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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파도를 넘어야 하는 폴란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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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15

[세계 교회는 지금] 파도를 넘어야 하는 폴란드 교회

 

 

함께 신학을 공부하는 폴란드 유학생 보이텍과 마르틴은 착하고 성실한 친구들이다. 프란치스코회 수사이기도 한 보이텍은 조국 이야기를 하면서, 두 번 눈물을 보였는데, 그때마다 필자의 가슴도 뭉클했다.

 

첫번째는 폴란드 역사를 알기 쉽게 요약해 달라고 했을 때였다. 길게 한숨을 쉰 그는, 동으로 러시아, 서로 게르만, 곧 독일과 함께 살아야 했다는 점을 들었다. 두 민족은 영토와 인구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강대국이다. 러시아가 부흥할 때면 러시아의 지배를, 독일이 부흥할 때면 독일의 내정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을 견제해야 하는 프랑스만이 우방이었다. 지난 150년 동안 ‘자주독립국 폴란드’는 없었다.

 

러시아는 전통적인 정교회 국가다. 국경을 맞댄 독일 북부는 지난 수백 년 동안 개신교 지역이었다. 이들과 저항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폴란드 사람들은 가톨릭 신앙을 선택했고, 교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교회는 민족의 생존이자 정체성이 되었다. 폴란드 교회는 자연스레 민족적인 성향이 강한 교회가 되었다. 이런 배경을 알면 왜 그들이 가톨릭 교회에 보내는 신뢰와 사랑이 그리도 깊은지 자연스레 이해된다.

 

이런 폴란드인의 신심은 사회주의 정권 치하에서도 변치 않았다. 과거에 ‘사회주의 블럭’이었던 동유럽 가운데 오직 폴란드 정권만이 주일미사를 마지못해 실질적으로 허용했고, 신학교를 폐쇄하지 못했다. 무신론적인 사회주의 정권이 이런 것을 허용했다는 게 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마르틴은 “폴란드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강한 신심을 지닌 폴란드 민족에서 교황이 선출되자, 모스크바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소련은 폴란드 정권에 압력을 넣어, 교회에 대한 유화정책을 탄압정책으로 돌아서게 했는데, 이는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지배에 저항했던 폴란드인들은 다시 교회를 중심으로 단결했고, 교회는 사회주의 정권에 저항했다.

 

결정적으로 1989년 교황이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교황의 고향이자 문화의 중심지 크라쿠프 교구에는 수많은 사람이 ‘동포 교황님’이 거행하는 미사를 보려고 모여들었다. 사회주의 정권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동포들에게 ‘자유’를 주제로 강론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동포들의 마음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동구 사회주의는 전부 몰락했다. 그 유명한 그다니스크의 자유노조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마음에도 이런 배경이 깔려있었다.

 

‘동포 교황님’의 인도에 따라 일어난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체험하면서, 폴란드인들은 다시금 자신들에게 가톨릭 교회가 얼마나 의미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교회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청년 보이텍이 두번째 눈물을 보인 것은 바로 현 교황에 대해서 말할 때였다. 약소국 출신으로 얼마나 고생하시겠는가, 우리는 왜 그분을 더 도울 힘이 없는가 하는 한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500여 년 동안 교황은 북부 이탈리아인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역사상 최초의 폴란드인으로서 현 교황이 교황청에서 어떤 어려움을 어떻게 겪고 있는지, 폴란드인들은 잘 알고 있다.

 

폴란드는 공중파 방송이 5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가톨릭 교회에서 운영하는 것이고, 각 교구마다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고 한다. 이런 교회와 일반 매체들에서 교황의 동정을 날마다 보도한다. 교황청에서 조그만 메시지나 성명서를 발표하더라도, 폴란드 매체는 꼭 보도한다. 당연히 현 교황에 대한 정보가 넘친다. 그리고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교황을 변호하려고 한다. 이따금 이들은 ‘교황청’과 ‘교황’을 분리해서 인식하는 것 같다. 구약성서의 예언서를 읽을 때, 고난받는 예언자의 모습에서 교황을 떠올리는 이들이다.

