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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다시 시작하는 러시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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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22

[세계 교회는 지금] 다시 시작하는 러시아 교회

 

 

지난 4월 19일 폴란드 출신인 저지 마주르 주교(이르쿠츠크 교구)가 폴란드에 잠시 갔다가 러시아로 돌아가려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비자를 압수당하고 쫓겨났다. 이르쿠츠크 교구는 러시아의 연해주, 사할린 등 시베리아 동부지방을 관할하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교구이며, 한편으로 우리 한국교회가 자신이 맡아야 할 선교지역으로 내심 생각하는 곳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 2월 11일 교황청은 러시아에 있는 교황 직할 서리구 4개를 정식 교구로 승격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교황청은 이 승격조치가 “가톨릭인에게 사목적 지원을 늘리려는 정상적인 행정절차”이며, “러시아 정교회가 자신의 전통적 관할구역 밖에 사는 신자들을 위해 교구를 비롯해 다른 교회조직을 세우려는 것과 똑같은 사목적 관심”에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틀 뒤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인 알렉시스 2세 총대주교는 2월 20일로 예정되었던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 카스퍼 추기경과의 회담을 취소하였다. 교황청이 4개 직할 서리구를 정식 교구로 승격시킨 것을 가톨릭 교회 내부의 일이 아니라 “러시아 정교회의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본 것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로마 교황청이 사전에 아무런 상의나 통보 없이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을 “명백한 개종활동”으로 보았다. 이보다 겨우 2주 전에 로마에서 열린 세계종교평화회의에 자신의 대리인을 참석시키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기에 교황청의 이런 일방적 행동에 어떤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마주르 주교 추방사건 며칠 뒤 알렉시스 2세 총대주교는 “다만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두 교회 사이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교황을 만나겠다고 밝혔고, 카스퍼 추기경은, 교황청은 “망설임없이” 이 초청을 받아들인다고 반겼다. 그뒤 가톨릭 측은 이탈리아 교회 사절단을 보내는 등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하였고, 지난 7월 9일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러시아 정교회가 교황청에 편지를 보내 가톨릭 교회가 러시아에서 “개종”을 목표로 선교활동을 한다고 비판했다고 밝히면서도 이것이 “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환영”했다.

 

러시아 정교회 외무책임자 키릴 대주교는 카스퍼 추기경과 가톨릭 교회의 타데우츠 콘드루시에비츠 대주교(모스크바 대교구)에게 쓴 이 편지에서 가톨릭 교회가 러시아인들을 개종시키려 한다고 불평했다.

 

키릴 대주교가 개종활동으로 든 사례 가운데는, 저지 마주르 주교 추방사건도 있다. 그는 마주르 주교가 러시아에서 선교활동을 준비하려는 목적으로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선교학을 공부했다고 공격했다. 심지어 키릴 대주교는 수도회 이름에 “선교”라는 단어가 들어간 수도회는 수상하며, 정교회 신자들을 개종할 의도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로마 가톨릭과 러시아 정교회는 서로 대화하려는 선의가 있음에도 아주 깊은 오해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러시아에서 러시아 정교회가 차지하는 역사적 구실과 현재 상황을 떼어놓고 이해하기 어렵다.

 

1917년에 제정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그뒤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 곧 소련이 되었다. 이 소련을 두고서 무신론 국가니 하고 말들 했지만, 실은 소련은 한 번도 무신론 국가인 적이 없었다. 물론 제정 러시아 시절 국교로 대접받던 러시아 정교가 사회주의 혁명 이후 탄압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집권 정치세력은 무신론자들이었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종교인이었다. 같은 시기에 대한민국의 종교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지키려고 반공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종교인 비율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

 

가톨릭 교회조차 1923년에 러시아에 신자 165만 명과 사제 397명이 있었다는 통계를 기억한다. 현재 러시아의 인구 1억 4400만 명 가운데 3분의 2가 러시아 정교회에 속하며, 가톨릭인은 약 60만 명으로 추산된다. 러시아 정교회는 그저 하나의 그리스도교 정파가 아니라 러시아 전통문화 그 자체다.

 

러시아 정교회가 어떤 존재인지는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가 쓴 여러 소설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들은 러시아 정교회의 문화 속에서 자라나 러시아 정교회의 폐단에 절망하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하느님을 찾아갔다. 이들을 “러시아 정교인”이라고 의식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읽는 이는 거의 없다. 그만큼 러시아 정교는 “보편적”인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동방교회 교령에서는 “동방교회에서는 사제직이 유효하게 보존되어 왔다.”고 인정한다. 또한 “갈라진 동방교회의 신자들이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가톨릭 교회와 일치하려 할 때에는 가톨릭 신앙의 단순한 선서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한다. 별도의 세례나 보완의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러시아 정교인이 가톨릭으로 “개종”한다는 말이 성립이나 할 것인가?

 

한편 러시아 정교는 소련이 무너진 뒤 다시 법률상 국교 지위를 공식 회복했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실권을 장악한 뒤 실시한 개혁과 개방정책에 따라 소련 최고의 종교단체로서 러시아 정교회의 역할이 적극 인정되었다. 특히 1988년 4월에는 러시아 선교 1000년제를 앞두고 피멘 총대주교와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만났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게르기 총대주교와 스탈린이 만난 뒤 45년 만이었다. 당시 스탈린은 독일의 대공세 앞에서 러시아인의 민족주의에 의지해 전세를 역전시켰다. 국가조차 사회주의 인터내셔널가에서 “천년의 흥망”이란 제목의 새 노래로 바꿀 정도였다.

 

고르바초프의 뒤를 이은 옐친 대통령은 크렘린궁 맞은편에 구세주 그리스도 교회를 짓는 것을 적극 지원했다. IMF 사태를 맞는 그 경제난 속에서도 7000평 부지 위에 건축비만 5억 달러를 들인 것이다. 1997년 완공된 이 교회는 세계 최대의 정교회 교회다. 정치세력은 정교회 신자들의 지지를 얻고 정교회는 이를 이용해 세속적 지위를 복구, 향상시키려 한다. 심지어 과거 비밀경찰인 KGB 출신인 현 푸틴 대통령은 자기가 어릴 적 정교회 세례를 받았으며 교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고 밝히면서 “충실한 정교회 신자”를 약속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소련이 무너진 뒤 과거 제정 러시아 시절의 특권을 되찾는 것을 매우 즐기는 듯하다. 한편으로 “선교”에 관한 시비에서 보이듯 러시아 정교회는 초강대국 소련이 무너지고 밀려드는 서구세력 앞에 위기의식과 함께 “민족의 보루”라는 사명감도 느끼는 듯하다.

 

이미 제정 러시아 말기 수많은 민중과 지식인에게 버림받았던 러시아 정교는 70년에 걸친 사회주의 체제의 탄압시기 동안에 거듭나기보다는 더욱더 자기중심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으로 변한 것은 아닐까?

 

또한 가톨릭 교회측에서도 러시아 정교회 신자를 여전히 “일치”의 대상이 아니라 “개종”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러시아 정교회가 자신의 관할구역이라고 여기는 곳에서 가톨릭으로의 개종활동은 “주로 비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한다고 교황청이 밝히긴 했지만 말이다.

 

[경향잡지, 2002년 8월,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연합통신(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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