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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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제삼천년기의 새복음화와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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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31

제삼천년기의 ‘새 복음화’와 ‘선교’

 

 

구세주 그리스도의 탄생 2000년 대희년과 함께 제삼천년기가 펼쳐지게 되면서 한국교회가 박차를 가하려 하는 ‘새 복음화’ 안에서 본성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선교’ 진로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천명된 교회의 가르침에 의거 모색하기로 한다. 한국교회가 한결같은 열성으로 수행해야 할 ‘선교’의 기본자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널리 사용되어 온 ‘복음화’와 ‘새 복음화’ 개념과의 연관성 안에서 살펴보면서 한국교회의 선교 과업수행의 기본입장을 정립하고자 한다.

 

 

1. ‘복음화’의 의미

 

‘복음화’(evangelizatio)란 말은 1960년대에 그리스도 교계 안에 등장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에 공식적으로 수록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 지난 공의회 문헌에서 본시 ‘복음화’로 번역되어야 할 용어 ‘evangelizatio’ 용어가 등장하지만, 우리 말 번역판에서는 ‘복음선포’ 또는 ‘선교활동’으로 번역되어 있어서 상당히 오랜 기간 그 고유 의미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은채 사용되었다. 

 

?선교 교령?은 전(全) 교회를 ‘선교적’이라고 지칭하면서 ‘복음화의 과업’(opus evangelizationis)을 ‘하느님 백성의 기본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전 교회는 선교적이며, 복음 선포[복음화]의 과업은 하느님 백성의 근본적 임무이므로, 성스러운 교회회의는 모든 사람을 내적 깊은 쇄신으로 부르는 바이다.”  그리고 ?교회 헌장?에서도 역시  ‘복음선포’로 번역된 ‘복음화’ 용어가 삶의 증거와 말을 통한 그리스도의 메시지 선포로 규정된다. “이와 같은 ‘복음 선포[복음화]’, 즉 생활의 증거와 말로써 표현된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세속의 공통 조건하에서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특징과 특수한 효과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제 교령?에서는 ‘복음화’가 ‘선교 활동’으로 번역된 가운데 성체성사가 이 복음화의 원천이자 절정으로 규정되고 있다. “성체성사는 분명히 ‘선교 활동[복음화]’ 전체의 원천(源泉)이요 정점(頂點)이다.” 인용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구절이나 다른 구절들에서 ‘복음화’라는 용어가 전통적 ‘선교’(mission)개념과 구별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한국교회 안에서는 그동안 명확한 개념 구별없이 같은 의미로 거의 혼용되어 왔다.

 

‘복음화’ 개념은 1974년 10월에 “현대 세계의 복음화”라는 주제로 로마에서 개최되었던 제3차 주교대의원회의를 기점으로 하여 교회의 본질적 활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공식적으로 널리 사용되기에 이른다. 이 주교대의원회의에서 마련된 기초작업 자료는 복음화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복음 안에 선포된 그리스도의 신비에 사람들을 인도하도록 하는 모든 활동을 통틀어 복음화라고 한다. 그러므로 애덕의 증가와 성사 집행 없이는 온전한 의미에서 복음화를 이룰 수 없다. 더구나 그리스도께 대한 기쁜 소식의 선교 없이는 복음화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신약 성서에 의하면 복음화의 중심점은 그리스도 신비의 선포인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교회의 활동인 복음화가 복음선포와 함께 사랑의 실천과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 상호 간에 일치를 드러내는 표지이자 도구로서의 성사의 현실화를 필연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2. 1975년 12월 8일자로 반포된 교황 바오로 6세의 교서 ?현대의 복음선교?는 제3차 주교대의원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유권적으로 정리하면서 ‘복음화’ 개념을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여기서 ‘복음화’가 교회의 존재이유라고 진술된다. “복음화 하는 것은 실제로 은총이고 교회 본연의 소명이자 자신의 가장 깊은 정체성입니다. 교회는 복음화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리고 ‘복음 선교’로 번역된 가운데 ‘evangelizatio’의 의미가 소상하게 서술된다. “교회로서는 복음 선교[복음화]의 기쁜 소식을 인류의 모든 계층에까지 전해주어,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 2고린 5,17)라고 한 것과 같이 그 힘으로 인류를 내부로부터 변혁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로서 복음 선교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배반되는 인간의 판단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방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逆轉)시키고 바로잡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복음화에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변화시켜 시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따르게 된다. “복음화는 여러 가지 요소로 성립되는 복잡한 과정입니다. 그러한 요소들이란 인류의 쇄신, 복음적 생활의 증거, 명백한 교리전달, 마음의 귀의, 공동체에 대한 참가, 성사배령(Acceptio Signorum), 사도직 활동 등이며, 이 모두는 서로 배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상호보완적(補完的)인 것입니다. 따라서 상호관계 하에서 각 요소를 고찰해야 합니다. 이번 시노두스의 공적은 이 요소를 대립시키지 않고, 오히려 조화 있게 생각하여 교회가 해야 할 복음 선교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입니다.” 

