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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소수 종교인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파키스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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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16

[세계 교회는 지금] 소수 종교인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파키스탄 교회

 

 

신성모독이다! 신성모독 행위를 본 자는 이런 외침으로서 자기는 그 신성모독과 관련이 없음을 크게 알리고, 그 모독자를 규탄함으로써 자기가 신의 편에 서있음을 드러낸다. 신성모독을 보고도 못 본 체한 자는 바로 신성모독의 공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성모독죄란 것은 즉각적으로 한 공동체 안에 극렬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중간의 여지나 중재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고 오직 신의 편이냐 아니냐만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이든 이슬람교이든 하느님에게 충실하고자 하는 근본주의가 타종교인과 타인에 대해 매우 공격적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신성모독을 벌주는 독성죄법이 파키스탄에는 있다. 별도의 법은 아니고 형법의 한 구절에 그칠 뿐이지만, 이 법에 해당하면 반드시 사형판결뿐 다른 처벌조항은 없다.

 

물론 지금까지 이 독성죄법으로 사형당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많다. 무죄판결 받아서 석방되면, 대개 그 날로 죽임을 당한다. 예언자 마호메트를 모독한 자를 죽이면 천국에 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재판을 기다리다가 구치소에서 동료 죄수들에게 맞아 죽는 수도 있고, 심지어는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까지 살해되기도 한다.

 

이 까닭에 몇년 전에 두 소년이 무죄판결로 석방되었을 때 인권단체들은 석방판결이 내려진 법원에서부터 곧장 007에 버금가는 비밀작전을 벌인 끝에 이들을 파키스탄 밖으로 빼내어 유럽으로 탈출시켰다. 인권단체들이 이들을 구하려고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지는 이 독성죄의 현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파키스탄에는 인구의 97%가 이슬람인이고, 나머지 3%가 개신교와 가톨릭인이다. 거기다가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세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서 어떤 그리스도인이 감히 마호메트나 코란을 욕하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도 없다. 고발당한 사람들은 많아도 실제 판결로 사형당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 한 증거이다.

 

실제 이 법은 이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개인들 사이의 오래된 원한이나 재산 다툼을 해결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 일단 고발만 하면, 경찰이든 누구든 간에 고발당한 이에게 섣불리 호의를 보이는 것 자체가 같은 죄를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에, 사형판결은 거의 확실하다.

 

우리 나라에서 반공 군사독재가 시퍼렇던 시절에 간첩죄로 몰리면 한 가정이 풍비박산나던 것과 비슷하다.

 

지난 여름에도 몇 가지 독성죄법 재판이 있었다. 8월 27일에는 독성죄로 고발된 그리스도인 페르바이즈 마시에 대한 보석 허가가 거부되었다. (‘마시’는 영어의 메시아에 해당하는 말로 그리스도인의 이름에 많이 쓰인다.)

 

위와 같은 파키스탄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려 50여 명의 이슬람인 이웃들이 그를 편들어 증언해 주었음에도 법원은 그의 보석을 거부했다. 이슬람의 성직자에 해당하는 ‘이맘’(정확히는 성직자가 아니고 종교교사에 가깝다. 탈레반은 학생들이란 뜻이다.) 가운데 단 한 명도 그의 무죄를 증언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파키스탄에서는 이슬람인이 아닌 사람의 법정 증언은 이슬람인 남자 증언의 절반만큼만 효력이 있다.

 

페르바이즈를 고발한 사람은 이슬람인이었는데, 둘 다 사립학교 운영자로서 경쟁관계에 있었다. 페르바이즈는 약 300명이 다니는 학교를 운영했으며, 학생 대부분은 이슬람 신자였다. 고발자는 나중에 페르바이즈의 학교에서 5리쯤 떨어진 곳에서 학교를 시작했는데 학생이 별로 모이지 않았다.

 

이미 1993년에 이 고발자는 페르바이즈가 불법 무기를 갖고 있다고 경찰에 고발한 적이 있는데, 마을 원로들이 이를 부인하는 바람에 경찰에서는 그의 고발을 무시해 버렸다. 이어서 1997년에는 그의 조카가 페르바이즈를 총으로 쏜 일이 있었지만 페르바이즈는 무사했다. 독성죄 고발은 경쟁자를 제거하는 마지막 수단이자 확실한 수단이 된 것이다.

 

페르바이즈는 자기 학교 학생들에게 “예언자 마호메트가 6살짜리 소녀를 강간했다.”고 말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페르바이즈 사건에 앞서 7월 25일에는 가톨릭인인 아유브 마시가 사형판결을 받았다. 이어 8월 17일에는 이슬람인 의사인 셰크 유나스가 사형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독성죄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자, 파키스탄의 인권단체들은 종교를 따질 것 없이 들고일어나서 사형판결을 비난하고 “자주 악용되는 독성죄법”을 정부가 나서서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파키스탄 지도자들도 인정한다. 마무드 가지 종교부 장관은 대부분의 독성죄 사건이 “악의와 개인적 편견”에서 일어난다고 개탄했다.

 

사실 지난 2000년에 무샤라프 대통령 정부는 독성죄법의 문제를 보완하고자 독성죄법 고발 절차를 보완하려 했다. 무샤라프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는데, 핵실험 등으로 나빠진 서구와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현재 독성죄법은 고발되면 무조건 기소하게 되어있는데, 정부는 기소 전에 사전 심문 절차를 새로 두려고 했다. 그러나 강경 이슬람주의자들이 반발하자, 정부는 힘없이 물러서고 말았다.

 

지난 12월 10일, 사단법인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이사장 윤공희 대주교)은 파키스탄의 가톨릭 정의평화위원회가 독성죄법에 맞서 용감히 싸워온 데 대해 정의평화상을 주었다. 그 수상 이유를 설명하며 “특별히 고 존 조셉 주교를 기념하며”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이던 존 조셉 주교는 1998년에 독성죄에 항의하여 독성죄 재판이 벌어지고 있던 한 법원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수십 년 동안 그리스도인을 비롯한 소수종교인의 인권을 위해 싸워왔던 그는 이슬람인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았으며, 지금 파키스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순교자와 같은 존경을 받고 있다.

 

[경향잡지, 2002년 1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연합통신(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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