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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교회: 루앙프라방으로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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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40

[아시아 아시아] 라오스 교회 : 루앙프라방으로 돌아가는 길

 

 

자신의 교구를 방문할 수 없는 사제

 

루앙프라방은 인도차이나 반도 라오스의 옛 수도이며 지금도 라오스 문화의 중심이다. 이곳에도 교회는 있다. 루앙프라방 교구가 있고, 티토 반총 토파용 몬시뇰(55세)이라는 사제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자신의 교구를 방문할 수 없었다. 그는 수도인 비엔티안에 머물고 있다.

 

라오스는 어떤 나라인가? 중국이나 베트남도 사실상 자본주의화의 물결을 타면서 북한을 두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라오스도 사회주의 체제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에 비해 산업이 거의 발달되지 않은 농업국가이고, 외국 관광객의 여행이 자유로운 편이다. 수도인 비엔티안의 거리는 우리나라 지방 중소도시 수준이라 한다.

 

라오스는 땅은 남한의 두 배나 되지만 연구는 350만 명밖에 안 된다. 1975년에 베트남, 캄보디아와 더불어 공산화되면서 종교활동은 전면 금지되었다. 루앙프라방에는 당시 교회가 하나 있었지만, 그때 파괴되었다.

 

그러나 파테트라오(라오 애국전선)라 부르는 라오스 공산주의 세력은 ‘킬링 필드’로 유명한 이웃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에 비해서는 매우 이성적이었다. 라오스는 과거 이웃 타이와 당시 식민세력이던 프랑스 사이의 영토 다툼의 대상이기도 했고, 현대에는 이웃 베트남과 형제지간이라 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다. 파테트라오는 종교활동을 금하기는 했지만, 죽이거나 하는 박해는 하지 않았다.

 

라오스 전국의 수많은 마을에는 가톨릭 신자 약 3만 5천 명이 흩어져있는데, 이들을 주교 3명과 교구장 서리 1명, 사제 13명이 다 돌보아야 한다. 1991년에 헌법이 개정되어 종교자유가 허용된 뒤 점차 자유로워지고 있으나 정부의 정책변화는 사회주의 국가답게 매우 느리다.

 

때문에 지난 2002년 11월만 해도 비엔티안 대목구의 캄세 비타봉 주교(요한, 오블라티회)는 UCAN 통신과 인터뷰에서 “내가 아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별로 없다. 사목자와 사목 일꾼이 너무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사제들도 늙어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라오스 교회에는 새 소식이란 전혀 없고 신자수의 증가 속도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일반적 교회조직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초 토대마저 없어지고 있다.”고 했다.

 

 

‘출입금지’ 교구의 땅을 매입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상황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5일 라오스 정부는 루앙프라방의 한 부동산 소유주가 반총 몬시뇰에게 땅을 팔 수 있도록 최종 허가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산 토지는 700평 정도로 중앙정부의 매매승인이 나오기까지 3년이나 걸렸다.

 

다음 단계는 정부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허가를 받는 것이다. 그는 올해 중반에는 건축이 시작될 것으로 낙관한다. 1975년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뒤 처음으로 대목구 안에 ‘교회본부’를 둘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이면서도, 그는 정부당국이 “매우 느리게 움직인다.”고 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는 그가 이제 루앙프라방에 돌아가 살 수 있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는 그동안 “출입금지”였던 여러 지방을 자주 방문하는 것이 소망이다. 그는 자신의 교구를 방문하려면 정부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특정 주에서 자신의 방문을 원하지 않으면 그곳에 갈 수도 없다.

 

루앙프라방 대목구는 보에오 주, 루앙남타 주, 루앙프라방 주, 퐁살리 주, 우돔사이 주, 사야부리 주 등을 관할하며 신자수는 약 3,500명이다. 그는 그간 사야부리 주와 루앙프라방 주에서는 방문허가를 받았다. 과거에는 방문허가 요청을 한 다음에 지방 보안당국에 자신의 도착사실을 보고해야 했다. 요즘에는 방문허가 요청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반드시 관계당국을 찾아가서 자신이 그곳에 얼마 동안 있을 것인지 알려야만 한다고 했다.

 

지난 2년 동안 반총 몬시뇰은 신자수가 많은 보케오 주를 방문하려 애썼으나, 주당국은 그가 보케오 주에 오면 “치안상황”이 마비될 것이라고 중앙정부에 보고하곤 했다. 그러면 방문은 허가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정기적으로 중앙정부에 가서 보케오 주 방문허가를 요청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주 당국의 자세가 누그러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보케오 주에 사는 신자들은 그에게 정기적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알려고 있으며, 때때로 자신들이 지은 임시 경당의 사진을 보내곤 한다. 그는 보케오 주 신자들 가운데는 특별마을에 사는 나환자 100여 명도 있다고 했다. 반총 몬시뇰은 라오족이 아니라 소수민족인 흐몽족 출신이다.

 

 

종교자유를 보장하는 새 헌법

 

사야부리 주에는 신자촌이 5개 있는데, 신자는 모두 110가구 정도다. 루앙프라방 주에는 신자촌 2곳에 30가구 정도가 있다. 작년에 그는 사야부리 주를 다섯 번, 루앙프라방 주도 여러 번 방문했다. 방문기간에 그는 대개 고해성사를 주고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주며 미사를 드리고 교리를 가르친다.

 

그러나 사야부리 주에는 교리교사 2명이 있어서 이들이 5개 신자촌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일요일마다 각 마을 신자들은 대개 자신들이 지은 임시 경당에 모인다. 이들은 기도하고 성가를 부르며 주일 독서말씀을 듣는다. 장례식이 있으면 대개 함께 모여 교리교사가 기도를 이끄는 가운데 독자적으로 장례예절을 치른다.

 

1991년에 종교자유를 보장하는 새 헌법이 도입된 뒤로, 교회들이 다시 문을 열고 새 교회도 세우고 있다. 라오스 교회가 다른 나라 교회, 특히 타이 교회와 관계를 재개하는 것도 허용되었다. 타이 동북부 지역의 방언과 라오스어는 매우 비슷해서 대화가 통하기 때문에 서로 교류하고 있다.

 

반총 몬시뇰은 여러 제한조치를 감안하여 자신은 일을 “천천히” 진행시켜야 하며 법을 따라야 한다고 본다. “재교육 수용소에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는 1977년 4월부터 1986년 11월까지 시앙쾅에서, 그리고 그 뒤 1998년에는 보케오 주 주도인 화이사이에서 5개월간 구금된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장애들을 하느님의 뜻으로 본다. 평신도들이 사제나 수녀 없이도 임시 경당을 짓고 정상적으로 전례와 기도모임을 하는 가운데 교회는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하느님의 성령”이 이들 다양한 신자 집단 사이에서 일하고 계시며,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힘으로 교회 공동체를 건설해 왔다고 결론지었다.

 

[경향잡지, 2004년 3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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