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선교ㅣ복음화

기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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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mugeoul] 쪽지 캡슐

2001-02-14 ㅣ No.17

그저 신도수를 많게 하는 것이 전교라면,

이른바 ’3박자 축복’으로 그토록 많은 신도를 모은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참으로 전교에의 비법을 찾은 자이다.

 

서울이란 도시,

오직 하나 잘 살려고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한 이 대도시의 그들은

보다 잘사는 길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얼씨구나 찾아다닌다.

거기에 신앙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그들에겐 신앙도 어쩌면 삶의 한 수단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기실 기복주의는 흔히 생각하듯

농촌적 샤마니즘보단

도시의 맘몬적 상황의 산물로서 도시인의 생활철학인 것이다.

 

예를 들어 농촌적 기복주의는

"무엇을 더 달라"하기 보단

"무엇으로부터 구해 달라"는 것이니,

앞의 것이 탐욕이라면

뒤의 것은 한(恨) 맺힌 약자의 순박한 호소이다.

곧 최소한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을 그들은 복(福)이라

그것의 결여를 한(恨)이라 칭하고서

그것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모자라는 만큼만 채워 달라고 비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기복주의하고는 분명 다른 것이다.

그것은 정상상태로의 복귀(환원)를 꾀할 뿐이니,

그것만 이뤄지면 바램도 사라진다.

예를 들어

바다에 나간 남편의 무사함을 비는 아낙네의 기도를

어찌 탐욕이라 할 수 있을까.

숱한 질병으로나

전쟁으로나

불의의 사고로나

굶어 죽거나

얼어죽거나

심지어는 호랑이에 물려 죽거나 등등

자칫하면 쉬 목숨을 잃는 참으로 어려운 그 시대에

부디 죽지 않고 살아만 있기를

애타게 기원하는 것이 어찌 탐욕인가.

 

그러나 현대의 도시적 기복주의는 그 욕망이

한정치 못하니 우선 문제다.

여기엔 분명 하느님을 신뢰치 못하고,

오히려 그분 외의 것에 매달리면서 그 때문에 그분을 따르는

주객전도의 신앙이 되니,

그것은 마치

상대편의 재산이 탐이나 결혼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간음행위이다.

만일 하느님이 3박자의 복을 주지 않는다면

그분께 대한 사랑을 그만 두어야 할까.

참으로 거기엔

불신(不信)의 반(反)신앙적인 요소가 깃들이어 있으니

맘몬적일 따름이다.

그 욕망에 한도가 없으니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모자라 입만 헤벌리는

거기에 하느님에 대한 참된 사랑 곧 천국은 없다.

그것이 더욱이 영적인 것이라면

그래도 어느 한도에선 새롭게 태어나는 깨달음이 함께 하여

하느님의 사랑 곧 천국을 품게도 되겠지만,

육적인 욕망은

끝내는 그를 우상의 노예로 만들고 말며 파멸로 이끌고 만다.

 

진정 작금에 한국교회에 편만한 기복주의는

다름 아닌 이러한 배금주의에서 비롯되었으니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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