이 권한을 갖는다고 밝힌 바 있다.”고 한다. 한 수녀회 소식통은 7월 23일 UCAN 통신에 수녀회가 이미 로고에 대한 저작권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도에 있는 동방 가톨릭 교회인 시로말라바르 전례교회 대변인 텔레캇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와 여러 성인들의 이름이 오용되지 않게 막는 최선의 방법은 교회의 가르침과 성서에 나와 있다면서, “십계명에는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수녀회가 마더 데레사의 이름에 법적 보호조치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또 교회 안에는 자기네 기관이나 단체에 마더 데레사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하고, 최근에 시로말라바르 교회 수장인 바르키 비타야틸 추기경이 ‘마더 데레사 여성병원’의 문을 연 것을 보기로 들었다.

 

또 가톨릭에 속하지 않은 말란카라 정교회의 수장인 카톨리코스 바셀리오스 마르토마 매튜 2세는 인도 전역에서는 ‘마더 데레사’라는 이름이 “자선이나 봉사와 동의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하면서, “그래서 많은 병원과 학교, 사회단체들이 자기네 이름에 그녀의 이름을 집어넣었지만 아무 잘못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일부에서 데레사 수녀의 이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수녀회가 법적 보호조치를 취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2002년에 경찰은 하이데라바드에서 데레사 수녀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한 협동조합은행이 예금지불 불능상태에 빠진 뒤 운영자 가족을 사기혐의로 기소한 적이 있다.

 

 

가장 존경하는 위대한 인도인 1위에 뽑혀

 

데레사 수녀는 인도에서 “사회복지의 대명사”나 교회의 영광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최근 힌두 민족주의 열풍이 거세지면서 곳곳에서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이 그리스도교 선교사나 시설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데레사 수녀는 인도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뉴델리의 한 영자주간지가 2002년에 독립 55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데레사 수녀는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하랄 네루에 앞서 “위대한 인도인” 1위에 뽑혔다. 그녀는 10명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이다. 국부인 마하트마 간디는 이 여론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경향잡지, 2003년 12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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