 

이 교서가 인류와 세계의 복음화의 전제로서 교회와 신자들의 자기복음화(自己福音化)를 요청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복음선포자이지만 교회자체가 복음화 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믿는 자들의 공동체, 생활과 친교가 가능한 희망의 공동체,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라면 그러한 공동체는 믿고 바라야 할 것과 사랑의 새 계명을 계속 들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로서 참신한 활력과 힘을 보유하려면 교회자신이 언제나 복음화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표명하고(?선교 교령?, 5항), 1974년의 시노두스에서 재확인된 바이지만 교회가 전세계를 참으로 복음화 하려면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刷新)으로 교회자체가 복음화 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요컨대, '복음화'는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인간과 세계를 변혁시켜야 할 교회의 사명과 활동 전체를 말한다. 복음화는 복음을 비신자들에게 선포하고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베푸는 일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진리를 생활화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회개와 쇄신을 통한 교회의 ‘자기복음화’를 전제로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힘으로 인간을 내적으로 쇄신시켜 ‘복음적 생활’로 인도하는 활동이 복음화 활동이며, 이 ‘복음적 생활’을 통해서 이룩되는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인류의 쇄신’이 ‘복음화’가 본시 뜻하는 내용으로 볼 것이다.

 

 

2. ‘복음화’와 ‘새 복음화’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새로운 복음화’(new evangelization) 내지 ‘새 복음화’ 용어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주도적으로 사용되면서 현대세계 안에서의 교회의 복음적 사명을 나타내는 핵심 용어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용어가 등장하게 되는 경위를 일별하면서 ‘복음화’ 개념과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로 한다.

 

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라틴 아메리카 복음전래 500주년을 경축하는 행사 준비의 일환으로 1983년 3월 9일 아이티(Haiti)의 수도 포르 토 프랭스(Port-au-Prince)에서 개최된 제19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정기총회(CELAM)에서 행한 연설에서 ‘새 복음화’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께서는 이 기회에 “새로운 열의,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새 복음화’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그분은 ‘새 복음화’가 일단 복음화가 이루어진 지역에서 반복하여 복음화를 시도하는 ‘재(再) 복음화’와는 달리, 교회가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의식 속에서 ‘시대의 징표’들 안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새롭게 체험함으로써 동시대인들로 하여금 복음과 일상생활 사이에서 새로운 창조적 통합을 이루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언급하셨다. 

 

1988년 12월 30일자로 반포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과거에 그리스도교적이었던 나라와 민족들이 현금 종교적 무관심과 세속주의와 무신론의 영향으로 곤경에 처해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 복음화가 절박하게 요청된다고 천명된다. “오로지 새로운 복음화만이 깊고 빛나는 신앙의 성장을 보장할 수 있고 또 이러한 전통을 진정한 자유의 힘으로 삼을 수 있다. 분명코 인간사회를 다시 그리스도화하는 일은 전세계 도처에서 절박하게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이의 실현을 위하여 긴요한 것은 이들 선진 국가나 민족들의 교회 공동체 자체의 구조를 먼저 개선하여 그리스도화하는 일이다.” 여기서 ‘새 복음화’가 개인과 함께 전인류를 지향하면서 더욱 성숙한 교회 공동체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고 규정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오늘날 범교회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른 ‘새 복음화’ 용어가 ‘복음화’나 ‘선교’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밝히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1994년 11월 10일에 반포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대희년 교서 ?제삼천년기?가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에 대해 유권적 해답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제삼천년기에 꽃피우고 열매맺어야 할 ‘새 복음화’ 작업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이후 개최된 전교회적, 대륙적, 지역적, 국가적이며, 교구적 시노드들이 바로 새로운 복음화의 부분들이라고 규정되고 있다. “2000년의 접근을 위한 준비의 일부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시작된 일련의 시노드들, 즉 세계주교대의원회와 더불어 대륙, 지역, 국가 그리고 교구의 시노드들입니다. 이들 모두의 기저가 되는 주제는 복음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복음화입니다.” 여기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천명된 교회의 가르침들이 모두 ‘새 복음화’를 위한 기본 내용이고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뒤를 잇는 교황들이 반포한 공식적인 가르침과 대소 규모의 후속 시노드들이 ‘새로운 복음화’를 구체화하는 요소들로서 규정된 것이다.

