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7일 (월)
(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강론자료

2015-0305.....사순 제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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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3-04 ㅣ No.1717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예레미야 17,5-10       루카 16,19-31

2015. 3. 5. 이태원.

주제 : 내가 바라는 것

누구에게나 물어보면, 자신의 삶에서 잘못된 점을 찾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누군가가 다가와서 나만 아는 잘못, 나만 안다고 생각했던 잘못과 숨겨놓은 것을 지적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저에게도 분명히 그런 잘못이 있을 것이고, 잘못은 있기 마련입니다. 나는 그 잘못에 대한 것을 정리했다고 말하고 그래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할 텐데, 그것이 나만의 생각일 때는 차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에도 이렇게,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기본인데, 사람의 상황을 넘는 모든 일의 상황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그 일이 어떻게 될까요? 궁금하기도 하지만, 안다고 해도 내가 당장은 변하게 할 수 있는 해결방안이 없기도 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은 남들이 모르는 잘 한 것이 있어서 그렇게 됐을 것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조건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은 분명 그들의 삶에 커다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사람이 갖는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의 삶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하고 비판해봐야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내가 같은 길로만 가지 않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요? 우리는 그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누리고 살 것을 다 누리고 살았던 부자의 세상 삶에 무엇을 잘못이라고 우리가 말하겠습니까? 그런 그의 삶을 라자로와 비교해서 말하는 것을 부자는 치욕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충분히 그렇게 살 테니, 부자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런 것까지 함께 생각할 때, 신앙인의 삶은 고달파집니다.

하느님은, 세상에 있다는 종교들은 어째서 가난한 사람을 탓하는 것 대신에 부자를 욕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부자로 사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세상살이에서 부자로 살 것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부담스럽게 여기고 부담스럽게 들을 얘기입니다.

하느님께서 또 신앙에서 부자를 달리 보려고 하고, 못살게(?) 구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세상에 살아있는 형제들에게 충고해주겠다는 것도 막기 때문입니다. 뭔가 가진 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을 불만으로 여기겠지만, 그런 사람이 다른 이의 충고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범하는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삶은 다른 이의 충고로 바뀌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 내가 하는 선택으로 좋은 모습을 가꾸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들 각자가 하느님 앞에 나서는 날,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나를 위해서 희생을 바칠 대상을 미리 만든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살아야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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