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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바티칸의 주교 임명을 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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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4

[세계 교회는 지금] 중국은 왜 바티칸의 주교 임명을 반대하는가?

 

 

중국에는 아직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없다. 특히 가톨릭 교회가 제약을 많이 받는데, 교황이 주교를 임명하지 못하게 정부가 막고 있다. 이는 단순히 중국이 사회주의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중국과 가톨릭 교회 사이에 여러 악연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교회는 주교 임명을 종교문제라고 보는데 중국은 정치문제로 보는 것이 문제이다.

 

중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다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0년이다. 극좌적인 문화혁명이 끝나고 개방정책을 이끈 등소평이 1978년에 집권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이때부터 중국정부는 국유화했던 교회 재산과 건물을 조금씩 교회에 되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중국교회는 지난 1958년부터 지하교회와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교회(또는 개방교회)로 나뉘어 있었다. 지하교회는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한편에서는 공식교회가 있어 중국 천주교 애국회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이른바 “자선자성”의 원칙 아래 주교를 스스로 뽑고 서품한다. 이들을 지하교회측에서는 “애국교회”라고도 하는데, 그들이 보편교회와 분리된 별도의 교단을 꾸린 것은 아니다. 그들도 교황을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한다. 실상은 공식 교회의 주교 가운데에도 교황에게 비밀히 충성을 맹세하고 승인을 받은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중국정부는 왜 유달리 바티칸의 주교 임명에 대해 강한 반감을 보이는 것일까? 우선 중국은 교황청이 국제법상 국가이고 교황은 그 국가의 수장이므로 교황이 중국 안의 주교를 임명하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 곧 내정간섭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국가로서의 교황청의 지위에 대한 비판은 서구 사회의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

 

원래 바티칸은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이 대륙 중국의 정통성을 이어받기 전에 이미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 정권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바티칸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려고 만든 만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1934년).

 

이어 1937년에는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이 문명을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를 중국이 양해할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의 위험이 있는 한 무조건 일본을 지원해야 한다.” “일본 군당국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일본과의 협력관계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밝힌다.”는 내용의 지령을 극동의 전교회에 알렸다고 한다. “중국은 땅이 넓으므로 일본의 세력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설명한다.”는 이상한 조언도 있다(「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일본 가톨릭 중앙협의회 복음선교연구실 엮음).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일본이 중국에 군대를 보낸 것은 침략이 아니라 ‘중국과 함께 소련이라는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한 것(문명옹호)’이라는 일본의 억지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나 다름없다. 이어 중국도 참전했던 한국전쟁에 즈음해서도 교황청은 노골적으로 ‘반공’을 앞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의 친일정책, 반공정책 때문에 중국에 지하교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중국은 바티칸이 여전히 반중국정책을 펴고 있으며, 교황이 주교를 직접 임명하게 되면 그 힘이 더 커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현재 중국의 최우선 국가 과제는 경제발전말고는 바로 타이완을 흡수하여 완전한 국가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바티칸은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 가운데서도 ‘이름있는’ 단 하나뿐인 나라이며, 유럽에서는 유일한 수교국이다. 바티칸은 중국의 통일에 가장 큰 방해자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물론 바티칸도 사정이 있다. 바티칸이 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명분은 그 권한을 이용해 세계 각지의 신자들과 교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바티칸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자발적으로 기존 관계를 끊지 않는다.’ 현지의 교회와 신자가 피해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이완이 먼저 단교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바티칸은 타이완과 단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 어려운 선택이기는 하다. 거꾸로 타이완에게는 바티칸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타이완의 교회 지도자들조차도 이미 신자들에게 심리적 ‘준비’를 요청해 왔다. 거대 인구를 가진 중국 땅에서의 사목적 필요를 고려할 때 타이완 교회가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중국은 바티칸이 오래 전부터 중국 영토를 ‘분열시키려 했다.’는 역사적 혐의도 두고 있다.

 

중국에게는 과거 일본이 세운 허수아비 국가인 만주국을 바티칸이 승인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만주국은 지금의 국제연합(UN)과 같은 국제연맹에 의해서도 국제적 인정을 거부당한 상태였고 만주국을 국가로 승인한 나라로는 일본과 히틀러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같은 몇 나라, 그리고 바티칸뿐이었다. 지금 타이완을 인정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면 만주국 성립 축하연에 붉은 모자를 쓴 가톨릭 주교들이 나온다.)

 

이에 대해 바티칸 측에서는 교황청이 만주국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당시 일본에는 정식 교황사절이 파견되어 있었지만 만주국에 대해서는 그러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34년 당시 교황청은 길림과 신경 대목구 교구장인 어거스틴 가스페 주교를 ‘만주제국 내의 전 가톨릭 주교의 대표자’로 임명한 바 있다. 이를 ‘로마 교황청과 만주국이 국교 수립한 것으로 본다.’고 일본교회측에서는 말한다(위의 책, 제15장, 로마 교황청 ‘만주국’을 승인). 그러므로 바티칸 측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굳이 부인하는 것은 의심을 더욱 굳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상황도 바뀌는 것일까?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바티칸과 중국 사이에 수교 분위기가 다시 무르익고 있다.

 

타이완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중국으로서는 지하교회 문제를 조그만 국내문제로 치고 양보하고서라도 바티칸과 타이완 사이의 외교관계를 끊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통일을 이룬 위인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어하는 중국의 최고 지도자 장쩌민의 결단이었다고 알려진다.

 

[경향잡지, 2001년 1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연합통신(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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