 

그래서 지난 공의회의 공식 문헌과 후속 문헌들, 이를테면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와 같은 문헌이 ‘새 복음화’ 용어가 아닌 ‘복음화’ 용어를 사용하여 가르친 내용들도 실제로 ‘새 복음화’에 해당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말하자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황 바오로 6세에게서 사용된 ‘복음화’ 개념,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한 ‘새로운 복음화’ 개념 사이에는 내용상 실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실제로 그동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황들의 가르침, 그리고 시노드들의 공식 결정들을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과 시도들이 범교회적으로 지난 30년 동안 단계적으로 이어져 왔으며,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교회의 ‘새 복음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작업들로 간주될 수 있다. 그래서 ‘새 복음화’에서 뜻하는 ‘새로움’은 ‘시대의 징표’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부단히 보여온 교회의 새로운 자세와 상관한다고 볼 수 있다.

 

 

3. ‘새 복음화’와 ‘선교’ 개념과의 관계

 

현시대의 교회의 정체성 실현과 직결되어 사용되는 ‘새 복음화’와 전통적인 ‘선교’ 개념과의 관계를 간략히라도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새 복음화’와 ‘선교’는 본질차원에서 공통적 의미를 지니면서 표현양식과 수행방법에 있어 각기 상위성을 드러낸다고 본다.

 

1. 두 개념의 본질적 동일성과 함께 표현과 수행방법의 상위성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 

 

‘복음화’ 내지 ‘새 복음화’가 복음 안에서 선포된 그리스도의 신비로 사람들을 인도하도록 하는 모든 그리스도교적 활동을 통칭하고, 그것이 복음 선포와 성사집행, 그리고 애덕의 증가로 이룩된다고 규정될 때, 이 개념은 교회의 본성으로 규정된 전통적인 ‘선교’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새 복음화’가 ‘새로운 열의,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한에서 재래의 선교 활동 수행방법과 구별되는 면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전통적 선교 활동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을 그리스도에 의해 실현된 구원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고 간주하면서 저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이를 수용한 사람들을 교회로 입교시키는 절차로 구성된다. 이러한 전통적 ‘선교’ 활동의 표현양식과 수행방법은 종교세계 안에서 독백의 성격을 지니는 선포에 의거하며, 외부적으로 확인 가능한 성공도(예비자나 수세자 수)에 입각하여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려는 패권주의의 취지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내어 왔다는 지적을 오늘날 종교계 내외에서 받고 있다.

 

