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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원시장 베드로: 얼음에 덮여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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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1 ㅣ No.288

원시장 베드로 - 얼음에 덮여 순교

 

 

원시장 베드로(1732-1793년)는 충청도 응정리에서 부잣집 양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평소 성격이 사납고 야성적이어서 호랑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1788년경 그의 나이 쉰다섯이 넘었을 때 우연히 천주교에 대해 듣고 크게 감동하여 곧 입교했으나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교리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열망으로 하루는 집안 식구들에게 "나는 50년 이상을 무익하게 살아왔다. 내가 돌아오면 내가 떠난 까닭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 걱정 말고 기다리지 말아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그 뒤 일 년 이상이나 아무 소식도 없다가 어느 날 그가 돌아왔다. 원시장이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친척들과 친구들이 모여들어 호기심에 차서 그 동안의 사정에 대해 물었다. 그 많은 질문들을 웃으며 듣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십년 동안 나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소. 그러나 지금은 수 천년 동안 목숨을 보전하게 해주는 약을 가지고 있소. 그것을 내일 설명해 주리다." 다음날 그는 모든 친척들을 모아 놀고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계심과 원죄, 강생구속, 하느님의 계명, 천당과 지옥 등 천주교의 교리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였다. "자! 이것이 착한 뜻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영원히 사는 방법이오. 여러분은 모두 내말을 유언으로 알고 나처럼 천주교를 신봉하시오."

 

그의 권고는 생명력이 넘치고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여 많은 사람이 그날부터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이의 아버지이신 주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이 회개하고 신앙심이 더욱 피어진 것은 그의 말보다 모범적인 생활 때문이었다. 그는 그 사납고 거친 성격을 정복하여 일상의 모든 면에서 변함없는 온화함을 보여주었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어 그들의 어려움을 구해주고 정성을 다해 천주교를 알리는 모습에 모두 감탄하였다. 그는 삼십 가구 이상을 입교시키고 그의 사촌인 원 야고보와 함께 외교인 앞에서도 드러나게 계명을 지키는 열성을 보였다.

 

마침내 이 소식은 관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뒷날 그를 따라 순교하게 될 사촌 원 야고보의 열성적인 신앙생활이 두드러져 보였으므로 관장은 우선 원 야고보를 잡아오라고 포졸들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의 권고로 도망가고 없었다. 포졸들은 원시장에게 물었다. "당신 사촌은 어디로 갔소?" "죽기가 무서워 숨었소. 그가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이오?" 원시장이 대답하자 포졸들은 "우리는 관장의 명을 받고 천주교인인 그를 잡으러 왔소. 그러나 그가 도망가고 없으니 대신 당신을 잡아가겠소" 하고 말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사촌인 원 야고보를 대신하여 관아로 끌려갔다. 관원은 사촌이 어디로 몸을 숨겼는지 계속해서 심문하였지만 원시장은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그리고 그도 천주교를 신봉하는 신자임을 확인하자 관원은 "다시는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천주를 배반하시오. 나는 사또에게 그 모든 소문이 순전히 모함이었다고 보고하겠소. 그러면 당신은 곧 풀려날 것이오."하며 유혹하였다. 원시장이 "나는 천주교를 배반할 수 없소."하고 단호히 거절하자 곧 감방에 가두었다. 그리고 여러 날 동안 배교하라는 독촉에도 별 효과가 없자 화가 난 관원은 그를 관장에게 보냈다.

 

관장은 그가 천주교 신자임을 거듭 확인하고는 "천주교를 배반하고 공범자들을 고발하라. 그리고 자시는 천주를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라. 그러면 너를 곧 놓아주겠다" 하며 배교를 강요했다. "천주를 배반하다니 절대로 안됩니다. 저는 또 다른 천주교인들을 밀고할 수 없습니다." 원시장은 관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관장이 다시 물었다. "너는 공범자들과 네 집에 있는 서책들도 신고하지 않겠단 말이냐?" "저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강인한 태도를 본 관장은 분을 이기지 못하여 주리를 틀게 하고 치도곤 70도를 치게 하였다. 그러나 원시장은 모든 고문을 이겨내면서 하느님께 대한 사람의 본분을 지켰다. 그리고 외교인들에게 미신행위의 헛됨과 참된 도리를 설명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옥에 갇힌 그는 다음날 다시 출두하여 심문을 받았으나 한결같은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는 전날보다 더 혹독한 치도곤을 맞았다. 이토록 참혹한 상태로 옥에 던져졌으나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그는 오히려 아전과 포졸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했고, 며칠 뒤에 그를 보러 옥으로 찾아온 한 교우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때까지 그는 예비신자였던 것이다.

 

그 동안 관장은 감사에게 보고하여 원시장 베드로를 매를 쳐서 죽게 하는 장살형을 받아냈다. 관장은 세 번째 심문 때 어마어마한 채비를 해 놓고 그 주위에 수많은 포졸들을 세워놓으며 위협했다. "네 목숨을 구해주려는 마음에서 모든 방법을 다 썼다. 그러나 네가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죽기를 원해서 감사에게 보고하였다. 이제 너를 쳐죽이라는 명령이 왔으니 이번에는 네가 죽을 것을 알라!" 원 베드로는 의연히 대응했다. "그것은 저의 가장 열렬한 소원입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그의 결박은 더욱 무섭게 조여지고 혹독한 고문이 시작되었다.

 

형벌이 하루 종일 계속되었으나 원 베드로는 용감하게 견뎌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으스러져 손발을 쓸 수도 없었고 사람들이 그를 감옥으로 떼메어가야만 했다. 제 손으로 음식조차 먹을 수 없을 만큼 손발을 쓰지 못하게 된 그는 옥중 동료들이 물 한 숟갈을 입에 떠넣어 주었을 때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목마르다" 하시던 모습을 기억하였다.

 

감사와 관장이 원 베드로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마지막 수단을 부렸다. 자식이 아버지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찾는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전했던 것이다. 원 베드로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마음을 가누고 "그것이 제 마음을 크게 움직이게 합니다. 그러나 천주께서 친히 저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관장은 사형수에게 관례대로 주는 마지막 음식을 준 다음 될 수 있는 한 빨리 죽이려고 미친 득이 치게 하였다. 매질하던 형리가 먼저 기진하여 관장에게 말했다. "사또, 이 죄인은 매맞는 것을 느끼지 못하니 끝장을 낼 방법이 없소이다." 그 때 피투성인 채로 고개를 들고 원 베드로가 대답했다. "저는 매맞는 것을 느낍니다. 매가 모질어 뼈에 사무칩니다. 그러나 천주께서 여기 계셔서 저를 직접 굳세게 해주십니다." 이 말을 듣고 관장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저 놈은 틀림없이 귀신을 부리는 놈이다" 하며 더욱 가혹하게 매질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관장은 몹시 당황하며 매질을 단념하고 추운 겨울 밤 밖에 내놓고 물을 끼얹어 얼려 죽이라고 명령했다. 모진 매로 뼈가 으스러져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원 베드로는 굵은 밧줄로 묶여 기둥에 세워지고, 온몸에 찬물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의 몸에 얼음이 뒤덮여지면서 사지가 점점 굳어져갔다. 원 베드로는 그 순간 주님의 수난을 묵상했다. "저를 위하여 매맞으시고 제 구원을 위하여 가시관 쓰신 예수님, 당신 영광을 위해 제 몸이 얼음에 덮여있음을 보소서." 1793년 1월 26일, 새벽닭이 두 번째 울 때까지 이렇게 끊임없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목숨을 바치니, 그의 나이 62세였다.

 

[경향잡지, 1999년 6월호, 김길수(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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