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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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파리외방전교회 350주년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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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5 ㅣ No.91

파리외방전교회 설립 350주년 기념 기고


파리외방전교회 350주년에 감사하며

 

 

350년전, 우리나라 조선조 중엽을 지난 1658년에, 교종 알렉산데르 7세는 머나먼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한 위대한 전교사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뜻을 받들어 출범한 파리외방전교회는 그동안 무려 4,300명에 이르는 주교 · 사제 선교사를 동방에 파견했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임지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고국을 떠나, 쟁기를 잡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는 충실한 농부처럼, 오로지 참생명을 주는 말씀의 씨앗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1831년에는, 쇄국과 군란의 역경을 무릅쓰고, 소 바르톨로메오 주교님을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모시게 되었으나, 100년 가까이 이어진 박해로 파리외방전교회는 거룩한 주교와 사제 순교자 10분을 비롯하여 허다한 순교자를 내면서 이 나라 교회의 기틀을 세웠고, 근래 한국 전란(1950-1953년)의 참극 가운데서 또다시 많은 신앙의 증인이 치명하셨습니다.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씀대로 이땅에서 과연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더없이 고귀한 씨앗이 되었을 뿐 아니라, “순교자들의 꽃은 꽃필지어다.”(Florete flores martyrum)라고 한 민(Mutel) 대주교님의 표어대로, 오늘날 16개 교구(군종교구 포함)에 그 반수가 어른으로 입교한 신문교우인 487만여 명(2007년 말 현재)의 신자를 헤아리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 이례적 역사는 비록 밖으로부터의 전교에 앞서 안으로부터의 자발적 진리탐구에서 비롯되었고 또 이렇듯 훌륭한 순교선열의 희생과 평신도들의 모범에 크게 힘입었으나, 그 성장에서는 다시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움과 은혜를 입어 오늘날에 이른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특히, 파리외방전교회의 훌륭한 목자들은 박해 중에도 방인 사제 양성에 온 힘을 기울여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처럼 뛰어난 사제들과 성 정하상 바오로 같은 훌륭한 평신도들도 여럿 키워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숨어 활동하면서도 초기부터 이어온 평신도 소공동체의 귀한 유산을 이어받아, 도처에 교우들 하나하나를 아끼고 책임지는 참다운 ‘공소회장’들을 철저히 양성하여 ‘교우촌’의 신앙생활을 튼실히 키워나갔습니다. 그 결과 극심한 박해 중에서도 교회는 놀랍게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성소 양성 노력의 열매로 한국 교회가 오늘(2007년 말) 전국에 고맙게도 3,373명의 교구사제와 7개 대신학교에 1,403명의 신학생 외에도 46개 남자 수도회원 1,539명과 106개 여자 수도회원 9,861명을 헤아리게 된 것은 더없이 고마운 일입니다. 이러한 성장의 수효를 외국에서도 부러운 듯 지켜보면서 그 까닭과 내용에 대해 의아해하는 것도 알 만합니다. 사제와 수도성소의 현황도 이례적이거니와 특히 지난 한 세대에 걸친 일반 신자들의 교세 증가도 가히 놀랍다 하겠습니다. 뿐더러 많은 신자들의 적극적 참여와 헌신적 봉사정신 또한 한국 교회의 특징적 미덕이며 힘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한국 교회가 특히 동아시아에 큰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세계 교회의 기대 또한 분에 넘게 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복합적인 원인에 의한 성소 감소 추세가 우려를 낳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와 아울러 교우들 태반이 다소 미흡한 입교 준비 끝에 영세한데 더하여 극심한 인구이동을 비롯 기존 사회질서와 가치체계의 와해 등 격변하는 시대상의 영향도 점차 커져 소위 ‘냉담률’이 30%를 넘는 것도 염려스러운 실정입니다. 이러한 때를 맞아, 아니 오히려 도시화 문명화 개인화의 난국에 휘말릴수록 우리 나름의 소중한 ‘공소’ 정신을 새롭혀 건실한 신앙 공동체 활성화에 더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 절실한 노력에는 특히 책임 있는 평신도들의 참 ‘회장’다운 능동적 역할 증대가 결정적일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근년에 한국 교회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이제는 자신들도 나라 밖으로 복음을 전할 사명을 깨닫기 시작하여, 해외 교포뿐 아니라 갈수록 더 현지 교회에 봉사할 선교사로 현재 81개국에 진출하고 있는 현상은, 아직은 미흡하나, 우리교회에 안으로도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은혜로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한편 한반도의 지정학적 비극은 그대로 이어져, 마치 인간 세계의 불화와 분열을 한 몸에 안은 듯, 이제 60년이나 남북으로 분단된 이땅 북녘의 ‘침묵의 교회’는 단 한 명의 목자도 없고 어떠한 종교 자유도 없이, 두 교구와 자치수도원구 한 곳이 그대로 자유의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민족적, 교회적 숙제에 임하는 길은, 우선 곤경에 처한 동포와 순수한마음으로 가진 바를 묵묵히 나누는 일을 비롯하여, 누구보다도 교회의 몫인 진정한 화해와 ‘마음의 통일’을 위해 꾸준히 헌신하는 데 있습니다.

 

이렇듯 오늘 우리에게 안팎으로 주어진 도전과 과제는 주님의 자비와 우리 주보이신 성모님의 도우심 없이 우리만의 힘으로는 풀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의 구조적 생활 압박을 못 이기는 가정의 와해, 갈수록 팽배하고 있는 물질주의와 생명 경시, 그에 따른 가치붕괴와 상대주의에 물든 생활상 등은 모두 새로운 각성과 신앙의 내실화 그리고 청빈한 삶과 사랑의 실천을 통한 부단한 쇄신 노력 없이는 낙관할 수 없는 오늘의 절박한 숙제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에 파리외방전교회 350주년의 뜻 깊은 계기를 맞아 그 값진 역사의 뜻과 정신을 한국 교회로서도 새로이 마음에 새기고 깊이 감사하면서 우리 또한 주님의 부르심에 성실히 응답해야겠습니다.

 

그런 의미로도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하신 주님 말씀과 삶을 따라 이제 우리나라 교회도 ‘받는 교회’에서 ‘내주는 교회’로 새로 나야 할 때를 맞았습니다. 이런 각성과 의지와 노력만이 참되이 파리외방전교회의 뜻 깊은 350주년을 경하하고 보은하는 길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 장익 요한 주교 - 춘천교구장,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경향잡지 발행인.

 

[경향잡지, 2008년 6월호, 장익 요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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