그런데 ‘새 복음화’는 우선적으로 비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독백적 형식으로 선포하고 저들의 회개만을 일방적으로 요청하지 않고,  대희년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강조되듯이, 역사 도정 안에서 교회와 신자들에 의해 과거에 자행되었고 현재 자행되고 있는 복음적이지 못한 과오들에 대한 죄책을 과감히 인정하고 회개할 것을 반복해서 촉구함으로써 교회의 내적 정화와 충실을 도모하여 교회의 면모를 일신하려는 쇄신의지를 결연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다른 종교 신봉자들이나 문화 소속인 들과의 진솔하고 깊이있는 대화를 통하여 하느님의 감추인 신비를 더욱 풍요하게 드러나게 하고 신앙의 심화가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인류와 세계의 공동선 증진과 구원을 위협하는 제반문제 해결에 공동으로 대처하려는 취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교회 복음화 활동의 일차적인 목표도 더 이상 세계 안에서의 종교적 패권을 지향하는 교회 부식(扶植)을 통한 양적 팽창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실현되는 평화와 연대, 정의와 자유 등의 보편 가치들에 기초하는 ‘사랑의 문화?문명’의 창출을 강조하는 데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복음진리의 생활화를 통한 교회와 인류, 그리고 세계의 내적 쇄신 내지 변형이 복음화 노력의 일차적이고 주된 목표로 설정되어 있음이 확실하다. 여기서 교회의 자기복음화(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사랑의 문화?문명’ 담지자 내지 구현으로서의 구원의 성사)와 외부 세계와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서 ‘사랑의 문화?문명’ 건설을 도모하는 ‘새로운 복음화’는 외부 세계에 대해 복음진리를 독백의 양식으로 선포하고 제자들을 모아 입교시키는 활동으로서의 재래의 전통적인 ‘선교’ 자세에 비해 ‘새로움’의 실재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2. 재래의 선교활동이 특정 지역에 성당을 위시한 교회기관을 설립하고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교리를 가르친 뒤에 세례를 베풀고 입교시키는 등 성과를 측정할 수 있고 외적으로 가시적인 양적 활동범주에 속한 데 비해, 새로운 복음화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우주적 세계를 그리스도 복음의 힘 내면으로부터 질적으로 변화시키고자 도모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한 하느님 나라로서의 ‘사랑의 문화 · 문명’ 건설을 현실세계 안에서 추구하기 때문에 기존의 ‘선교’ 활동보다 훨씬 광범하고 심층적인 차원과 상관한다. 이를테면, ‘새 복음화’는 환경, 핵 에너지 문제, 신자유주의 시장질서의 귀결, 사회질서의 문란, 공공기관의 역기능, 공직자들의 부패와 비리, 실업자 대책 등 사회와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대소규모의 공공성격의 사안 등처럼 재래 선교활동이 취급하지 않았던 사회 구조와 시장경제질서, 생태계 위기와 상관된 사안들도 심도있고 체계적으로 처리하게 된다.

 

 

4. 한국교회 ‘새 복음화’의 ‘선교’ 자세

 

제삼천년기에 한국교회가 박차를 가하고자 하는 ‘새 복음화’ 안에서 동시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선교’ 과업의 기본자세에 대하여 생각하기로 한다. 한국교회가 수행하게 될 ‘선교’ 과업은 ‘시대의 징표’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구원의지 내지 섭리 실현에 투신하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형성된 교회의 일관된 자세에 상응해야 할 것이다.

 

1. 비그리스도교계를 지향한 선교의 전제로 요청되는 한국교회의 자기복음화는 구성원들의 인격과 교회 구조 안에서 초대교회의 복음적 면모를 구현하는 진실하고 적극적인 노력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오늘날 ‘시대의 징표’의 성격을 띠고 범국민적이고 범세계적으로 열망되는 정의롭고 평등하며 형제적 공동생활이 초대교회 안에서 영위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형성된 ‘지상의 하느님 나라’로서의 초대교회 안에 인종, 민족, 신분, 성과 연령을 초월하여 만인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형제자매적으로 살아가는 세계가 현실 안에서 실현되어 있었다. 초대교회 안에서 유다인과 이교인, 자유인과 노예, 의인과 죄인, 남자와 여자, 성인(成人)과 유약아(幼弱兒) 등 현실세계 속에서는 일치를 도저히 이룩하지 못하는 상이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명실공히 하나의 평화로운 ‘인간가족’을 형성하였던 것이다(사도 2,44-47 참조). 이 ‘형제자매적 가정공동체’로서의 초대교회 성원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매듭은 그들을 사로잡았던 하느님과 인간 상호간에 발해지는 몰아적 사랑, 아가페(Agape)였다. 이 매듭은  몰아적으로 발해진 ‘사랑과 진리의 빛’에 사로잡히고 이끌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난 자발적 일치의 결실이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는 주위의 경직되고 차별적인 기존 사회와는 대조적 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형제자매적 가정공동체로서 빛을 발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자기복음화’는 구성원들의 삶이 복음적으로 영위되는 것과 아울러 교회의 제도적 구조 역시 구성원 모두가 형제자매처럼 진정 자유롭고 평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형성될 경우에 실현된다고 볼 것이다. 

