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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시아 교회: 잊혀진 강제이주자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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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26

[세계 교회는 지금] 중앙 아시아 교회 : 잊혀진 강제이주자의 교회

 

 

중앙 아시아는 작년에 미국이 대테러 전쟁을 벌였던 아프가니스탄의 바로 북쪽 다섯 나라,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을 말한다.

 

지난 10월 19-20일에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가톨릭 교회가 부활한 지 10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다. 100년 전인 1902년에 러시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한 사제가 당시 러시아령 투르케스탄이던 이곳을 담당하는 보좌신부로 파견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오기 훨씬 전에도 이곳에 가톨릭이 존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도착한 것은 시작이 아니라 ‘부활’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행사에는 눈에 띄는 손님이 한 명 있었다. 인도 출신의 한 사제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를 대표해 참석한 것이다.

 

이에 앞서 작년 10월에 이곳 우즈베키스탄 교회의 장상인 쿠쿨카 신부는 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앙 아시아 교회의 미래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1년 9월 23-25일에 이웃한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직후였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유럽에서는 여러 주교와 사제, 수녀가 러시아는 물론 멀리 독일과 이탈리아 등에서 교황을 따라왔지만 FABC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아 섭섭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의 수도인) 델리는 타슈켄트에서 겨우 2시간 반 거리지만, 러시아는 훨씬 멀다. 초청장이 보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교황이 카자흐 같은 FABC 나라를 방문한다면 FABC에서 누구든 대표로 참석해 우리와 함께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중앙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교회와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역 교회는 이미 지난 1998년에 열린 FABC 총회에서 준회원으로 가입한 바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울에서 홍콩까지 비행기로 3시간 반이나 걸리는 것에 비교해 보면, 중앙 아시아 여러 나라가 이름뿐 아니라 실제로도 아시아에 속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비단길도 여기를 지나갔다. 그러나 냉전시대에 이곳과 다른 아시아 지역은 교류가 끊어져 있었고, “유럽의 일부”인 소련의 일부였다. 더구나 이곳 가톨릭 교회는 카자흐어, 우즈벡어 등을 쓰는 이슬람계 원주민과 달리 러시아어를 쓰는 ‘유럽인’ 교회였다. 그러나 다시 한번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말 그대로 이곳은 ‘중앙’ 아시아다.

 

쿠쿨카 신부는 “유럽은 앞으로도 몇 년 동안 우리의 재정적 후원자가 되겠지만, 중앙 아시아는 신학적 문화적 통찰에 대해서는FABC와 아시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는 “강의를 하면서 러시아어를 말하고 폴란드나 유럽식 용어를 쓸 때면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 단어들은 아무 뜻도 전하지 못하고, 그 개념은 현실적으로 우리가 가르치는 것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나아가 폴란드와 유럽에는 이슬람 전통이 거의 없지만, 이곳 교회는 점점 더 이슬람과 대화할 필요를 느끼는 점도 인정했다. 그러므로 지리적, 문화적으로 아시아에 속하고, 이슬람인이 다수인 이곳에서 그가 “이슬람인과 아시아인과 함께 살고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제와 수도자들”이 이곳에 와서 일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우리는 중앙 아시아 다섯 나라를 대개 ‘이슬람 국가’로 안다. 이곳을 방문했던 교황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쿠쿨카 신부는 교황 방문의 의의에 대해 “중앙 아시아 나라들이 ‘이슬람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교황이 확인한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기서는 이슬람인이나 정교회인, 가톨릭인 모두가 함께 살고 기도하고 일하며, 사람들 사이에 테러나 적대감도 없다면서, “교황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과 이곳 사람들의 개방성에 감동받았다.”고 덧붙였다.

 

중앙 아시아의 독특한 종교적 상황도 있다. 카자흐스탄은 서유럽 전체를 합친 것보다 넓은 나라다. 인구 1700만 명 가운데 수니파 이슬람인과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 거의 반반이다. 가톨릭인은 약 40만 명으로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많았지만 1991년에 소련이 무너진 이후 독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유럽 출신 이주민 후손인 이들 대부분은 조상의 나라를 찾아 떠났다. 다른 네 나라에는 이슬람인 비율이 좀더 높다.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곳은 이슬람인이 87퍼센트나 된다.

 

이곳 교회 지도자들은 줄어드는 유럽인 이주자 후손보다는 원주민인 ‘아시아인’에게 교회의 미래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기존 신자들 대부분은 러시아어를 쓰지만, 이탈리아 출신의 에두아르도 카네타 신부는 “사제와 선교사들은 러시아어보다 카자흐어를 배워야 한다. 이 나라의 카자흐인 젊은이들에게 교회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 아시아 교회의 역사를 보면, 여러 이민족을 정복하고 하나의 제왕이 통치하는 ‘제국’이 뭔지를 생각해야 한다. 러시아는 물론, 사회주의라던 소련도 ‘제국’이었던 것은 마찬가지다.

 

카자흐스탄 교회에는 사제 55명과 수녀 50명이 있는데, 사제의 반 이상은 폴란드인이다. 이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게 된 것 자체가, 수백 년 전 카자흐스탄을 정복하고 합병한 러시아가 이곳을 개척하려고 가난한 독일인, 네덜란드인을 데려왔는데 그 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들을 위해 가톨릭 사제들도 데려왔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집권한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종교를 박해하고 예배장소를 닫아버렸다. 카자흐스탄 태생인 존 프랑크 신부는 이런 역사 때문에 오늘날 많은 이슬람인, 정교회인, 가톨릭인은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으며, 설령 안다고 해도 실제로 실천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름뿐인 신자들이라고 본다. 이곳에 종교간 긴장이 없는 것은 오히려 이 덕분이라고 한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있는 대성당에는 한국계 러시아인 신자 20여 명도 있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전에 스탈린이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시킨 한국인 후손으로 러시아어를 쓴다. 교황이 카자흐스탄 수도인 이스타나를 방문했을 때 드린 미사 때 기도는 이곳 가톨릭인들의 뿌리를 반영해 러시아어와 카자흐어, 독일어, 폴란드어, 우크라이나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진행되었다. 최근에는 외국인 사업가 등도 늘고 있지만 신자 대부분은 옛날에 탄광과 공장에 값싼 노동자로 또는 억류자나 망명자로서 이 땅에 강제 이주된 이들이다.

 

교황은 강론에서 전체주의 통치 아래 고향을 떠나 이 땅으로 강제 이주된 이들의 고통과 역사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에게 “오늘 여기에서 여러분과 함께하며, 여러분이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말하게 되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폴란드 출신으로서 투르크멘 교회의 수장인 마데즈 신부(오블라티회)는 이에 대해 “카자흐 교회는 지금 봄이다.” 하고 부러워했다. 이곳엔 외국 교회의 원조로 성당이 다시 세워지고, 외국인 선교사와 수도회가 잇달아 진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그러나 더 나아가 “하느님은 노예제를 이용해 이 나라에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나라에 노예가 들어온 것은 이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폴란드인들은 러시아 식민지 시절과 2차 세계대전 포로로 여기에 끌려왔다.

 

[경향잡지, 2002년 12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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