 

이런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폴란드는 현재 유럽 교회 가운데서 가장 ‘비유럽적’이다. 유럽 전역을 휩쓰는 ‘성소자 부족사태’가 폴란드에는 없다. 사제와 수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은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다. 몇 년 전, 크라쿠프 교구에서는 신학교가 꽉찼으니, 성소자들은 다른 교구나 수도회를 알아보거나 1-2년 뒤에 입학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서유럽과 달리, 사제는 일상생활에서도 로만칼라를 한다. 사제나 수도자 앞에서는 일반적으로 예의를 잘 지킨다. 성모신심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들고, 평일미사에도 신자들이 많이 나온다. 선거철이 되면 많은 후보들이 가톨릭 신자임을 밝힌다. 가톨릭 교회력에 따라 휴일이 정해지는 것은 당연하고, 사람들은 신자로서 의무와 책임을 잘 지켜나가는 편이다. 낙태는 아직 금기시되고 있으며, 청소년들의 성윤리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훨씬 보수적이다. 교회의 각종 청년단체들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이들의 대화에는 교황의 동정이 등장한다. 사제들이나 교리교사들은 청소년들에게 ‘교황의 고향’으로서 지녀야 할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르친다.

 

하지만 이런 강한 신심은 한편으로 ‘보수적 교회’를 유지하게 한다. 유럽에서 일반화된 여성 평신도의 성체분배는 폴란드에서는 아직 힘들다. 그리고 교회 내부의 ‘극우적 경향’과 ‘광신적 경향’이 문제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하기도 했다. 사적 계시의 문제도 들었다.

 

폴란드 교회는 큰 도전에 맞닥뜨리고 있다. 몇 년 뒤 유럽 연합(EU)의 정식 회원국이 되는 것이다. 이는 서유럽을 향한 전면적 개방을 의미한다. 자본과 인력과 문화가 국경없이 교환될 것이다. 폴란드 교회의 지식인들은 이 도전의 긍정과 부정적인 면을 이렇게 본다.

 

긍정적인 면은, 미래의 폴란드 교회는 풍부한 성소를 바탕으로 러시아 선교와 서유럽 재선교의 선두에 선다는 생각이다. 폴란드는 ‘이성’보다는 ‘가슴’이 앞서는 슬라브인의 정서다. 동유럽 선교에 적격이다. 또한 폴란드 성소자로 서유럽의 부족한 성소를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곧 미래의 유럽 가톨릭은 폴란드를 대단히 필요로 할 것이고, 폴란드 교회의 영향력은 증대하리라는 전망이다.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유럽 연합의 회원국이 되기 위해서 폴란드는 철저하게 개방을 해야 한다. 이는 서유럽의 개인주의와 자본주의를 막을 벽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길거리에는 미국이나 서유럽의 도색잡지가 불티나게 팔리고, 서유럽과 미국의 고도화된 광고는 여과없이 소통된다. 헐리우드 영화, 팝 문화, 성 개방, 동성연애, 마약, 종교에 대한 무관심 등의 단어로 대표되는 서유럽 문화를 폴란드 젊은이들은 동경한다. 폴란드라고 해서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사회주의가 무너졌을 때,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독특한 역할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감동으로 밀려들었을 때, 폴란드인들은 교회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폭발적인 신심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10년 전 사회주의가 무너졌을 때와 현재 폴란드인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고, 보이텍은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주일미사에 ‘빈자리’가 보이고, 평일미사도 참석자가 줄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세월 동안 폴란드 민중과 함께 삶과 죽음을 나누었던 폴란드 교회, 그래서 민족의 사랑을 받는 폴란드 교회, 그들은 이제 이런 파도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이름을 쓸 수 있게 허락해 준 두 친구에게 감사한다. 이제는 친구의 조국이 된, 폴란드의 앞날에 하느님께서 복을 내려주시기를.

 

* 주원준 토마스 데 아퀴노 - 서강대학교에서 성서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1년 12월호, 주원준 토마스 데 아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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