 

2. 그런데 제3세기를 살아가는 한국교회가 자기복음화를 심도있게 실현하기 위하여 제삼천년기를 맞이하여 2000년 대희년 한국 주교회의 담화문 “은총과 평화의 대희년에”에서 촉구되는 것처럼 내적 성숙을 도모하여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고자 노력하여 ‘복음의 씨앗이 한국이라는 토양과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고, 신앙 생활과 전례를 토착화하여 새로운 문화 창출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아직까지 모든 생활영역에서 서구에서는 동시대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침체의 늪에 빠져든 교회모델에 일방적으로 의존해 있으며, 새 천년을 내다보고 전개하는 사목활동 모델마저도 외국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실정에 처해 있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서구나 다른 지역교회들과의 유대를 긴밀하게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한국인의 정서와 의식구조, 한국의 문화와 실정에 적합한 신학사상과 전례양식, 신심운동, 교리교육, 복음화 모델, 건축양식 등 교회생활 전 영역에서 나름대로 고유한 면모를 지니는 토착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여 교회 구성원들의 질적 성숙과 영성심화를 도모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3. 한국교회는 진정한 ‘자기복음화’를 이룩한 기반 위에서 사회와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투신해야 할 것이다. 이 복음화 활동이 현실적으로 ‘소유와 지배 정향의 죽음의 문화?문명’의 질서로 구축된 현실 사회를 전적으로 대조되는 ‘나눔과 섬김 지향의 사랑의 문화 · 문명’의 질서로 대치시키는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실현된다는 점은 이미 앞에서 시사한 바 있다. 한국교회가 소유와 지배를 추구하는 현실 사회의 죽음의 질서를 나눔과 섬김을 생활화하는 사랑의 질서로 변형하기 위해서는 거시적 안목에서 체계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여 단계적으로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새 복음화’ 안에서의 선교활동을 전개함에 있어 ‘비판적 간격(間隔)과 연대적 참여(參與), 그리고 헌신적 투신(投身)’의 3중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① 오늘날 한국사회와 지구촌이 된 세계 안에 사상적 배경을 달리하고 현실적 입장을 달리하는 여러 집단들이 각기 나름대로 공동선 증진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공존하고 있다. 교회는 ‘새 복음화’의 선교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다른 집단들로부터 간격을 취하면서 그리스도 신앙의 복음진리와 ‘시대의 징표’에 상응하는 그리스도교적 기본입장을 정립하고 실천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② 다른 한편으로, 교회는 인류사회의 공동선 증진과 생태계 보전을 추구하는 선의의 개인들과 단체들, 곧 개신교회를 비롯한 다른 종교 내지 사회 단체, 그리고 정부 당국과의 연대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사회와 인류의 공동선 실현을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은 교회와 구성원들 뿐만이 아니라 전국민과 인류의 연대적 공동참여를 통해서만 실질적 효과를 자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대성을 통하여 교회의 순수한 의도와 진실된 자세가 알려지면서 단독적 활동을 통해서 기대할 수 없는 많은 부수적 성과를 거둠으로써 선교의 결실을 풍성하게 맺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③ ‘지상의 하느님 나라’라고 자임하는 교회 당국과 신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인류의 공동선 실현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신하는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교회와 신자들은 그리스도교적 기본입장을 정립하고 다른 종교 내지 단체들과 공동으로 실천방안을 강구하는 데 열의를 나타냄은 물론, 일상적 삶 속에서의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행동으로 솔선수범하는 몰아적 투신을 감행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교회가 ‘간격과 참여, 그리고 투신’의 삼중적 자세정립을 통하여 독선적 배척(排斥)이나 맹목적 동화(同化)의 양 극단을 피하면서 교회와 신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보전하면서 솔선수범의 투신으로 정의구현이나 창조세계 보전, 그리고 기타 공동선 실현을 통해 구현되는 사회와 인류복음화에 기여함으로써 선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이에 감화된 사람들의 입교를 통한 교세의 신장도 자연스레 이룩할 것으로 믿는다.

 

 

5. 맺는 말

 

제삼천년기에 한국교회가 수행해야 할 ‘새 복음화’ 과업 안에서 동시적으로 수행될 ‘선교’의 기본입장을 정립하고자 시도하였다. 교회가 개인구원과 함께 사회 내지 인류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과업을 진실하게 수행하는 한에서 선교활동도 동시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세계와 한국 사회상을 고려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교회가 한국에서 부과되는 ‘새 복음화’의 시대적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자기복음화를 이룩한 기반 위에서 세계 안에 주도적인 지배와 정복을 지향하는 ‘죽음의 문화?문명’을 지양하고 공존과 섬김을 지향하는 ‘사랑의 문화?문명’을 심도있게 건설하고자 결연한 자세로 투신할 때에 교회의 본성으로서의 ‘선교’를 올바로 실현하게 되고 제삼천년기 세계와 민족사회 안에서 구원을 위한 희망의 표징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각주가 포함된 내용은 첨부 파일을 참조하세요.

 

[심상태(수원가톨릭대 교수,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 /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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