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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독일 교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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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10

[세계 교회는 지금] 독일 교회 풍경

 

 

독일의 뷔르츠부르크는 비교적 종교색이 강한 도시다. 개신교가 매우 적고 전통적인 가톨릭 지역으로 중세에는 세속 영주가 아니라 주교가 이 도시를 다스렸다. 주교가 성속의 최고권을 한 몸에 지녔던 셈이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로서 세계 최대의 천정 프레스코화가 있는, 이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은 과거 이 도시를 다스리던 주교의 사제관이었다(독일 지폐 50마르크짜리 뒷면에 이 건물이 서있다). 현재도 인구가 30만 명이 채 안되는 이 교구에 성당은 50개가 넘는다. 특히 시내 중심가의 중요한 지점들은 대개 성당이 차지하고 있다.

 

가톨릭계 조직에 대한 지원도 상당하다. 이를테면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가톨릭 학생회는 큰 부엌과 300석 정도의 강당이 딸린 2층 건물을 모두 쓰는데, 상근 직원으로 담당 신부 1명, 유급 비서 2명(행정비서, 재정비서), 유급 간사 5명, 그리고 국가에서 보조받는 사회봉사자(우리 식으로 하면, 공익근무 요원)가 3명이나 된다. 이 유급 직원들은 여기서 받는 봉급으로 생계를 꾸려가는데, 운영비까지 모두 교구청에서 지원된다. 이들이 하는 일은 가톨릭 학생들의 크고 작은 활동들을 돕는 것이다. 가톨릭 신학과도 학생이 400명이 넘고, 정교수만 14명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과는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데, 과거에 이곳에서 공부하신 신부님 등이 좋은 선례를 남겨주셔서 한국 학생들에 대한 인상도 좋다.

 

아직도 신자들은 교회를 찾는다. 주일미사는 비교적 한산하지만, 지난 성탄 자정미사 때 주교좌 성당은 임시 의자를 100개 넘게 설치하고도 자리가 모자라서, 많은 신자가 미사 내내 서있어야 했다. 물론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평균 연령은 좀 높다.

 

지난 사순절에 주교좌 성당 성가대는 성당에서 옛 그레고리안 성가를 주제로 종교음악회를 열었다. 가장 비싼 자리 입장료가 2만 원 정도 하는 유료 음악회였지만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성체 성혈 대축일에는 시내의 교통을 통제하고 성체 거동 행렬이 이어진다.

 

주일미사에는 어린 소녀, 소년들이 복사를 서는데, 우리 동네의 작은 성당에도 주일마다 다른 어린이들이 복사를 하는 것을 보면, 부모들이 교회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시외의 농촌지역 성당은 미사 참석률이 훨씬 높고 신자들간의 친교도 퍽 돈독하다고 한다. 이 근방에는 피정을 위한 공간도 많은데, 해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것을 보면 참석자들도 적잖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우리 식으로 따져 초등학교 3학년 나이에 첫영성체를, 6학년에 견진성사를 한다. 첫영성체나 견진성사는 성당에서 준비하는 게 아니라 초등학교의 종교 과목 교사가 그 준비를 맡는다. 종교 과목 교사는 대학에서 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종교시간에 다양한 방법으로 교리도 배우고, 마음의 준비도 하게 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어떤 유학생 부부는 자녀에게 견진성사를 준비시키려고 학부형 회의에 무려 일곱 번이나 참석해야 했는데, 그 회의에 참석한 독일 학부형들의 진지한 태도에 좀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사석에서 “한국에서라면 성당에서 알아서 끝낼 일을… 뭐 그리 준비할 것도 많고 시키는 것도 많은지….” 하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어떤 학부형은 직접 견진 교리를 가르치기도 한다고 한다.

