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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페루의 토착화된 원주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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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23

[세계 교회는 지금] 페루의 토착화된 원주민 교회

 

 

남미 선교에 대해 말하면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가톨릭인데 무슨 선교?” 하는 말을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듣는다. 선교의 목적이, 타종교인은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고 믿지 않는 사람은 입교시켜 신자의 수를 늘리는 것만이었을 때를 생각한다면 남미는 더 이상 선교가 필요 없는 곳이다. 유아영세는 곧 출생신고가 되고 그래서 영세 증명서는 모든 신분증을 대표하며 한때는 유일한 신분증이었을 때도 있었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교회의 역할과 관심은 세례를 주는 것이나 전례 집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전하고, 병들고 가난한 이들에게 치유와 복지를 통해 평등한 사회적 혜택을 받을 권리와 기회를 주는 것, 그리고 정치적 억압과 사회 부정에 저항하여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선교는 계속되어야 한다.

 

남미 가톨릭 교회는 그 역사가 500년을 넘는다. 하지만 토착화는 지연되고 있다. 사회 계층 사이의 차별화와 빈부의 격차, 그리고 정치적 불의에 순응하고 침묵하였으며 외부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남미에서 가톨릭이 전파된 과정은 우리 나라와 많이 다르다. 그들은 가톨릭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했으며 위협을 받았고, 거부하는 경우에는 모진 고문과 처벌과 처형까지 당했다. 아직도 그때 자료를 재연하여 보관하고 있는 전시관이 페루의 수도에 자리잡고 있다. 토착민들이 가톨릭을 이해하고 선택할 기회도 없이 강요된 교회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의 결과는 우리 나라 초대교회 신자들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받은 고문, 처형방법과 그 잔혹함이란 면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

 

우리 선조들이 교리를 서학으로 공부하고 마침내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그 진리를 전하려고 엄청난 박해를 받으면서 지켜온 자발적 신앙과는 정반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원주민 가운데 아이마라족이 있다. 이들의 터전인 해발 4,000미터에 위치한 페루의 알티프라노(altiplano, 고원지역)에 ‘작은 로마’라는 별칭을 가진 그야말로 ‘로마 같구나.’ 하는 인상을 주는 마을이 있다. 교회 수와 규모, 소장된 예술품들이 로마의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뜻에서 주어진 이름이다. 이곳의 교회 건물들은 선교 당시 프란치스코회, 예수회, 도미니코회 등 유럽의 수도회에서 각각 200-300m도 안되는 거리에 수도회의 이름을 걸고 각기 다른 성당을 지은 것으로 수도회 진출을 상징하고 각 수도회의 역량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당시 교회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동물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조그마한 가옥들과 감자를 수확한 뒤엔 허허벌판으로 황량하다 못해 황폐하기까지 한 시골 구석에 세워진 교회 건물들은 참으로 웅장하다. 가진 것이라고는 대대로 물려받은 거친 땅 쪼가리와 자신들이 먹고 입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보다 더 신경을 써서 보살피고 챙겨야 하는 몇 마리의 양과 소, 알파카, 그리고 라마와 돼지가 전부인 이곳의 토착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페루의 푸노 교구에서 일하려고 준비하면서 페루의 정치와 경제사, 역사 그리고 문화와 종교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유럽 교회가 남미에 들어올 당시의 배경을 설명하며 담당자가 이런 말을 했다. “그 당시 교회는 조직과 도그마는 들여왔지만 복음은 들여오지 않았다.” 이 말은 남미 교회에서 새내기 선교사로서 활동을 앞둔 나에게는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와 선교사들의 역할 그리고 신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주는 교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원주민 교회에는 토착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고, 교회의 제도와 규정보다 신앙으로 처절한 현실 조건들을 극복하고 땅과 삶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다. 단일 민족에다 어느 지방 어느 성당에 가더라도 전례나 신앙생활이 거의 같은 천편일률(?)적인 교회만을 알고 있는 우리 나라 신자들에게 다양한 교회의 모습, 다양한 역할과 활동 그리고 다양한 전례 분위기를 볼 수 있는 남미 교회는 신앙의 또 다른 신비와 문화 속에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다. 그들의 외면적 다양성은, 유럽 혈통을 유지하는 부류와 페루 원주민과 유럽인의 혼혈인, 그리고 순수 원주민 혈통으로 나뉜다. 같은 나라 사람인데도 파란 눈에 금발머리에서부터 황인종, 흑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혈통이 있으며, 문화는 물론 언어 또한 각기 다르다.

 

혈통과 거주 지역에 따라 이들의 교회 모습 또한 서로 다르다. 도시 중심의 화려하고 거대한 전통 유럽식 교회는 당연히 대부분 사회나 정치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유럽 혈통의 사람들 중심인 교회이다. 도시 외곽에는 혼혈이나 도시로 이주한 원주민의 교회가 있는데 이들의 전례나 활동은 앞에서 말한 교회의 전례 분위기와는 매우 다르다. 위의 두 교회와는 또 다른 모습의 원주민 교회가 있다. 정글이나 고원지역에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들 고유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언어를 보존하고 고수해 온 원주민들의 교회이다.

 

원주민들의 우주관과 종교관, 신앙생활은 500년 동안 유럽의 지배를 당했으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고유의 것을 보존해 오고 있다. 토착화된 교회의 모습을 찾는다면 아마도 이들 교회가 가장 적절한 모습이 아닐까. 교회 건물이 따로 없이 어느 곳에서든 교회 의식이 이루어진다. 감자 심고 거둘 땐 감자밭이, 병환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환자의 돼지우리 같은 집이, 공동체에 우환이 생겨 화해예식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입으로 전해져 모인 곳이 공동체의 공회당이자 종교의식이 행해지는 곳이다.

 

축제의 앞마당이나 집 밖에서 2박 3일 동안 이루어지는 결혼식장, 벼락맞아 허물어진 담벼락 앞에 책상 하나 놓고 미사 도구 차리고 신부님이 오면 뙤약볕이고 흙바닥이고 가리지 않고 쭉 둘러앉는다. 알아듣고 있는지 모르는지 무관심한 얼굴을 하던 사람들이 우물에서 떠온 물을 축복하고 꽃가지를 꺾어 물을 축여 머리 위에 뿌려주는 축복 예식이 있을 땐 너나없이 달려들어 모처럼 활기를 띠는 어느 선교사의 집 앞뜰이 모두모두 교회이다.

 

이들은 땅과 동물 그리고 모든 자연을 하느님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언제나 감사하며 보존해 왔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지혜와 전통은 어느 법률보다 소중하게 지킨다.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느님의 자비를 감지하고 위로를 받으며 모든 일에 참관자가 되기보다는 참여하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공동체적인 삶은 이들 생활의 기본 형태이다. 문명과 세계화에도 쉽게 흔들리거나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 저항의식과 자존심과 신조가 오늘의 원주민 교회를 이룩하였다. 이 공동체가 이 같은 질긴 생명력과 신조로 세계화의 거센 물결과 물질 만능주의에서도 굳건하게 지켜지길 바란다.

 

* 장영옥 필로메나 - 페루에서 선교사로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경향잡지, 2002년 9월호, 장영옥 필로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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