 

첫영성체나 견진성사를 앞둔 어린이의 부모들이 모인 학부형 회의를 ‘부모들의 밤’이라고 하는데, 대개 6개월 정도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렇게 부모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반년 정도의 준비를 거쳐 첫영성체나 견진성사가 이루어진다. 물론 종교의 자유가 철저한 독일에서 모든 학생들이 제때에 첫영성체나 견진성사를 받지는 않는다. 남들보다 2-3년 늦게 하거나, 세례만 받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에게 한 독일인은 “가톨릭 집안에선 대학 가기 전에 (견진까지) 거의 다 한다.”고 했다.

 

사석에서나 공석에서 성직자나 수도자들을 우대해 주는 관행도 일반적이다. 사회적으로 사목자(개신교 포함)는 꽤 신망있는 직업이다. 한국 평신도들처럼 성직자나 수도자를 알뜰살뜰 챙겨주지는 않지만, 사석에서라도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계시면 존중하는 예의를 지킨다. 신부님이나 수도자가 추천이나 보증을 해주는 일은 비교적 쉽게 일이 풀리기도 한다. 어떤 독일인은 필자에게 이른바 ‘가톨릭 인프라’라는 용어를 은밀히 가르쳐주기도 했다. 도로나 항만처럼, 교회는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이런 모습들은 ‘죽어가는 유럽 교회’로 알고 있던 필자의 선입관을 흔들어놓았다. 저조한 미사 참석률, 일반인들의 교회에 대한 무관심 등이 유럽 교회의 전반적인 특징인 줄 알고 있었는데, 제법 따끈한 신앙심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독일의 다른 도시에 있는 학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도시가 좀 유별나게 보수적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필자가 만나는 신자들 가운데 누구도 교회가 점점 축소되는 추세를 부인하지 않았다. 성소자의 부족은 이미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이곳 교구 신학교에는 평균 잡아 1년에 5명 이하의 성소자가 들어온다. 교구의 성당과 기관을 유지하려면, 지금보다 최소 3-4배 이상의 성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성소는 날로 줄어든다. 필자 주위의 젊은 성소자들은, 현재는 신부 1명이 본당 3-4개를 맡으면 되지만, 자신들이 활동할 시기에는 최소 7-8개의 본당을 맡아야 하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신부 혼자 7-8개의 본당을 맡아야 한다면 사목이 제대로 이루어지겠냐는 것이다. 수녀원의 성소 부족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젊은이들의 신앙에 대한 관심은 뚜렷하게 적어지는 추세이다. 한번은 신학과 친구들에게 묵주기도를 독일어로 같이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날 물어본 10명 가운데 2명을 제외하고는 묵주기도를 바치는 법을 전혀 몰랐다. 그 2명은 수도회 성소자들이었는데, 그들도 수련기간에야 처음으로 묵주기도를 배웠다고 했다. 왜 할머니들이 하는 기도를 하려고 하느냐며 되묻는 친구도 있었다. 신학 과목을 들을 정도로 신앙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이 정도라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어떨지 미루어 알 수 있다.

 

묵주기도나 십자가의 길 등은 젊은이들에게 외면되는 추세인데 반해 침묵 피정 등에는 자발적으로 찾는 젊은이들이 적잖다고 한다. 이것이 보편적인 새로운 추세인지, 아니면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유럽적인 특징인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리고 대학 기숙사에서 주일에 교회를 가는 학생을 보기란 힘들다. 이는 주일미사 참석자들의 평균 연령이 좀 높게 느껴졌던 일과도 통한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매주 미사에 참석하는 일이 이미 ‘보통’이 아니란 느낌이다.

 

지방 자치의 전통이 깊은 독일에서는 교회도 각 지역마다 독특한 사정을 안고 있고,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필자가 사는 지역은 독일 남부의 약간 보수적인 지역이다. 젊은층일수록 신앙생활이 일상에서 점차 밀려나고 성소가 턱없이 부족한 ‘유럽적인 대세’는 이곳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아직도 사회에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주원준 토마스 데 아퀴노 - 서강대학교에서 성서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 신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1년 7월호, 주원준 토마스 데 아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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